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 출강, 그 인문학적 결실(박경리 66)

 

    박경리의 연세대학교 원주분교, 아니 매지캠퍼스(원주시 흥업면 매지리 소재) 출강은 작가를 자타공인의 원주사람으로 만든 실질적 계기였다. 1980년 여름부터 치악산이 바라다 보이는 단구동 한쪽에서 살아왔지만 그 사이 시내 출입이나 그곳 사람을 만날 일은 거의 없었다. 당신 머리는 온통토지4부 집필 구상으로 가득 찼던 시절이라 원주 인연이 끼어 들 틈새가 없었다. 아주 어쩌다 시내를 나갔던 것은, 당신 신상을 말한 산문에 적었듯, 학부형 자격으로 손주 원보의 학습 참관 행차 그리고 해외여행을 앞두고 고액권이 필요해서 은행을 찾았던 출입 정도였다.

    해서 매지캠퍼스 출강은 원주 땅과 인연을 맺는 의미 있는 행보의 시작이었다. 이전에 군사도시였던 원주가 첨단산업 온상(溫床)으로 부상한 대학들로 도시인상(urban image)을 혁신하려던, 그리고 당신이 거기에 산지 10년이 좀 지난 시점이었다.

    출강의 말을 듣자마자 심경에 어떤 변화가 있었는지 내가 물었다. 즉답은 간명했다. “그동안은 사람을 키운다는 마음 여유가 없었는데 늙어가기 때문인지 후학을 키워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말하지만 문학가는 서울 땅에서 나서 자라기 어렵다. 자연을 어렵사리 만나는 땅은 작가가 생겨날 토양이 아니다. 견주어 원주는 자연이 아직도 넉넉하다. 과연 학생들을 만나보니 장차 작가로 자랄만한 싹이 한둘 금방 느낌이 오더라.”

작가의 연세대 인연

    1991년 가을 학기부터 강좌를 맡았다. ‘한국문학의 이해라는 교양선택과목, 이어 봄 학기(1992)소설창작론이란 전공선택이었다(김명복, “우리 시대의 거울‘”, 박완서 외,수정의 메아리, 1994, 197-210). 앞은 학과 울타리에 관계없이 자유롭게 듣는 교양과목 그러니까 작가 육성으로 한국문학 이야기를 듣는 시간이었고, 뒤는 국문학과 중심으로 문학 지망생들이 참여하는 전공과목이었다.

    기실, 춘천 한림대에 가서 문학의 기능론제목으로 특강(한림과학원, 1991529)을 했고, 이화여대에서 명예문학박사학위(1994)를 받기도 했지만, 작가의 대학 쪽 인연은 단연 연세대였다. 나중에 서울 신촌캠퍼스에서도 특강 시리즈를 맡았다. 연세대가 용재 백낙준(庸齋 白樂濬, 1895-1985)초대 총장을 기려 그의 아호를 딴 용재상을 만들고는 그 이름아래에 용재학술상그리고 용재석좌교수제도를 운영해왔는데 박경리는 19973월에 용재석좌교수에 뽑혔다. 대학마다 석좌교수 제도의 운명방식은 제 각각으로 연세대 경우는 선정 명사에게 1년 동안 일련의 특강을 맡기는 프로그램이었다.

    박경리의 용재특강은 사립대학 내부행사라 치부된 탓이었던지 수강생은 교내 한정이었다. 석좌교수가 개인적으로 강의에 외부 사람들 초대도 가능한 장치라 했지만, 작가는 그런 시도를 하지 않았다는 것이, 당시 제도를 주관했던 국학연구소장 송복(宋復, 1937- )교수의 증언이었다. 때문이었든가 겨우 20여명 정도만 들었다.

    반면, 매지캠퍼스 정규 강좌는 학생은 물론 학과 교수들까지 크게 호응했다. 1992년 가을학기까지 세 학기 출강(“박경리최일남 문학대담,”신동아, 199410, 479) 한 강좌 줄거리가 단행본으로 묶어졌다. 해외견문은 미국 유학이 고작인 필자는 학위 공부 때 줄쳐 가면서 읽고 인용했던 책들 가운데 유명 대학의 석좌교수들이 펼쳤던 특강 묶음 책이 심심찮았음에 견주어, 우리 대학문화에선 거의 금시초문의 결실이 아닌가 싶었다(문학을 지망하는 젊은이를 위하여, 현대문학, 1995).

    책 제목이 문학 지망 젊은이를 위한 글이라 했다. 하지만, 세상을 한순간이라도 진실 되게 바라보려는 글 읽는 사람 모두에게 두루 유익한 자료임이 분명했다. 왜 쓰는가, 하는 물음은 왜 사는가, 하는 물음과 통합니다.”는 이 선언적 말을 포함해서 강좌를 정리한 언설이 우리 모두가 공감, 통감하지 않을 수 없어서, 아니 최소한 아무도 부인할 수 없어서였다. 그리고 이어진다.

그것은 근원적인 물음이기도 하지만 우리에게 주어진 현실은 그 물음을 끊임없이 되풀이하게 합니다. 삶의 터전이며 조건반사인 현실은, 그러나 완전한 것이 못 되고 또한 현실은 토막 낸 한 단면도 아니며 반복도 아니며 끝없는 연속, 새로움이기 때문입니다. 순간마다 같을 수 없는 사물과 시간 속에서 우리 생명들의 삶은 반복되어왔고 왜 사는 가 물어왔습니다.

