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라는 하나의식

 

우리 민족은 여럿이 하나가 될 때 엄청난 위력을 발휘했다. 이것은 단순히 단결력이나 조직력으로 해석될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단결된 힘, 협동의 효율성은 비단 우리 민족뿐만 아니라 어느 인간사회에서도 강조되어 왔다. 그러나 그것은 단순히 혼자서는 할 수 없는 일이나 많은 사람이 아니고서는 구조적으로 불가능한 일을 여럿이 힘을 합해 해결하는 능력의 플러스 개념이었다.

한 사람이 한 시간에 A만큼의 일을 할 수 있다면, 2A의 일을 하기 위해서는 한 사람이 두 시간 동안 해야 한다. 이것은 플러스 개념이다. 그러나 한민족의 ‘우리’라는 하나의식은 단순한 플러스 개념으로는 파악되지 않는 힘을 발휘했다. ‘나’가 아닌 ‘우리’가 될 때에 거기에는 상승적(相乘積) 효과가 발휘되었던 조화였으며, ‘너’와 ‘나’가 우리가 될 때 ‘너+나’외에 제3의 힘이 발생되었던 것이다. 물론 서구사회에서도 팀 파워(Team Power) 또는 시너지(Synergy)라는 것을 중요시했지만, 우리의 신바람에 비길 바가 못 되었다.

오랫동안 농경생활을 영위해온 한민족은 ‘두레’, ‘품앗이’ 등을 통해 신바람을 일으켜 왔다. 공동체 생활 속에서 걸쭉한 노동요에 몸을 맡기고 한바탕 신바람을 일으키다 보면 작업은 오히려 그 부산물로 처리되곤 했던 것이다.

그러나 한민족의 ‘우리’의식은 개인을 조직의 일원(구성원)으로 파악하는 것이 아니었다. ‘나’는 항상 ‘나’이면서 또 ‘우리’를 형성하는 요소이기도 했다. 그래서 ‘우리’가 형성될 때에는 특별히 리더가 따로 존재하지 않았다. 모든 사람이 각자 리더이면서 성원이기도 했다. 성원을 이끌어가는 사람이 있기는 했지만 그는 항상 성원 전체가 신바람이 나도록 부추기는 어릿광대로서의 기능을 담당했을 뿐이지 서구사회의 팀 리더, 곧 보스의 기능을 담당하지는 않았다.

보스가 존재하는 조직에서 보스의 독단적 판단에 따라 움직일 때 신바람은 일어나지 않는다. 거기에는 오직 명령과 복종, 권리와 의무라는 계약적 관계만이 존재할 뿐이다. 따라서 한민족은 언제나 자발적인 분위기속에서 ‘우리’를 형성시켰고, 리더는 언제라도 바꿀 수 있고, 누구라도 할 수 있는 ‘우리’였다. 그러나 이렇게 언제라도 바꿀 수 있고, 나 또한 언제라도 할 수 있는 별 것 없는 리더일지라도 일단 누가 일을 벌이고 나서면 다소 불만스럽더라도 그대로 따라 주는 것이 한민족의 ‘우리’의식이었다.

이러한 민족성은 임진, 정유 양란(兩亂)에서 극명하게 나타났다.

조선정벌을 도모한 도요도미 히데요시(豊臣秀吉)는 당초 조선 땅을 완전히 장악하는데 한 달이면 충분하다고 보았다고 한다. 그가 그런 판단을 한 것은 단순히 생각한 결론이 아니라 수차례에 걸쳐 밀정을 조선에 보내서 조선의 군사, 지리, 기후, 인구 등을 면밀히 조사한 후에 내린 합리적인 결론이었다. 그러나 도요토미의 이 판단은 여지없이 빗나갔다. 면밀히 조사해서 내린 판단이었지만 한민족의 민족성을 간과한 것이었다. 장수가 죽으면 지리멸렬해 버리는 일본 민족쯤으로만 생각했던 것이다. 그들에게 의병(義兵)이란 것은 생각지도 못한 복병이었다. 조직적으로 훈련되고 상명하복(上命下服)의 군령을 엄격히 지켰던 관군(官軍)들이 패주하는데도 조선반도 전역에서 낫과 괭이, 죽창 등으로 무장한 의병들이 밤낮 없이 출몰했다. 비록 관군의 휘하에 들어간 병사 일지라도 거의 모병에 자발적으로 응한 민초들이었다. 임란 최대의 격전장이었던 진주성은 의병들의 요새였다. 관군이 오히려 의병장의 지휘를 받는 형편이었다.

이 사실을 보고받은 도요토미는 ‘조선백성은 정말 위대한 백성이다.’라고 찬탄을 금치 못했다고 한다. 이러한 저력은 모두 우리 한민족의 신바람에서 나온 것이다. 스스로 나서서 우리가 되고, 분연히 몸을 던진 이 신바람은 한민족의 원형질이었다.

그러나 일본의 패전으로 막을 내린 왜란 후 조정에서는 이 훌륭한 백성들에게 아무런 찬사 한 마디 보내지 않았다. 그 결과 이어서 발발한 병자호란 때에는 전국 어디에서도 의병이 궐기하지 않았다. 신바람이 죽어버린 예이다.

 

여상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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