매지리 호수에 골프연습장? (박경리 67)

 

    연세대 매지캠퍼스는 아름답다. 도시마다, 지방마다 둘레길이 빠짐없는 이 시대, 원주의 둘레길 한 코스가 연세대원주캠퍼스길’(흥업면 매지리)이다. “저수지와 어우러져 있어 한국에서 가장 아름다운 캠퍼스로 정평이 나 있다.”가 공식 소개다. 경관 핵심에 저수지가 있다. 이 학교 석좌교수 박경리가 호수라 불렀던 곳이다.

학교를 오르내리며 호수를 보시지요? 실은 나도 저 호수에 이끌리어 여기 서게 되었습니다. 자연스러움은 항상 젊음이며 자연스러움은 언제나 아름답습니다. 자연은 항상 명료하게 수식 없이 우리에게 다가오고 우리에게 진리의 실마리를 쥐어줍니다. 여러분들이 사철을 정직하게 받아들이는 호수를 바라보며 교정을 거닌다는 것은 큰 행운입니다(박경리 강의노트, 1995, 33).

    그렇게 사랑해온 호수였다. 널따란 모양새로 호수라 불리지만 농업개발공사가 만든 농업용수용 댐이다. 대학 입구로 들어서면 오른쪽으로 호수가 펼쳐진다. 거기서 바라보는 원근(遠近)산들이 중첩하며 호수를 그윽하게 감싼 경관은 소문대로 아름답다.

밤중에 천둥소리가

    19953, 박경리는 매지캠퍼스로 출강하면서 학교 앞 호숫가에다 원주사람인가 누군가가 수상골프장을 만들고 있다는 소문을 들었다. 호수는 철새도래지로 지정된 곳이란 사실을 진작 들은 바 있었기에 더욱 자초지종 영문을 듣고 싶었다.

    호수는 특히 남행(南行) 도중의 초겨울 철새들이 먹이를 보충하는 곳이다. 철새 중에 텃새가 된 청둥오리도 살고 있었다. 학교 수위 말로 한겨울이면 밤중에 천둥소리가 난단다. 물이 얼면 먹이를 구할 수 없기 때문에 새들이 일제히 날개짓을 해서 물을 얼지 않게 한다는 것. 그런 곳에 수상골프장을 만든다니 도대체 말도 안 되는 짓거리인데도 학교 당국이 우물쭈물 하고 있다는 소문이었다.

    개발자들이 외부로 잘 드러나지 않는 폭력조직 패거리들이란 수군거림만 어쩌다 들릴 뿐이었다. 누구보다 이해당사자인 대학이 거기에 대해 아무런 문제를 삼고 있지 않음에 답답함만 감돈다 했다. 교수들 사이에 고작 입에 오르는 화제라곤 금시초문인 수상골프 정체를 놓고 왈가왈부하는 수준이었다. 호수 가운데 작은 섬을 향해 호숫가에서 티샷연습을 할 수 있는 장치라는 일설이 유력하게 굳어갈 뿐이었다.

    철새들이 먹이 확보를 위해 한밤중에 날개짓인지 군무(群舞)인지로 얼음판을 깬다는 말에 작가는 울컥했다. 당신의 감성은 앉았던 자리에 아무런 흔적도 남기지 않고 훌쩍 날아가는 새만 보아도 저절로 눈물이 난다 했다. 새를 주제로 시 또는 산문을 수시로 적었다. 원주 생활의 편린을 적었던 산문집(원주통신, 1985) 16꼭지 가운데 낱말이 들어간 글이 세 꼭지( “높이 멀리 나는 도요새”, “환상의 새”, ”둥지 잃은 새들“)나 되었다. 도요새가 시제(詩題)이기도 했다. 당신의 분신이라 노래했다.

가엾은 넋이여/ 어디를 헤매다 이제 오나/ 수만 리 장천/ 한 마리 도요새 되어/ 날아가다 돌아왔나// 때 묻은 장판방/ 벽에는 작업복/ 줄레줄레 걸려 있고/ 한밤은 창가에 걸려 있다// 개구리가 운다/ 봄이 지나가고/ 초여름인 것을 깜빡 잊고 있었구나// 한 마리 도요새 되어/ 수만 리 장천 날아가다/ 돌아온 나의 넋이여/ 자리 잡고 앉아요/ 남은 세월 함께 가야지

    1983년 무렵에 불렸다던 유행가 <도요새>에 적힌 도요새 도요새 가장 멀리 나는 새/ 도요새 도요새 그 몸은 비록 작지만/ 도요새 도요새 가장 높이 꿈꾸는 새가사도 입에 담았고 글 화두로도 썼다. 최근에 밝혀진 도요새의 생태 비밀을 작가가 진작 전해 들었다면 눈물 나게좋아했을 것이었다. 해마다 번식과 월동을 위해 태평양을 종단하는 41센티 크기 중형 도요새 큰뒷부리도요(bar-tailed godwit) 이야기였다.

2020328일 뉴질랜드를 떠난 새는 우리나라를 향해 9,450를 쉬지 않고 날아 7일 뒤인 44일 남해안에 도착했고 이어 412일엔 서해안 금강하구 유부도로 이동해 521일까지 머물며 조개와 갯지렁이 등을 잡아먹으며 몸을 회복했다. 한 달 남짓 먹이를 먹어 지방을 축적한 새는 521일 금강하구를 떠나 닷새 뒤 알래스카 서해안 번식지에 도착했다(6,250). 북극의 짧은 여름 동안 새끼를 기르고 풍부한 먹이로 몸을 불린 도요새는 장거리 비행에 적합한 기상을 고른 끝에 918일 태평양 종단 비행에 나섰다. 새의 비행 궤적을 보면 9.33(224시간)동안 쉬지 않고 비행한 끝에 927일 뉴질랜드 북섬 미란다 해안에 도착함으로써 번식과 월동을 위한 태평양 일주 여행을 마쳤다. 태평양 종단 거리 12,200, 3월 뉴질랜드를 떠나 금강하구와 알래스카를 거쳐 뉴질랜드에 다시 돌아오기까지 총 이동 거리는 28,625(한겨레, 2020. 10. 27).

