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한’ 문학론(박경리 58)

 

    문학을 바라보는 박경리의 시각엔 한 정형이 있었다. “내가 행복했었더라면 문학을 하지 않았을 것!” 문학과 함께 해온 자신의 삶을 이야기할 때마다 빠지질 않았던 말이었다.

    이를테면 후배작가 오정희(吳貞姬, 1947- )에게도 같은 톤이었다. “선생님께서는 종종 내게 소설을 쓰지 않는다고 나무라시고, 장편소설을 쓰라고 다그치시다가도 그냥 행복하게 살아라, 그게 제일 중요한 것이지라고 말하곤 했다(오정희, “봄날은 연두에 물들어,” 현대문학, 20086, 312-7). 물론 시편 하나 <일 잘하는 사내>를 적어 스스로에게도 다짐했던 말이었다. ”다시 태어나면/ 무엇이 되고 싶은가/ 젊은 눈망울들/ 나를 바라보며 물었다// 다시 태어나면. 일 잘 하는 사내를 만나/ 깊고 깊은 산골에서/ 농사짓고 살고 싶다/ 내 대답//(후략)“

    인간은 타고나기를 기본적인 욕구 내지 필요를 갖고 있다. 사계에서 즐겨 인용했던 심리학자 마슬로우(A. Maslow)의 개념에 따르면 먹고마시고잠자는 등의 생리적 욕구, 사랑안정 등의 정의(情誼)적 욕구, 정체성(identity)을 인정받고 싶은 사회적 욕구, 마지막 최상위 욕구로 창조개성자유의미보람조화 등을 누리려는 자아실현(self-fulfillment)의 욕구가 있다(정범모,인간의 자아실현, 나남, 1997). 박경리에게도 문학은 가까운 말로 보람의 누림인 자아실현의 한 방편이었다.

    그리고 인간의 욕구체계가 구현되는 방식은 둘로 나누어진다 했다. 하나는 부족동기인데, 잠이나 식욕 등의 생리적 욕구는 그 부족이 채워지면 더 이상 욕구가 발동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제가끔 충족이 되면, 잠도 더 자려 하지 않고 배도 더 채우려 하지 않는다는 말이다. 견주어 성장동기는 그 상한이 없는 경우다. 돈벌이, 명예사냥 등은 하면 할수록 갈증이 난다.” 훌륭한 학자의 학문적 관심이나 예술가들의 작품 성취동기는 하면 할수록 더욱 매진하려는 성향을 나타난다 했다.

    박경리가 후배 작가들에게 했던 말은 사람 일대에서 일상에서 누릴 수 있는 행복감이 중요하지, “목숨을 걸듯 문학에 매달릴 것까지는 없다는 그런 뜻이었다. 그렇게 말했음은 문학이 당신에겐 성취동기의 대상이기 보다는 부족동기가 그 출발이었다는 말이었다. 당신의 신상에서 만났던 불운불행을 문학으로 초극하려했던 점에서 부족동기의 실현이었던 것. 현실의 가혹함에서 벗어나 저 피안으로 가려는데 그 길이 문학세계였다는 말이었다. 이 시도가 성공 가도로 접어들었고 점차 보람을 누리면서 더욱 보람에 대한 갈증이 작동하는 성취동기 모드에 들면서 문학에 전력투구했던 경우였다.

공사(公私) 부족동기설

    개인이나 사회의 궤적을 말할 때 부족동기설은 무척 설득력이 큰 개념이다. 이를테면 현대한국이 보여주었던 고도 경제성장도 부족동기의 국민적 통감이 그 추동력이었다는 설명도 많은 사람들이 수긍했다. 경제성장이 중앙정부가 발동을 걸었던 이른바 국가자본주의의 승리라 했는데, 그 시절 국민적 정서가 “4천년의 절대가난을 씻으려한다는 부족동기성 정치권의 호소에 절대적으로 동조했던 것이 그 성공의 열쇠 하나였다 했다.

