흑백논리

 

흑백논리(黑白論理)는 민주사회의 꽃인 토론문화를 병들게 하는 폭군이다. 여기에는 처음부터 독단과 독선이 개재되어 있다. 어떤 사안에 대한 답이나 결론을 미리 상정해 놓고 자기와 다른 모든 의견을 부정으로 몰아붙이는 것이 흑백논리다. 정답은 하나밖에 있을 수 없다는 수학적 공리에 바탕을 두고 있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흑백논리만큼 비수학적인 것도 없다. 자기의 정당함만 논리적으로 입증하려 할 뿐이지 남의 부당함을 설득력 있게 지적하지 않는다.

내가 정당하니만큼 그 외의 모든 것은 부당하다는 논리다. 이것은 엄청난 도그마(Dogma)이다. 흔히 우리 사회의 병폐로 지적되는 흑백논리는 우리 민족의 고유한 정서는 아니다. 비난성명과 반박성명이 난무하는 우리나라의 근대정치권에서 형성된 기류가 아닌가 한다. 자기의 정당성만 주장한다고 해서 남의 부당성이 입증되는 것이 아니다. 내가 희다고 해서 남은 모두 검다는 논리만큼 위험한 사고는 없다. 흰 것이 하나밖에 없는 것이 아니다. 이것도 희고 저것도 흰 경우가 얼마든지 있을 수 있고, 희지 않다고 해서 모두 검을 수만도 없다. 회색도 있을 수 있기 때문이다.

엘레아학파의 철학자 제논의 논리는 한 마디로 역리다. 물체는 운동할 수 없고, 빠른 것이 느린 것을 앞지를 수 없고, 나는 화살은 정지되어 있고, 임의의 시간은 그 시간의 두 배와 같다는 억지 논리를 세워서 이를 반박해 보라는 것이었다. 토끼가 거북이를 분명히 앞질렀다는 경험적 사실만으로도 제논의 역리를 무력화시키지 않았던 것이 그리스의 철인들이었다. 억지 주장인 줄이야 제논 스스로도 알고 있었지만 상대방의 주장을 논리적으로 반박하기 위해 얼마나 오랜 시간을 보냈는가!

아리스토텔레스는 그의 저서 「자연학」속에서 ‘운동에 관한 제논의 주장은 사람들을 곤혹스럽게 만들었다.’고 했을 뿐 논리적 반증 없이 제논을 무턱대고 매도하지는 않았다. 거지 철학자 디오게네스는 제논의 주장을 전해 듣고 스스로 걸어 보이면서 ‘운동부정론’을 부정했다. 그러나 그의 제자가 스승의 부정을 보고 기뻐하자 갑자기 제자의 따귀를 갈겼다. 제논이 이론적 근거를 제시하였으므로 반박 역시 이론적이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구체적인 논증도 없이 내가 백(白)이니까 다른 모든 주장은 흑(黑)이라는 우리 사회의 흑백논리를 통렬하게 질타하는 대목이다.

수학의 증명형식으로 통용되는 귀류법(歸謬法)이 언뜻 생각하기에는 흑백논리와 유사한 것 같지만 논리전개의 순서가 정반대이다. 내 주장이 옳기 때문에 나와 다른 주장은 틀렸다는 것이 아니라, 나와 반대되는 주장(명제)의 모순을 먼저 밝힘으로써 나의 주장이 옳다는 것을 밝히는 것이 귀류법이다. 1950년 미국 공화당의 매카시 상원의원이 정부 내의 적색분자를 비롯한 많은 정적들을 추방하기 위해 자기와 반대되는 주장을 펴는 사람은 무조건 공산주의자로 몰아붙였다. 이후 이러한 사상과 사고를 매카시즘이라고 해서 토론사회에서 매우 경계하고 있다. 흑백논리의 대표적인 케이스이기 때문이다.

본시 우리 민족은 극단적인 2분법을 배척했다. 널리 포용하는 것을 큰 덕목으로 삼았다. 모든 대상을 진위(眞僞), 선악(善惡), 미추(美醜)로만 양분해 버리는 것은 매우 위험하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노복(奴僕)들의 싸움을 두고 황희 정승이 내려준 판결은 좋은 예이다. 한 노복이 와서 자기가 옳다니까 자네 말이 옳다고 했다. 다른 노복이 와서 그렇지 않다고 하니까 또 자네 말이 옳다고 했다. 아내가 무슨 그런 판결이 있느냐고 하니까 당신 말도 옳다고 했다.

하나가 맞다고 해서 그 반대되는 개념이 틀렸다는 주장은 과학세계에서도 사라지고 있다. 빛의 파동설(波動說)과 입자설(粒子說)은 서로 모순되는 개념이면서도 엄연히 양립하고 있다. 파동이라면 입자일 수 없고 입자라면 파동일 수 없는데도 파동으로도 입증되고 입자로도 입증되고 있다. 파동임이 입증된다고 해서 입자임이 부정될 수 없음을 보여준다.

흑백논리가 횡행하는 사회에서는 크고 작은 싸움이 멎을 수가 없다. '만인에 대한 만인의 투쟁‘이 끝없이 이어질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런 풍토에서는 신바람이 일어날 리가 없다.

 

여상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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