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극적인 삶

 

우리 민족은 예부터 욕심을 크게 경계해왔다. 과유불급(過猶不及)이라 하여 도에 지나침은 모자람만도 못하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특히 청렴을 대단히 높은 생활 덕목으로 상정하여 안분지족(安分知足)과 안빈낙도(安貧樂道)를 즐겼으며 이를 자랑스럽게 여겼다. 욕심은 반드시 화를 부른다는 사실을 익히 알고 있었다. 그래서 세종조의 명신 황희는 일인지하(一人之下) 만인지상(萬人之上)의 자리인 영의정에 앉아 있으면서도 빗물이 새는 집에서 살았으며, 좌의정 맹사성은 고뿔이 걸렸는데도 약을 지어 먹을 돈이 없을 정도였다. 이러한 가치관은 매우 높은 도덕성에서 기인하는 바람직한 민족성이었다.

그러나 게으르고 진취적이지 못한 사람들이 이 덕목을 자기의 변명도구로 삼는 바람직스럽지 못한 풍조도 함께 생겨났다. 과욕과 적극성은 출발에서부터 엄연히 다른 방향이지만 자칫 혼동할 수도 있다. 과욕은 목표개념 또는 심인성(心因性) 동기로서 목표가 불순한 만큼 이를 지향하는 과정 또한 정당하기 어렵다. 그러나 적극성은 과정개념으로서 목표를 설정한 다음 성취해 나가는 마음가짐이나 행동양식이다.

사람은 각자의 포부 수준만큼 이룰 수 있다고 한다. 여기서 포부라 함은 허황된 망상이나 상식적으로 실현불가능한 공상적 발상을 뜻하지 않는다. 다소 힘겨운 목표를 설정해 놓고 최선을 다해 성취하겠다는 마음가짐을 이른다. 사람의 유형 중에는 ‘성취인’이라는 재미있는 부류가 있다. 성취인은 이미 성취한 사람뿐만 아니라 성취동기를 가진 사람 즉, 포부를 가진 사람까지 포함하는 개념이다.

성취인은 목표를 설정할 때부터 다른 사람들과는 다르다. 땅위에다 동그라미를 그려놓고 일정한 거리에서 동전을 던져 동그라미 안에 들어가게 하는 놀이를 할 때 동그라미로부터 얼마나 먼 거리에서 던질 것이냐를 결정하는 문제가 생길 경우 성취인은 항상 적당히 어려운 정도의 거리를 주장한다. 아무나 할 수 있는 아주 가까운 거리에 도전하기를 싫어한다. 그렇다고 아주 멀리 떨어뜨려 놓고 요행을 바라는 것도 거부한다. 최선을 다해 노력을 기울일 때 소기의 목적을 달성할 수 있다고 판단되는 목표가 성취인의 포부수준이다.

성취인의 기질은 생래적(生來的)인 것이 아니다. 끝없는 자기혁신과 계발, 나는 할 수 있다는 자기암시 속에서 나타나는 인간형이다. 그들은 작은 성취에 만족하지 않는다. 그리고 성취의 과정을 매우 중시한다. 요행으로 얻은 대가에는 관심도 없고 가치도 두지 않는다. 목표는 성취일수도 있지만 자기의 능력에 대한 확인일 수도 있다. 인간은 끝없는 욕망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끊임없는 도전 속에서 자칫 자기 과신이나 탐욕에 빠질 우려가 없는 것은 아니다. 안분지족이나 평상심(平常心)을 강조하는 것은 바로 이런 경우를 경계하는 제어수단이지 나태와 무위(無爲)를 합리화시키는 도구가 아니다.

우리나라가 NICS(신흥공업국가군)의 선두로 부상하면서 선진국의 문턱으로 진입하려 할 때 세계 각국은 한국을 대만, 싱가포르, 홍콩과 더불어 ‘아시아의 네 마리 용’으로 비유했다. 그러나 ‘용’이라는 칭호가 익숙해지기도 전에 그들은 우리를 ‘지렁이’라고 비하했다. 국민 1인당 GNP가 겨우 5천 달러 수준에 이르자, 우리는 그만 조그만 성취에 취해버렸고, 한국의 급속한 성장에 경계와 찬사를 보냈던 세계 각국은 ‘샴페인을 너무 일찍 터뜨렸다’고 비아냥거렸다. 그동안 피땀 흘린 노력이 허물어지면서 국제사회의 웃음거리가 되어버린 것이다.

‘이만하면 됐다.’는 생각은 우리 가치덕목인 안분지족을 잘못 해석한데서 온 결과일 수도 있다. 문학도에게 톨스토이 봉우리는 더 이상 오를 수 없는 최고의 봉우리로 인식된다. 그러나 천신만고 끝에 톨스토이 봉 정상에 오르고 나면 바로 그 너머에 도스토예프스키 봉우리가 우뚝 버티고 있다. 그때 그 봉우리를 보지 못하거나 ‘이만하면 됐다.’고 주저앉아 버리면 문학적 대성을 이룰 수 없다.

‘도전과 응전’은 인류사의 끝없는 숙명이며 여기서 좌절한 개인이나 집단은 역사 속으로 소멸된다. 정체란 곧 퇴보이기 때문이다. 포부는 의욕을, 의욕은 적극적인 사고를 불러일으킨다. 오늘 자고나면 내일 또 해야 할 일이 가득 차있는 사람의 가슴에는 신바람이 항상 불어온다. 기어이 목표를 달성할 수 있는 엄청난 신바람 에너지로 바뀌는 것이 한민족의 의식구조다.

 

여상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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