    이 선언의 구절 아래서 문학가는 글이기도 한 이야기을 찾아 만들고, 애독자들은 그걸 찾아 읽는다. 찾고 읽는 말은 무얼 말함인가,

말을 찾는다는 것은 진실을 찾는 행위이며, 진리와 신을 찾는 행위인 것입니다. 말은 진실의 유일한 통로입니다. 피안을 향하여 한 치도 나가지 못하는 배와도 같은 것일지라도 우리는 그 배를 타야 하는 것입니다.

무한을 향해 무언가 꿈꾸면서 살아온 것이 사람의 역사이지만 그럼에도 낙담과 좌절과 자조도 유한의 존재인 사람의 몫인 것. “예술은 생명에 접근하려는 행위인 것처럼, 문학은 이런 삶의 명암을 직시하면서 그림자를 이겨내어 빛과 이상과 영원을 찾는 데 앞장 선 노릇이라 했다(박경리,위의 책, 114).

소설가가 쓴 인문교과서

    문학과 말의 정체가 그런 것이고 보면 그 해당 독자는 문학지망의 청년만일 수가 없었다. 독자층으로 특칭(特稱)젊은이는 생물적 젊은이로만 한정할 수 없는 노릇인 것이 살아갈 일에 대해 호기심과 의욕을 잃지 않은 사람이면 모두가 젊은이이고, 이건 연령적 노소의 문제가 아니기 때문이었다.

    책엔 우리 현대문학의 한 경지가 털어 놓는 소설 쓰기의 특성이랄까 스타일을 진솔하게 드러났다. 살아온 삶의 결이 다양해서 읽는 사람마다 제가끔 생각이겠는데, 내 경우 대학교직의 전공 쪽이던 사회과학(social sciences)에 대비되는 소설 쓰기 특징을 확연하게 엿보았다. 한마디로 사회과학은 경험이란 과거학문(science, discipline)’이란 이름으로 다루어왔음에 견주어, 소설은 사람이 살아온 삶의 지난 궤적 못지않게 미래에 펼쳐갈 꿈의 행로도 드러낸다는 점이었다.

    연장으로 소설의 주인공들도 이야기의 전개과정에서 자유롭게 태어나고 변신해나간다는 사실이었다. 이를테면 토지주갑이란 인물은 페이지가 넘어가면서 점점 재미있게 발전한 경우임은 작가도 나중에 비로소 느꼈다 했다. 붓끝의 진행에 따라 더욱 생생하게 살아서 제 스스로 신명나게 움직인 인물이었단다. 등장인물은 생몰 정도의 메모만 갖고 소설 속에서 살아가게 한다는 말이기도 했다(김징자, “영성의 작가, ‘공수’, 박완서 외,수정의 메아리, 1995, 46).

    이 대목은 현대 일본문학의 인기작가 무라카미 하루키(村上春樹, 1949- )의 자전적 에세이에서도 같은 말이었다(직업으로서의 소설가, 현대문학, 2016, 231-6).

내 소설에 등장하는 캐릭터는 이야기의 흐름 속에서 자연스럽게 형성됩니다. ‘이런 캐릭터를 내놓자고 미리 정하는 일은, 아주 조금의 예외를 제외하고는 일단 없습니다. 글을 써나가는 사이에, 등장하는 사람들의 실상(實像)의 축 같은 것이 자연스럽게 세워지고 거기에 다양한 디테일이 차례차례 제 마음대로 불어나갑니다.

    주인공들은 이야기 전개 속에서 그 정체를 표출한다고 보는 입장인 박경리 당신은 자신의 정체를 어떤 존재로 보는 것일까. 한마디로 말하면 시평(時評) 같은 부류의 기능적인 문학, 이를테면 이런저런 지식을 꿰어 맞추어 쓰는 글은 문학으로 인정하지 않는”(김징자, “위의 글”, 45) 근본주의자였다.

옳고 그름을 묻고 시정을 요구하며 항의와 호소가 포함된 만큼 글은 스스로 기능적 무기가 되는 것이며 효율을 기대하게 되는 것입니다. 해서 펜은 칼보다 강하다는 말이 생겨나기도 한 거지요. 이런 부류의 글에서도 왜 쓰는가하는 의문에 빠질 경우가 있습니다. 원초적이며 본질적인 것과는 다르고, 효율성과 기대감에 대한 것으로서 그것은 의문이기보다 일종의 좌절감 같은 것입니다.

    “그 사람에 그 책이란 말이 가능하듯, 거꾸로 책의 무게에서 작가의 인간적 무게도 짐작한다. 작가는 사람의 삶을 세 층위로 나누고 있다(박경리 강의노트, 1995, 29-30). 최상이 자기 자신의 삶을 예술로 승화한 사람들이고, 그 다음이 삶속에서 이룩하지 못한 이상과 영원을 예술이라는 작업으로 재현하는 자이고, 맨 아래가 속물의 삶으로 소설 속의 주인공을 모방하는 인생이라 했다.

    자신도 포함해서 기껏해야 소설가는 중간부류라는 말이었는데, 독자들은 그렇게 여기질 않았다. 자신의 굴곡진 삶이 바로 문학으로 녹아들었고 그것이 수많은 독자의 공감과 감흥으로 이어진 박경리의 경우는 중간층위가 아닌 최상위의 삶이 분명했다.

 

김형국, 서울대 명예교수(무단전재불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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