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들린 문학적 상상력(박경리 61)

 

    삶의 형편을 땅과 연관시킴은 우리 일상의 발상법이다. 입장의 난감함을 일컬어 설 땅이 없다하고, 형편이 절망적일 때이면 땅이 꺼진다,” 한숨 짓는다. 영어도 비슷한가 발생한다(take place)” 술어는 땅을 차지한다.‘는 뜻이다.

  대하소설토지는 명멸하는 삶을 많이도 그렸다. 땅과 함께 했던 그들 생활근거지는 ()이 같은()” 동네()였고, 마을이었고, 고을이었다. 제 땅에서 쫓겨나선 유민(流民)신세로 나라 밖에서도 더불어 살았다.

    19세기 말, 선대가 참판을 지낸 영천 최 씨 집안을 중심으로 평사리에서토지1부 이야기가 시작한다. 핵심 인물 최서희는 어머니가 불륜의 사랑을 맺어 도망쳤던 탓에 일찍부터 외롭게 자란다. 아버지 치수마저 재산을 탐낸 사람들의 음모에 빠져 목 졸려 죽는다. 남은 존속 할머니 윤 씨도 돌림병으로 세상을 뜬다. 이를 호기삼아 일본 물 먹은 먼 피붙이 조준구가 참판댁 재물을 삼켰다. 불가피 서희는 가노(家奴)와 소작인 몇몇을 거느리고 1908년에 만주 용정으로 떠나는 것으로 1부 이야기가 끝난다.

소설가 상상력이 만든 현장

    1부 집필과정을 들은 열성 애독자들이 놀랐던 대목 하나가 있었다. 작가가 소설 구상단계에서 그 무대로 삼은 심중(心中)의 장소를 현장 답사는 하지 않았다는 사실이었다. 악양들 평사리는 먼발치에서 잠시 바라본 것이 전부였다. 정작 고심했던 바는 당신 소설어인 서부 경남 말의 통용권이면서 만석꾼 정도의 지주가 있을 법한 곳을 고른다는 기준으로 찾아낸 곳이 결과적으로 평사리로 낙착되었다는 말이었다. 이야기 구성의 소프트웨어가 먼저였고, 지리산 자락 악양면은 전자에 맞게 이름만 빌린 하드웨어였다.

  주로 경상도 쪽을 다루다보니 사람들의 행색, 어투, 식성 등 이른바 지방 생활문화 묘사는 당신의 개인체험으로 충분했다. 하지만 2부의 주역 유민들이 자리 잡았던 용정 일대는 작가의 직접 체험이 전혀 없었다. 한때 당신 아버지의 사업처가 만주 신경(新京)이었기 때문에 집안에서 오가던 전언 또는 소문으로 들었던 간접체험이 전부였다. 해서 중국 공산당 형성에 대해 적었던 미국 언론인 스노우(Edgar Snow, 1905- 72)중국의 붉은 별(Red Star Over China, 1937; 홍수원 옮김, 1995),간도의 사정이란 간단한 지역 개관서, 신문 등에 나타난 흐릿한 당시 사진 몇 장 등만 겨우 참고했을 뿐이었다(이상진, “토지의 공간과 역사적 상상력,” 1회 박경리 문학제 문학포럼, 2010). 한중 국교가 없었던 시절이라 현지의 고금 역사와 지리에 대한 정보 얻기가 무척 어려웠다는 말이었다.

  이 점에서 안수길(安壽吉, 1911-77)1959년 봄부터사상계에 연재했던북간도(北間島)가 고맙게도 큰 참고가 되었다. 5부작 장편(1967)북간도에 이주한 이창윤 일가의 4대에 걸친 수난과 투쟁을 통하여 조선 후기부터 8·15광복까지 한국 민족의 수난사를 그린 대하소설이었다. 북간도토지2부 집필에 큰 영감을 주었음은 “1911년의 오월, 용정촌(龍井村) 대화재(大火災)는 시가의 건물을 절반 이상을 잿더미로 만들었다.”2부 총 4권의 첫머리 문장이 바로 확인해주었다. 전자의 제3부가 바로 용정 대화재 발생이 이야기의 핵심이었다.

