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전효자, 제사효자(박경리 64)

 

    환란은 계속되었다. 집안의 신세대 영주가 방년에 결혼식을 올렸다. 모처럼 먹구름 집안에 비친 한 점 햇살이 분명했다. 그 손녀사위(김지하)가 결혼생활 겨우 1년인데 1974년 봄 국사범으로 몰려 감옥을 갔다.

    아들 없는 집안이면 맏사위는 집안의 장자와 다름없다는 것이 경상도 쪽의 가풍이 아니었던가. 그야말로 애통절통(哀痛切痛)이었다. 그런 소용돌이 속에서 1975, 박경리의 어머니 김용수가 세상을 떴다.

갑자기 엄습해온 회오

    어떤 죽음이든 죽음은 갑작스럽다. 작가 쉰 살 때였다. 상황의 급전이란 말이겠는데 어머니 생전에 경원했던 이질감의 대상이 하루아침에 동질감의 연민으로 다가오기 시작했다. ‘애증(愛憎)’이란 낱말은 사랑 대 미움이란 서로 반대되는 뜻을 함께 담았는데, 이 경우의 미움은 무관심이 아닌 관심의 함축인 점에서 어쩌면 다른 차원의 사랑일 수도 있었다. 이 점을 동료 작가가 예리하게 간파했다(박완서,못 가본 길이 더 아름답다, 현대문학, 2010, 230).

조금씩 친해진 것은 원주로 가신 후부터였고 당신의 속마음까지 얼핏얼핏 비치신 것은토지완간 후 토지문화관을 만들고 나서였을 것이다. 완벽한 줄로만 알았던 그분에게서 저 어른이 왜 그러실까, 내가 상상한 그분과 다른 면을 발견한 것도 그 무렵이었다.

어머니처럼 살고 싶지 않다는 말씀을 얼핏얼핏 들은 것 같은데 돌아가시기 얼마 전부터는 당신이 어머니를 닮아간다는 말씀을 자주 하셨고, 꿈속에서 자주자주 어머니를 찾아 헤맨 얘기도 해주셨는데,어머니라는 시에 그때 들은 그대로 나타나 있다. 아무리 걸출한 여성에게도 어머니는 극복하고자 하나 극복되지 않는 악몽인 동시에 결국은 그리로 돌아갈 수밖에 없는 의지처라는 생각이 든다(밑줄은 필자의 것).

    옛말에 생전효자가 있고, ‘제사효자가 있다 했다. 부모가 세상에서 사라졌을 때 뒤늦게 깊은 회한에 빠짐이 세상 사람의 예사 인심일 것이다. 그렇게 회한에 사로잡혔던 이가 바로 박경리였다.

    작가의 이런 심정 급전의 간파에는 연하의 교우권(交友圈) 여성이 더 민감했던가. 작가 박완서와 대학(서울 문리대 국어국문학과)를 함께 다녔던 동배(同輩)이면서토지2부가 연재되었던 월간지문학사상을 위해 작가로부터 원고 수령 일도 맡았던 문학평론가가 김용수-박경리 모녀 사이의 심리적 굴곡을 속 깊이 적었다(강인숙, 박경리와 가족,”여류문학유럽문학산고, 박이정, 2020. 62-115).

박경리는 초등학교 때부터 걸핏하면 휴학을 했다. 담임선생이 마음에 안든다거나 학교에 가기 싫은 이유에서였다. 그런 응석이 통할 수 있었던 것은 홀 어머니의 외딸이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유아독존적 사고가 형성된 것이다. 성년 후에는 가장이기도 해서 집안에서 씨의 권위는 절대적이었다. 딸도 어머니도 모두 피부양자였으니까 씨는 그 집의 제왕이요 공주였던 것이다.

그러면서 어머니는 지식이 하나밖에 없으니 과잉보호하여 사사건건 간섭을 한다. 딸의 자유를 구속하게 되는 것이다. 어머니는 집안의 유일한 어른이니 그 명령에는 거역할 방법이 없는 여건이다. 자유를 얻는 방법은 언제나 어머니와의 투쟁일 수밖에 없는 것이다. 박경리에게 어머니는 너무 많은 자율권을 주는 만만한 존재인 동시에, 사사건건 자유의지를 저해하는 모든 권위의 대변자이기도 했다.

