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제목이 하필 ‘토지’였음은(박경리 52)

 

   대하소설을 두고 특히 문학평론가들이 가장 궁금하게 여겼던 사항이 하나 있었다. 그 제목이 평범하기 이를 데 없는 보통명사 토지였기 때문이었다. 발을 딛고 살아가는 존재가 사람인 까닭에 동의어에다 파생어가 많은 것도 땅이다. 땅을 일컫는 토지가 소설 제목이 되다보니 그 집필 초기에 한국 독자들이 오래 익숙해 있었던 펄 벅(Pearl Buck, 1892-1973)의 노벨문학상 수상 유명 소설대지(The Good Earth)의 번안 내지 패러디한 것이 아닌가, 그렇게 의구심을 갖는 이도 있었다.

대지도 땅도 아닌

   그만큼 소설 제목을 토지라고 정한 까닭을 작가가 직접 설명한 필요를 느꼈을 것이었다. 토지라 하면 소유욕과 관련된 낱말이고, 바로 소유욕이야 말로 인간세상의 갈등을 단적으로 표상한다고 보았기 때문이었다. 나도 직접 물은 적이 있었다. 대답은 대지라 하면 그냥 경관(景觀)만을 말하는 것 같아서, 그리고 땅이라 하면 장소성(placeness)으로만 좁게 말하는 것 같았다고 덧붙였다. 그만큼 토지란 말에는 사회성과 함께 역사성이 담겼다고 본 것이었다.

   ‘토지라는 소설 제목의 설정을 보다 심층으로 풀이한, 이를테면 산천으로 풀이한 경우도 당연히 있을 법했다. "박경리의 '토지'21권짜리인데, 아무리 빨리 읽어도 보름 걸립니다. 내가 세 번 읽었어요. 최 참판 댁 당주인 최치수가 만주로 독립운동 하러 가는 이동진과 이런 대화를 나눕니다(“최보식이 만난 사람: 문학평론가 김윤식”,조선일보, 2011. 10.16).“

'독립운동을 하러 가는 것은 군왕을 위해서냐?' '아니다.' '백성을 위해서냐?' '아니다.' '그러면 누굴 위한 독립운동이냐?' '이 산천(山川)을 위해 간다.' 이게 토지의 주제라고. (중략)

이 작품의 생명이 상당히 길 것으로 봅니다. 이데올로기는 바뀌지만, 산천은 변함없거든.태백산맥(조정래)'이나 지리산(이병주)은 오래가지 못할 겁니다.

   작가가 처음 평사리 땅을 직접 찾았던 것이 대하소설이 완성되고도 한참 뒤인 200111월이었다. 직후 새로 나온토지전질의 서문에다 제목으로 의도했던 바를 풀어 말했다.

악양평야는 사방이 산으로 둘러싸여 외부에서는 넘볼 수 없는 호수의 수면 같이 아름답고 광활하며 비옥한 땅이다. 그 땅 서편인가? 골격이 굵은 지리산 한 자락이 들어와 있었다. 지리산이 한과 눈물과 핏빛 수난의 역사적 현장이라면 악양은 풍요를 약속한 이상향이다. 두 곳이 맞물린 현상은 우리에게 무엇을 얘기하는가. 고난의 역정을 밟고 가는 수 없는 무리. 이것이 우리 삶의 모습이라면 이상향을 꿈꾸고 지향하며 가는 것 또한 우리네 삶의 갈망이다. 그리고 진실이다(박경리, “2002년판토지를 내며”, 토지1, 통권 1, 나남, 2002, 15)

평사리 발걸음의 달은

   “꿈보다 해몽이라 했다. 한 평론가 왈 저자의 의도를 파악했다고 해서 작품을 제대로 읽었다고 확신할 수 없다, 독자의 역할이란 작품의 일방적인 수용이 아니라 생산적인 것이란 관점도 널리 인정된다며 토지에 변화의 원리와 그 구체화의 개념으로 읽고 있었다(최유찬,박경리의 토지읽기, 2018).

()’자는 ()’()‘이 되고 ()‘()‘이 되는 변화의 원리, “월인천강 만법귀일(月印天江 萬法歸一)”의 원리를 나타내고 ()‘자는 그 변화의 원리가 여성 생식기()를 통해서 존재의 문으로 나온 것을 뜻하기 때문이다. 갑골문에서 ()‘자는 존재를 있게 하는 여성 생식기를 뜻한다. 그러므로 자 두 자를 합쳐서 생각하면 토지라는 낱말은 변화의 원리()와 그 원리가 존재의 문으로 나와 현존하는 것()에 해당하는 개념을 함축한다.

   독자는 생산적 해석의 자유가 있다는 평론가의 말을 따라 나도 해석하나를 덧붙여본다. 파자(破字)하면 十一이 되는 한자는 ()’와 함께 선비 ()’도 있다. 우리는 선비 사로 읽는데 일본은 사무라이 사라고도 읽는다. 일본의 상식 말놀이 가운데 일 년 열두 달 중에 31일이 안 되는 달들(246911)을 통칭해서 니시무쿠, 사무라이(다시 훈독하면 서쪽을 향하는 사무라이란 뜻)”라 읽는단다. 2469의 음독(音)니시무쿠이고, 11(十一)이 사무라이인 것은 이 숫자의 상형을 일본의 전설적 칼잡이 미야모토 무사시(宮本武藏, 1584-1645)의 칼 두 자루로 연상했기 때문이었다.

   설명이 장황해졌다. 우리나라 교육학계의 대부인 큰 학자의 생일이 1111일이다. 당신 수연(壽宴) 자리에서 말솜씨가 빼어난 후학이 당신이 누리는 각종 복록은 선비 사()자가 두 번 반복하는 생일 덕분 같다는 해학성 덕담을 말했다.

   작가 박경리가 평사리를 처음 찾았던 달이 11월이었음도 보이지 않은 어떤 힘이 예비했음이었을까. 1회 토지문학제 참석이 명분이었던 그 ‘11’(2001)은 칼 두 자루가 아니라, 수학자 김용운(金容雲, 1927-2020)의 문명비평서(일본인과 한국인--칼과 붓, 뿌리깊은나무, 1981)가 말했듯, 글 농사 연자방아를 돌려온 선비작가의 붓 또는 펜 두 자루의 상징이라 싶었다.

   펜 자루로 말미암은 문자의 향기는 하동 땅 평사리에도 진하게 남았다.토지드라마 촬영을 위해 최 참판 댁이 2001년에 지어지자 그 장차의 활용방안을 모색하려는 현지의 뜻이 일었다. 그 선봉에 섰던 향토시인(최영욱 관장)이 토지문학제를 열고 싶다고 원주로 작가를 찾아 삼고초려했다. 누년의 연공(年功)을 쌓은 끝에 2004년에야 토지박경리란 낱말을 바로 인용하지 않는 조건에서 평사리문학대상의 제정을 허락 받을 수 있었다. 그리고 2004년에 최 참판 집을 근거로 삼아 평사리문학관을 열었다. 이게 오늘의 박경리문학관으로 변모 발전했다(최영욱, “평사리-라는 그곳,” 문체부 웹진 코리아). 운명적 점지였든가 반세기만의 작가의 고향 통영 방문도 2004년의 11(5)이었다.

 

김형국, 서울대 명예교수(무단전재불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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