  함남 함흥 출생 안수길은 간도에서 중학을 다녔고, 월남하기 전에 거기서 교원 및 기자생활을 했다. 박경리는 안수길에서 무엇보다 간도지방의 말투를 많이 배웠다. 이를테면 2부의 대표 사건이라면 서희가 길상과 부부인연을 맺는 이야기였다. 우리가 넓게 잡아 간도(間島)’라 부르는 만주의 용정 땅에서 할머니가 남긴 패물을 팔아 쌀가게를 꾸리는 한편으로, 땅 투기도 해서 서희는 큰돈을 모은다. 이런 일들을 뒷바라지한다고 가노(家奴), 아니 이제 가신(家臣) 노릇의 길상이 거래처 일로 회령을 자주 오갔는데, 그 사이로 여자 한 사람을 정했다는 소문이 파다했다. 그를 남편으로 맞겠다고 작심한 서희는 회령 출장길의 길상을 따라나섰다. 병원 간다는 핑계였다. 문제의 여인 옥이 엄마를 찾았다. 길상이 과연 과부장가를 들려는 지 그녀에게 묻자 간도 말투로 답한다(토지 22, 통권 6, 2002, 115-6).

앙입매다. 거짓말으 마옵소꽝이. 어찌 모르겠습매까. 생각으 해보옵소. 어째 새 총각으 처지 알라까지 따른 가스집(과부)과 혼인하겠슴? 사람으 괄시하면 앙이 됩매다. 누귀 그 말으 믿겠소꽝이? 그러잖에도 그분이 도와준 돈으 갚겠다아 그 일념으로 밤 세워가문서리 바느질으 하는 기요.

만주 땅에도 하동이

    2부의 주 무대는 용정(龍井)이다. 중국 길림성 연변 조선족 자치주 도시로. 한국 사회에 알려진 바로는 인구 26만여 명에 조선족 비율이 70%이다. 만주족이나 한족이 아닌, 한민족이 개척했던 곳이었는데 그때 조성했던 용두레우물에서 도시 이름이 생겼다.

    백두산 동쪽 기슭에 자리한 용정은 동남으로 두만강을 경계해서 북한과 접해 있다. 시인 윤동주(尹東柱, 1917-45)의 고향으로 그리고 애창 가곡 하나인 조두남(趙斗南, 1912-1984) 작곡 <선구자> 노랫말로 오늘의 한국인에게도 친숙하다. 도시 가운데로 두만강지류 해란강(海蘭江)이 흐른다. 가사는 용정의 도시모습을 랜드마크 중심으로 그림처럼 그려놓았다.

일송정 푸른 솔은/ 늙어 늙어 갔어도/ 한줄기 해란강은/ 천년 두고 흐른다// 지난날 강가에서/ 말달리던 선구자// 지금은 어느 곳에/ 거친 꿈이 깊었나// 용두레 우물가에/ 밤새 소리 들릴 때/ 뜻 깊은 용문교에/ 달빛 고이 비친다// 이역 하늘 바라보며/ 활을 쏘던 선구자// 지금은 어느 곳에/ 거친 꿈이 깊었나//용주사 저녁 종이/ 비암산에 울릴 때/ 사나이 굳은 마음/ 깊이 새겨 두었네// 조국을 찾게노라/ 맹세하던 선구자/ 지금은 어느 곳에/ 거친 꿈이 깊었나

    우리 현대에 들어 용정을 일찍 다녀본 이로 김성훈(金成勳, 1939- ) 업경제학자가 있다. 도서(島嶼)지방 등을 함께 연구한 이력으로 가까이 지내면서 1980년대 중반부터 같이 단구동도 출입했다. 그는 유엔과 관련된 직분 때문에 한중(韓中)수교가 트이기 훨씬 이전부터 중국 일대를 자주 다녔다. 언젠가 중국을 다녀온 직후 단구동을 함께 찾았다, 직접 만나본 용정이 소설 속 용정과 직감으로 아주 비슷했다는 말이었다.

    유사함의 보기로 용정 부근에 한 마을이 있는데, 마을 이름이 바로 하동(河東)이었다. 그 곳이 하동 지명을 갖게 된 연유는 두 가지 추리가 가능하다 했다. 하나는 일제 박해를 피해 많은 조선백성이 만주로 도망가서 마을을 일구고 논농사를 꾸렸던 역사에서 그 하동이 경상도 하동사람이 많이 모였던 동네일 수도 있다는 말이었다. 또 하나는 섬진강 동쪽의 경상도 땅 하동처럼, 만주의 그 하동도 땅자리가 용정을 가로지르는 해란강인지, 아니면 용정과 회령 사이의 육도천(六道川)인지의 어느 동쪽에 위치할 뿐 하동 출신들의 정착과는 무관하겠다는 견해였다. 해도 우연의 일치치곤 참 기이하지 않은가. 아무튼 만주에도 하동이 있다는 김 교수 말에 하동사람들을 대거토지』등장인물로 삼았던 작가가 그렇게 반길 수 없었다.

 

김형국, 서울대 명예교수(무단전재불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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