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의 무당기질(박경리 62)

 

    용정 땅에 하동이란 지명이 있음을 전해 듣고 작가도 놀랐지만, 그것을 알아냈던 김성훈 교수도 스스로 먼저 놀랬다 했다. 김 교수는 안동 출신 선비 한 분이 번채롭다번채공(煩彩公)’이라 부를 정도로 평소 무척이나 부지런한 분이다. 대한민국 사람이 오래 미답이었던 용정을 발걸음 했을 때 아마도토지2부의 무대를 유심히 열심히 둘러보고도 남았다.

  『토지1부의 주역들인 하동사람들이 유민으로 흘러들어간 용정인가 간도인가에서 작가가 듣지도 알지도 못했던 곳이 하동이었다니 이를 두고 보통사람의 식견은 텔레파시가 통했다고 반응하는 것이 고작 아니었던가. 그런데 출신 전라도 향토역사에 정통하는 등 인문적 식견이 남다른 김 교수는 대뜸 작가를 문학적 무당(巫堂)’이라 했다.

문학적 무당이라고

     한민족 정서의 역사적 원류인 샤머니즘에서 샤만(shaman)이 바로 무당이다. 신과 통할 수 있는 영매자(靈媒者)는 보통사람이 범접 못하는 초능력을 발휘하는 존재다. 무당은 신이 오르면 비체험 세계까지 넘나든다. 보통사람의 식견으로 간도 땅에도 하동이 있음은 우연의 일치라 하겠지만 신이 오른경지, 무당적 초월적 능력에서 말하면 우연이 아닌 필연인 것이었다.

     김 교수는 작가가 문학적 무당이 틀림없다고 공개 석상에서 발언하기도 했다(왜 원주의 박경리 선생인가,” 원주학 심포지움, 2008.11.25). 그러면서도 전통시대에 천민으로 치부되었던 사회신분으로 작가를 비유함이 불경의 무례 언사가 아닌지, 속으로 주춤하기도 했단다.

     한데 그 무당적 기질은 이미 작가와 왕래가 많았던 언론인이 길게 말한바 있었다. 적은 글(김징자, “영성의 작가, ‘공수’”, 박완서 외,수정의 메아리, 1995, 43-7) 키워드인 영성은 원초적인 체험 속에서 얻어지는 것들, 기성의 지식이나 앎이 배제된 만물에 대한 외경심, 신비, 그런 세계라 했다. 이를테면

의학이 아무리 인간의 육체를 해부해 들어가 보아도 심장을 움직이게 하는 운동의 본체를 이해할 수는 없다. 그 운동의 본체에 작가는 영성이라 이름을 붙인다. 작가를 일종의 무당이라 보는 것도 그의 샤머니즘과 맥이 통한다. 그는 이런저런 지식을 꿰어 맞추어 쓰는 글을 문학으로 인정하려 하지 않는다.

예술적인 영감이란 합리적이거나 지적인 사고를 필요로 하지 않는다. 그것은 직관적으로 우리에게 와닿는 심리적 상태 또는 외계와의 교감 같은 것이다...

소설을 쓰다가 막히면 그는 맨발로라도 마당에 나가 밭을 갈기도 하고 배추벌레를 잡기도 한다. 이런 일련의 자연과의 접촉은 다시 그에게 영감을 일으켜 주기도 한다. 그래서 그의 소설은 영성이라 할지 무당이라 할지 그런 생명력이 넘치는 어떤 힘이 자연스럽게 힘차게 토해내는 공수’(무당의 입을 빌려 신이 인간에게 의사를 전하는 일)같은 것으로 만들어진다. 토지라는 아직 끝맺음도 안 된 작품이 영화로 TV 드라마로 몇 번이든 사람들에 갈채를 받을 수 있는 것도 바로 그 영성에서 우러나오는 순전한 목소리의 전개 탓일 것이다.

     이런 관점은 문헌을 앞세우는 문학평론가들이 할 수 있는 평설은 아니었다. 인문적 식견으로 무장된 글쟁이의 직관으로만 적을 수 있었던 글이었다. 이 점에서 김 교수 혼자 작가를 무례하게 말했다고 가슴 삭일 필요는 없었다. 기실 김 교수의 무당 발언을 나중에 전해들은 작가가 오히려 흔연(欣然)해 여겼다. 무당 기질성은 작가가 진작 직접 자복했던 말이기도 했기 때문이었다.

