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화와 균형의식

 

조화와 균형은 우리 한민족의 생활 그 자체였다. 자세히 살펴보면 의식주(衣食住)의 모든 원형이 조화와 균형감각으로 이루어져 있다.

우리의 전통적인 건축물을 살펴보자. 서구의 건축물들이 풍기는 기하학적 구도와는 달리 자연과 조화를 이루는 구조로 되어 있다. 용마루를 타고 흐르는 곡선의 미는 자연의 모방이었다. 혹자는 이러한 우리의 곡선이 우리의 산천에서 모방되었다고도 한다. 건축술에서는 조화와 균형의 극치를 보여준다. 일정한 크기의 벽돌이나 대리석을 차곡차곡 쌓아올리는 것이 서구의 건축술이다. 그러나 우리는 그런 플러스 개념의 차원을 가볍게 뛰어넘었다. 주춧돌을 놓고 그 위에다 기둥을 세운 뒤 기둥과 기둥 사이를 들보가 잡고 있고, 들보는 다시 중앙의 상량(上樑)이 잡고 있다. 어떻게 보면 대단히 위험한 구조다. 그냥 주춧돌 위의 구조물들이 다른 어떤 지지목도 없이 서로가 서로를 잡아주면서 묘한 균형을 유지하고 있다. 쉽게 말해서 돌 위에 나무를 세워놓았는데도 넘어지지 않는 조화와 균형의 경지를 터득하고 있었던 것이다.

의복도 마찬가지다. 입을 사람과 옷을 특별히 맞추지 않는다. 허리통이 크면 좀 접어서 입고 작으면 좀 펴서 입는다. 옷과 사람이 서로 조화를 이루면서 멋을 더한다. 어깨에서 손으로 흐르는 소매의 곡선은 자연미를 더해준다. 여성의 버선은 조화미의 극치다. 치마 밑으로 살짝살짝 드러나는 버선코는 조화의 운치를 보여준다. 시인 조지훈은 이 모습을 ‘돌아설 듯 날아가며 사뿐히 접어올린 외씨 보선이여!’하고 노래했다.

식생활은 더욱 그렇다. 삭힌 것을 즐겨 먹는다. 발효식품의 천국이 아닌가 싶다. 된장, 고추장, 간장, 청국장이 그렇고 김치, 식혜, 젓갈이 그렇다. 발효는 부패의 일종이다. 인간이 의도하지 않은 방향으로 썩으면 부패이고, 의도한 대로 썩으면 발효다. 세상의 모든 물질은 거의 썩고 만다. 썩어가는 상태를 상실이나 훼손으로만 보지 않고 하나의 질서로 파악하며 거기에서 자연스럽게 식품을 구한다. 자연을 거역하지 않는 조화와 균형의 감각이다.

의술 또한 조화와 균형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몸속에 침투한 세균을 쫓아서 전쟁을 벌이거나 훼손된 부분을 도려내는 방식이 아니다. ‘병’이라는 것을 인체가 조화와 균형을 잃은 상태로 본다. 인체의 깨어진 조화와 균형, 즉 리듬을 복원시켜 주는 것이 치료행위의 가장 중요한 부분을 차지한다.

이러한 예는 우리 민족의 전통적 생활의 곳곳에 배어있다. 언제나 자연의 섭리를 거스르지 않고 이와 조화를 이루면서 살아가는 것이 한민족의 일상이었다. 이러한 사상은 사회생활에서도 값진 덕목으로 작용했다. 끓어오르면서도 넘치지 않고 줄어들면서도 고갈되지 않는 우리 민족의 에너지는 바로 이러한 사상에 연유하고 있다.

 

여상환 


 

 No.

Title

Name

Date

Hit

2897

이 생각 저 생각 (51) 우도 4

최 명

2021.04.12

298

2896

하느님이 하시는 일은 무엇인가?(436)

정우철

2021.04.11

143

2895

485. 21세기에 새롭게 만들어진 ‘장 발장’ 없는 <레 미제라블>!

인승일

2021.04.10

313

2894

종교적 산책 50 (동그란 구멍을 찾아)

김동길

2021.04.09

1053

2893

소설 제목이 하필 ‘토지’였음은(박경리 52)

김형국

2021.04.08

1476

 ▶

조화와 균형의식

여상환

2021.04.07

236

2891

‘4900가지 색채’ 의 향연_ 게르하르트 리히터

이성순

2021.04.06

480

2890

이 생각 저 생각 (50) 우도 3

최 명

2021.04.05

1419

2889

하느님이 하시는 일은 무엇인가?(435)

정우철

2021.04.04

323

2888

484. 태어나 5분이면 서고, 10분에 걸으며 15분에 뛰어야 산다!

인승일

2021.04.03

362

2887

종교적 산책 49 (일하기 싫다면)

김동길

2021.04.02

1089

2886

소설『토지』, 그 출발 무대(박경리 51)

김형국

2021.04.01

1474

[이전] 1[2][3][4][5]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