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생각 저 생각 (62) 우도 15

 

   “다른 사람을 나의 사고방식에 넣는 방법의 둘째 이야기다. 다른 사람의 의견을 존중하고, “당신이 틀렸어!”라고 말하지 말라는 것이다. 흔히 영어로 대화를 할 적에, “You are right!”(당신이 맞아!)란 말을 하게 된다. 맞지 않은 것은 틀린 것이다. 틀렸으면, “You are wrong!”(당신이 틀렸어!)이라고 하게 된다. 그러나 틀렸더라도 절대로 그렇게 말하지 말라는 것이다. 참기 어려운 것이 많겠지만, 말하고 싶은 것을 참기도 어렵다.

   「마태복음5장의 <산상수훈>에는 예수가 복이 있는 자를 여럿 거명하고 있다. 그 제일 처음이 “Blessed are the poor in spirit: for theirs is the kingdom of heaven.”이다. 우리말 성경은 심령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그들의 것임이요.”라고 되어있다. Spirit을 심령이라고 한 것이다. 내가 어려서 읽던 성경에는 마음이 가난한 자였던 것으로 기억하고 있는데, 요즘은 마음이 성령이 되었다. 성령은 어려운 한자이고, 영어로는 holy spirit이다. Spirit을 그냥 마음이라고 하면 좋을 것 같은데 왜 굳이 성령이라고 하는지 알 수 없다. 아마 8절에서 “Blessed are the pure in heart: for they shall see God.”마음이 청결한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하나님을 볼 것임이요라고 하였는데, 여기서 마음이라고 한 heart와 구별하기 위하여 spirit을 심령이라고 한 것이 아닌가 한다. spirit마음으로 하고, heart가슴이라고 하면 어떨까 하는 생각도 든다.

   내가 <산상수훈> 이야기를 위에서 장황하게 한 것은 마음이냐 성령이냐가 문제라고 생각해서가 아니다. 예수가 제일 먼저 참는 자에게 복이 있나니 천국이 저희들 것이요라고 했으면 더 좋았을 것이란 생각을 했기 때문이다. 참는 것도 여러 가지가 있겠으나, 말을 참는 것이 어렵고도 중요하다. 상대방이 틀렸어도, “당신이 틀렸어!”라고 말하지 말자. 그렇게 말하면 상대방이 좋아할까? 설혹 잘못을 알았어도 기분이 좋을 리 없다. 왜 다른 사람의 기분을 나쁘게 만드는가? 적을 만들고 싶은 것인가? 칭찬은 하되, 잘못을 지적하는 말은 참자.

   카네기의 이야기로 돌아간다. 테오도르 루즈벨트는 백악관에 있을 적에 자기가 하는 일의 75퍼센트만 정당했으면 좋겠다고 말한 적이 있다고 한다. 그것이 그의 행동의 기준치였다. 보통 사람의 경우에는 아마 55퍼센트만 정당하다면 하는 일의 거의 모두가 성공일 것이다. 55퍼센트만 바르게 주식투자를 해보라. 당장 부자가 될 것이다. 그런데 55퍼센트커녕 얼마나 정당한지 어떤지 전혀 모르면서 어떻게 다른 사람이 틀렸다고 말할 수 있는가? 이러이러해서 상대방이 틀렸다고 증명을 한다고 하자. 자기가 더 영리하다는 것을 나타내는 행동일 뿐이다. 상대방의 의견을 바로 잡아 주겠다는 것밖에 아무 것도 아니다. 싸움을 돋울 뿐이다.

   증명이 필요한 경우에도 그것을 먼저 공개하여서는 성공하기 어렵다. 상대방이 모르게 하여야 한다. 4백 년 전에 갈릴레이(Galileo Galilei, 1564-1642)는 이렇게 말했다. “당신이 누구를 가르칠 수는 없다. 그 자신이 알도록 당신이 도울 수 있을 뿐이다(You cannot teach a man anything; you can only help him to find it within himself.).” 또 소크라테스도 이런 말을 누차 했다. “나는 내가 아무것도 모른다는 것 하나만 안다(One thing only I know, and that is that I know nothing.).”

   하나 더 있다. 영국의 정치가이고 저작가인 체스터필드(4th Earl of Chesterfield, 1694-1773)경은 이렇게 아들에게 말했다. “되도록 다른 사람보다 지혜로워라. 그러나 그렇다고는 말하지 마라(Be wiser than other people if you can; but do not tell them so.).”

   다시 <산상수훈>이다. “네 반대자에 곧바로 동의하라(Agree with thine adversary quickly.)”고 예수는 가르쳤다.(마태복음5, 25.) 또 예수 탄생 2,200년 전에 이집트의 아크토이(Akhtoi) 왕은 아들에게 이렇게 충고했다. “외교적 수완을 발휘하라. 그러면 네가 원하는 바를 얻게 될 것이다(Be diplomatic! It will help you gain your point.).”

   그가 누구든 상대방과 논쟁을 하지 말고, 그들의 잘못을 말하지 말고, 그들을 격동시키지 않는 것이야말로 다른 사람을 나의 사고방식에 넣는 두 번째 방법이다. 그러려면 말을 참아야 한다.

 

최명(서울대학교 명예교수)

[추기: (1) 위에서 참는 것도 여러 가지가 있다고 했다. 금주(禁酒)를 약속하고, 며칠 지나 참는 것도 한도가 있다면서 술 마신 장비(張飛)의 이야기를 한 적도 있다. 귀머거리 삼년이요, 벙어리 삼년이라는 속담(?)도 있다. 여자가 출가하면 매사에 흉이 많으니 귀머거리가 되고, 벙어리가 되어 삼년씩 살아야 한다는 말이다. 벙어리가 되려면 말을 참아야 한다. 시집살이하기가 몹시 어려움을 이르는 말이다. 또 보아도 못 본 체하고 지내야 하니, “장님 삼년도 있을 것이다.

(2) 참기 어려운 상황이 계속되면, “못참겠다하고 감정이 행동으로 폭발되기도 한다. 개항 이후 조선에서 일어난 일 가운데 구식군대 차별하네 못참겠다 임오군란이 있었고, “물가상승 관리횡포 못참겠다 농민운동은 전봉준이 주도했다. 초등학교 6학년 교재에 나오는 노래 가사라고 한다.

(3)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이란 소설도 있다. 체코 출신 작가로 프랑스로 망명한 밀란 쿤데라가 프랑스어로 1984년에 발표하였다. 프라하의 봄이 배경이다. 영화로도 제작되었다.

(4) “못참겠다. 꾀꼬리!”란 아이들 속어도 있다. 짝이 그리워 참지 못하고 우는 꾀꼬리를 비유하여, 참지 못하고 떠드는 것을 말하는 것인지?

(5) 위에서 “Agree with thine adversary quickly.”<산상수훈>이야기를 했다. 나는 그것을 네 반대자에 곧바로 동의하라로 번역하였다. 내가 갖고 있는 여러 한글 성경에는 예컨대, “너를 고발하는 자와 급히 사화하라라고 되어있다. 그래 한글사전에서 사화를 찾았다. 한자로는 私和이고, “원한을 풀고 서로 화평함이라고 나온다. 번역 성경에는 어려운 낱말과 표현이 너무 많다. 비교적 쉬운 말로 박동순이 최근에 번역한 말씀: 스터디 드라마 바이블에는 그 원수와 서둘러 화해하여라.”이다. 어느 것이 나은 번역인가? 말만 참을 것이 아니라, 글도 참아야 하는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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