어떤 때는 얘기의 실마리가 풀리지 않아서 꿈속에서도 여기를 넘어가야 될 텐데 하는 수가 있어요. 말하자면 작품에 어떤 현실감을 준다든지 복선이나 포석을 놔야 하는데 그것이 막혀서 않다가 어떤 계기가 있어서 갑자기 해결될 때가 있어요. 또 앞서의 복선이라든가 이름 같은 것이 뒤에 가서 우연히 맞아 떨어져서 필연적인 연관을 짓는 일이 있는데, 이런 것은 글을 쓰면서도 참 신기롭다는 느낌이 들 때가 많아요(김치수, “박경리와의 대화, ” 168-9).

사람의 정신은 무서운 것 같아요. 집중하면 무엇이 보이는가 봐요. 소설에 나오는 조준구와 같이 조 씨 성을 가진 사람이 하동 평사리에 살았으며 소설에서와 같이 성품도 비슷했고, 고래등 같은 한옥에 살았다고 합니다. 소름이 끼쳐요(진의장, “인연 그리고 박경리 선생,” 2014, 145).

    무당 비유가 작가에 대한 예의로 합당한지 여부와는 관계없이, 내 생각에 엄청난 분량의 글을 한세대 가까이 끌고 온 유례없는 몰입은 신내림 같은 신명이 없고선 불가능했을 터였다. 해서토지집필을 일러 나는 귀신에 씌였다는 식으로 수동형으로 비유했던 적 있었는데(김형국, 귀신에 씌인 한 세대의 고독”, 박완서 외,수정의 메아리, 1995), 다시 생각해보니 신이 올랐다는 능동형 표현으로 고쳐야 마땅하겠다 싶었다.

꿈은 이뤄진다 했다

    또 하나, 사회과학적 해석도 가능했다. 이건 자기실현적 예측(self-fulfilling prophecy)”이라고, “말이 씨가 되었다또는 꿈은 이뤄진다는 예사말대로, 사람이 간절히 구하고자 하는 바람과 믿음이 있다면 언젠가 실현될 가능성이 높다는 경험을 근거로 미래연구(Future Studies)’에서 자주 인용하는 이론이다. 그럴만한 목표를 정해 놓으면 사람들이 의도적으로 또는 부지불식간에 그걸 향해서 행동하고 노력하기 마련인 결과다. 이 이론처럼 작가의 집요한 상상력은 마침내 체험하지 않았던 현장까지도 근사하게 묘사할 수 있는 지경에 이를 수 있었다하면 억지춘향일까.

    한중 국교정상화(1992)를 앞둔 시점이던 1989, 주위의 주선으로 박경리는 난생 처음 해외여행으로 만주 일대를 구경했다. 그때 당연히 조선족이 많이 몰려 사는 용정도 가보았다. 용정을 다룬 토지2부가 197210월의 문학사상창간호를 시작으로 197510월로 연재를 끝났으니 현장 방문은 그로부터 14년 뒤였다.

     소감이 어떠했던가. “자료 부스러기를 모아서 마음속에서 만들었던 용정, 그러나 그 실체는 낯설기만 했다.”는게 일성이었다. 게다가 <선구자> 노래로 익혔던 해란강이 쓰레기투성이였음이 큰 실망이었다. 정작 당황했던 것은 연길(延吉)이 청말(淸末)까지 국자가(局子街)로 불렸던, 둘이 같은 도시란 사실이었다. 소설에서 연길과 국자가를 별개의 도시로 잘못 다루었다는 말이었다. 공 노인이 최서희의 금괴를 팔아준 곳이 국자가였고, 토지 투기용 정보를 얻어낸 곳도 국자가였다(박경리,만리장성의 나라, 1990, 174).

     김 교수는 김대중 정부 때 농림부장관을. 나중에 원주의 상지대 총장을 역임했다. 토지문화관이 준공되고 난 뒤 꽤 오랫동안 충주 가는 대로에서 문화관에 이르는 1킬로 남짓 시골길이 비포장인 채로 남아있었다. 그 사실을 알고는 농림부가 가용할 수 있는 새마을관련 자금을 원주시에 보태서 도로 포장을 하게 해주었다.

 

김형국, 서울대 명예교수(무단전재불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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