    그 생태를 더 부연하면 우리나라 서해안까지 도요새의 비행거리 9,450, 대한항공 기내잡지(Morning Calm) 말로, 인천공항과 뉴질랜드 오클랜드 사이 직항거리(9651)와 거의 비슷하다. 미국 로스엔젤러스 비행거리(9,507) 또는 파리 직항 거리(9,052)이기도 하다. 알라스카에서 뉴질랜드로 돌아가는 거리 12,200는 인천에서 미국 보스턴(11,339) 또는 뉴욕까지(11,068)보다 더 먼 거리다. 여객기로 13시간 뉴욕 까지 무착륙 직항편을 탈 때마다 어김없는 비행궤적이 경이롭게만 느껴졌는데, 미물의 새가 어떤 항법장치로 무장했기에 중간기착 없는 무박(無泊) 9일 비행이 가능하단 말인가. 알려진 바, 철새 머릿속은 뇌 절반 한쪽이 잠들지 않고 쉽 없이 날갯짓 신호를 보내는 동안에 다른 한쪽은 수면을 취한다 했다.

    뉴질랜드 사람들의 도요새 사랑이 대단하다는 말은 진작 들은 적 있었다. 그 철새 영송(迎送) 광경에 대해 오클랜드에서 열심히 작업 중인 글벗 양규준(楊圭埈, 1956- )서양화가에게 물었다. 과연 물찬 제비처럼 수채화 붓질처럼 사뿐하게 그려주었다.

3월 후반부터 도요새 무리가 순풍을 기다리며 북쪽으로 떠날 준비를 할 무렵, 이곳 사람들은 오랫동안 자신들 삶의 일부가 돼 온 철새들에서 마치 선착장에서 탈 것을 기다리는 사람들과 같은 동질감을 느낀다고 얘기합니다. 특정한 날 수많은 사람이 바닷가로 모여 이별을 아쉬워하는 환송행사를 성대히 갖는다고 합니다. 9월 첫 번째 도요새들이 돌아오면 마을 성당의 종이 일제히 울리며 귀환의 기쁨을 함께 나누는데, 미란다 물떼새 센터(Miranda shorebird centre)말로 2021년은 1010일에 귀환 환영행사가 열린 예정이라 합니다.

작가 말의 위력

    말을 해야 하는데 말하는 사람이 없다니 자신이라도 공론을 일으켜야겠다.”는 박경리 마음은 다급했다. 원주가 그런 식으로 저수지 구실의 대소 호수를 놀이터로 만든다면 용인, 청주 등지 전국 호수도 그 지경이 될 게 뻔하겠다는 생각에 마음이 바빴다. 그 사이 글 연재로 교신해온 문화일보에 직접 전화했다.

    그 당장에 먼저 문화일보가 대서특필하자 당일로 원주시청이 그 사업 허가를 취소시켰다. 마침 동아일보가 창간 75년 주년 글을 써달라는 부탁도 해왔다. 호수 골프연습장 문제점을 부각시켜주면 응하겠다고 답했다. 주위에서 작가가 쌓아온 문덕(文德)이 바야흐로 문화권력임을 실감하곤 치사하자 박경리는 그 공덕이 호수가운데 조그마한 섬에 서있는 아미타불의 힘이라 반응했다.

    수상골프의 호수 범접(犯接)은 막았지만 의구심은 당신의 선의선행에 흠집이 장차 없을까가 고민이었다. 이 점을 마침 동아일보 기명 칼럼에 적었다. 새삼 단구동 집 수용의 후유증을 말했다(박경리, “달맞이꽃과 백로”,동아일보, 1995.8.20).

나 역시 이곳에 있어야 할지 떠나야 할지, 뿌리 뽑힌 잡초처럼 아무 것도 손에 잡히지 않는다. 유랑민, 실향민, 이민, 민족의 대이동, 그런 말들이 있었다. 그것은 서사시(敍事詩)치고도 가장 아픈 부분이다. 터전을 잃는다는 것은 생존을 거부당한 거나 다름없다. 과연 영토개념은 달라졌는가. 달라진 것이 아니다. 생명의 생존은 터전에서 시작되고 터전에서 끝이 나는 이상, 생명이 생명인 한 영토개념은 달라질 수 없다...

    의구심은 꼬리를 물었다. 당신 집을 문학공원으로 보존한다지만 관청이 그 일을 원만하게 추진할 수 있을까에도 마음이 놓이질 않았다. 박경리 공원이 앞으로 원주시청 관리로 넘어가면 댄스홀이 될지 캬바레가 될지 모를 일이다. 그러니 팔아치우고 가든지, 그냥 버틸 때까지 버티든지 해야 하는데 앞날을 기약할 수 없다. 관청사람들을 도시 믿을 수가 없다.

    팔아치우고 갔다는 소리를 듣는 것이 싫었지만, 팔고 가버릴까 하고 고민도 했단다. 지자제가 본격으로 실시되면 더욱 개발업자들이 기승을 부릴 것이란 걱정을 떨칠 수 없었다. 아무튼 매지캠퍼스 호수사건은 전말이 그러했다.

 

김형국, 서울대 명예교수(무단전재불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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