박경리는 중용을 모르는 성격이어서, 핏줄에 대한 집착에 얽매인 자아도, 자유를 갈망하는 자아 못지않게 적극적이고, 극단성을 띠고 있다....씨는 그 두 가지를 모두 완수하는 삶을 살았다. 끊임없이 원하는 것을 창조하는 작가로서의 삶도 철저하게 살아냈지만, 한 가족을 부양하는 여자 가장으로서의 책임도 완벽하게 수행했다. 하지만 창작이 매번 피를 말리는 갈등 속에서 이루어져 가는 것처럼, 가족과의 관계에서도 갈등은 여전히 치열하게 지속되고 있었다. 타협을 모르면서 과민한 성격 때문이다. 씨는 마지막 날까지 어머니와의 갈등에서 헤어나지 못했다.

20084월호현대문학에 박경리가 어머니에 관한 시를 네 편이나 발표해서 나를 놀라게 했다... 자그만치 네 편의 시(어머니,어머니의 모습,어머니의 사는 법,이야기꾼)가 다양한 각도에서, 아주 공정하고 담담하게, 씨는 자기만을 위해 살다간 한 여인을 객관적으로 조명하고 있었다. 박경리답게 자신의 미움을 감추는 일도 없었고, 어머니의 장점을 가리는 일도 하지 않았다.

꿈속에서 어머니를 찾아

     어머니 초상을 치던 바로 그때 회한(悔恨)의 기색은 문상객들에게도 바로 읽혔다. 삼성출판사가토지대하소설을 1부를 시작으로 4부까지 전집 책으로 낙양의 지가를 올렸을 때의 주역 김종규(金鍾圭, 1939- ) 삼성출판박물관장의 증언이 바로 그랬다.

문상 갔다 와서 상례(喪禮)아름다웠다는 말을 덧붙이는 게 예의가 아닌지 모르겠다. 하여튼 정릉 집에 작가 어머니를 위한 상청이 차려졌다. 제사상 좌우에 백자 항아리 둘이 놓였고, 그 항아리에 흰 꽃이 가득 담겨 있었다. 그 앞으로 하얀 상복 곧 소복(素服)의 상주들이 서있었다. 그 하얀 색 일색의 분위기가 한마디로 아름다움이었다. 이를 두고 비감의 아름다움이라 하던가.

    그리고 일상에서 만나는 사람들에겐 집안의 어머니 안부를 묻던 것도 박경리의 버릇이 되어 있었다. 남의 입에서 어머니라는 말만 나와도 반색이었다.

    이를테면 박경리 집을 왕래했던 동안 작가가 좋아했던 내 말본새가 있었다. 통영 등지의 경남 해안가에서 들리는 같은 말투 때문이기도 했을 것이었다. 대체로 점심시간이 갓 지난 시간에 작가의 집에 당도해서 이런 저런 한담을 나누다보면 저녁시간이 가까워지곤 했다. 서둘러 일어날라치면 저녁을 금방 해올 것이니 밥 먹고 가라고 붙잡았다. 어른의 환대는 함부로 물리칠 일이 아니었기에 스마트폰 이전 시대의 방안 정물(靜物)이던 유선전화기를 빌려야 했다.

    “어무이, 성생님이 저녁 묵고 가라 함니더.” 약국을 경영하고 있던 아내를 대신해서 내 식사 수발을 해주던 어머니에게 미리 귀띔을 해왔던 버릇대로 알리곤 했다. 거의 문맹에 가까웠던 내 어머니도 작가를 무척 좋아했다. TV 드라마를 보았기 때문이었던가. 그 당장에 작가는 참 듣기 좋은 말이다!”고 치사했다.

    작가는 나를 만나거나, 전화를 할 때마다 먼저 아내와 어머니 안부를 꼭 물었다. “아내가, 어머니가 큰 수술을 받았다던데 이제 그만 한가?”하고 묻고 또 물었다. 한쪽은 유방암, 또 한쪽은 백내장 수술을 받았다 했더니, 좀 기어들어가는 가늘고 높은 목소리로 아이구, 노인 모시고 산다고 고생한다. ”고맙다! 고맙다!”는 말을 연발했다.

    그 어간에서 당신의 어머니에 대한 그리움을 대리만족하고 있다는 느낌도 받았다. 작가가 타계 조금 전에 발표한 그래서 절명시(絶命詩)라고 말해야 좋을 서사시어머니생전에 불효 막심했음을 새삼 떠올리며 어쩔 줄 몰라 했다.

어머니 생전에 불효막심했던 나는/ 사별 후 삼십여 년/ 꿈속에서 어머니를 찾아 헤매었다 (중략) 불효막심했던 나의 회한/ 불효막심의 형벌로써/ 이렇게 나를 사로잡아 놓아주지도 않고/ 꿈을 꾸게 하나 보다

 

김형국, 서울대 명예교수(무단전재불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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