    부족동기설은 박경리의 문학론에선 포한(抱恨)이란 말로 태어났다. 단도직입으로 작가포한이 우리 정서라 했다. 복수의 뜻이 강한 일본문화의 원한(怨恨)’과는 달리, 우리 포한은 꺾임뺏김모자람 등에 주저앉지 않고 그걸 반전(反轉)시키려는 자세란 말이었다. 이를테면 내가 공부 못한 게 포한이 져서 내 새끼는 죽어라고 공부시킬란다!.”가 옛적부터 우리 사회에 다반사로 통했던 수사(修辭)였다(토지 43, 통권 15, 2002, 118쪽 참조).

    종종 우리의 문화적 특성을 한()에 절은 문화, 한탄의 문화, 퇴영(退嬰)의 문화로 풀이하는 일설도 있었다. 이른바 식민사관의 일환이었다. 오히려 우리 정서는 배고픔이 한이 되어 가난을 이기려 열심히 일한다는 넋두리가 잘 말해주었다. 이처럼 한이 긍정을 낳기 위한 소망이자 동기로 작용하는 경우이고, 그만큼 신명으로 반전(反轉)할 수 있는 바탕이었다.

     당신의 문학 또한 상배(喪配), 참척 등 개인에게 더 이상 처절할 수 없었던 비극의 몸서리쳤던 시간을 이겨내려 함이었다. 설상가상으로 닥쳤던 일신의 불운이 겹겹이 한()으로 쌓였던 마음 생채기를 문학 몰입을 통해 다스려왔음을 시와 산문을 통해서 틈틈이 말해왔다.

포한긍정론

    그리고 이 대목은 소설 속 주인공의 말로 아주 자주 피력했다. 자네 말이 맞네. 원력(願力)을 걸지 않고는 그같이 그릴 수는 없지. 사람의 본질에 대한 원력이라면 슬픔과 외로움 아니겠나“(토지 51, 통권 17, 2002, 382), 이렇게 길상의 불화 그리기를 한으로 풀어 말했다. 슬픔과 외로움이 한이고, 이게 승화로 원력이 된다는 메시지였다.

    그럼 전문가는 한을 어떻게 살렸던가(천이두,한의 구조 연구, 문학과 지성사, 1993, 236). 한의 우리 정서가 포한에 머물지 않고 해한(解恨)으로 나아간다고 간파했음은 박경리와 한 길이었다.

한은 좌절상실결핍 등에 즈음하여 그렇게 되었음에 대한 원망(怨望), 이어 무력한 자신의 자각에서 연유하는 한탄(恨歎)이 출발점이다. 이로부터 한국인다운 심성이 발동한다. 인내와 극기로써 자기 한을 초극하여 성취동기로 승화시킴과 함께 한을 품게 한 요인에 대해 관용의 자세()를 보여주는 것이 바로 한국인의 정서가 되어왔다. ()()에서 시발한 한이 원()()으로 질적 변화를 보여주는 삭임 기능이 작동한다. 삭임의 기능은 우리 문화권에서 미각적(), 예술적(), 윤리적(슬기) 가치의 생성과 깊이 연관된다.

    포한문학론의 주장이 당신의 체험론만이 아닌 우리 문학사의 한 골간에 입증되는 바임은 여러 경로로 말해왔다. 우리 판소리가 바로 포한문학론의 대표 사례라 했다. 춘향가는 젊은 여자도 뺏으려는 권력의 횡포를, 심청가는 죽음의 숙명을, 흥부가는 가난의 설움을, 별주부전은 사람 병사(病死)의 불가피를 노래했음인데 그런 한이 마침내 우리네 삶 향상의 추동력이 되었다는 말이었다(박경리,한민족의 정서와 사상 Le Sentiment et la Pensée du Peuple coréen, 간이제책, 1995, 불역 포함 13페이지).

     각각 인간 세상의 처절한 한인 억압죽음가난병사가 주제인 이들 판소리들이 세상에서 꼭 사라져야 마땅한 한을 노래하고 있다는 점에서 분명 비극인 것. 이 비극의 씨줄 사이로 방자와 월매의 경박, 뺑덕어미와 놀부의 심술, 토끼의 방정을 들추는 풍자 내지 해학이 날줄로 들고 있다는 점에서 판소리 문학은 비극과 희극의 절묘한 양면성이 특장이라 했다. 그만큼 우리 판소리가 비극 일변도인 셰익스피어 문학보다 한결 윗길로 보인다는 것이 특히 작가 박경리의 소신이었다.

 

김형국, 서울대 명예교수(무단전재불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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