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고향나들이 문학『파시』(박경리 45)

 

    망향문학 김약국의 딸들은 무엇보다 대중성 확보에 대성공이었다. 작가의 문학성에 대한 각계 호응을 말한다면 영화화만한 것도 없었겠다.

    바로 그 즈음 최고 구독률을 자랑하던 동아일보도 연재소설을 청했는데. 이 또한 박경리  문학의 인기를 말함이었다.파시(波市)가 그렇게 동양화가 천경자(千鏡子, 1924-2015)의 삽화로 19647월부터 19655월까지 연재되었다.

    돌이켜보면 그 아날로그 시절엔 신문연재소설이 대단한 인기였다. 실사구시형 정보제공이란 신문 본분에 더해 재미의 이야기 읽을거리와 삽화 볼거리의 제공도 신문 제작의 필수처럼 여겨졌다. 박경리의 신문연재소설로는 이전에 경향신문(노을진 들녘, 1961.10-1962.7), 한국일보(가을에 온 여인, 1962.8-1963.5)에 이어 동아일보가 그 세 번째였다.

    소설은 625가 휴전에 들어가던 시점 전후의 경남 해안도시 통영과 부산이 그 무대. 인민군의 남침을 저지해낸 최후방위선 안에서 전시상황을 이겨내려고 발버둥 치던 민초의 삶에서 이야기꺼리를 잡았다.

    소설은김약국의 딸들이 누렸던 독자층 호응의 연장선에서 이야기를 확장하려 하지 않았나, 나는 언뜻 그런 생각도 들었다. 소설 무대가 부산이 보태지긴 해도 여전히 통영이 주 무대였고 통영사람의 행보가 중심이었던 점에서 그런 느낌이었다. 이 대목에서 평론가 평설을 듣고 싶었다. “김약국의 딸들에는 한 가정 안에서 운명과 성격이 다른 딸들이 나오는 반면에파시에는 6.25 동란 직후에 부산과 통영을 무대로 살아가는 사람들의 다양한 모습이 드러나고 있다했다(김치수, “비극의 미학과 개인의 한,” 박경리와 이청준, 민음사, 1982). ’

전시의 남도 이야기

    이야기는 부산 사는 처형의 부탁을 받고 통영사람 조만섭이 북에서 피난 나온 21세 처녀 수옥을 데리고 통영 가는 배에 오르는 것으로 막이 오른다. 만섭은 단신(單身) 피난길의 수옥이 불쌍타며 거두었다가 시집까지 보낼 참이었다. 마침 그 배로 통영 가던 밀수꾼 서영래와 마주쳤다. “꽃 보면 꺾고 싶은 것이 사내의 심정이어서였던가, 수옥이 그만 그의 탐욕 그물망에 걸려들었다.

    “등 뜨시고 배부르면 음탕하게 된다.”했다. 벼락 돈을 만지는 밀수꾼이 그런 통속이기 쉬웠다. 상처한 만섭의 후처 서울댁은 밀수꾼으로부터 밀수품을 건네받아 넘기는 앉은장사를 해볼 심산으로 수옥을 작첩(作妾)하려는 서영래의 흑심에 방조한다.

    그렇게 몸을 버렸다. 이 흠결에 스스로 포로가 되어 수옥은 강포(强暴) 밀수꾼의 손아귀에서 벗어날 줄 몰랐다. 전통시대에 더러 있던 일이긴 했다. 무얼 배우러 갔다가 겁탈 당한 뒤 첩실 신세로 살아가야 했던 이전(梨專) 졸업생의 일대도 어느 예술가의 가족사가 되었다는 실화는 진작 회자되었다.

    밀수꾼은 전시경제에서 솟아난 부정경제의 총아였다. 전쟁 중에도 사람 삶은 경제를 꾸려가야 했기에 부도덕 부정경제도 다반사였고, 그 가운데서 밀수가 대표적 악의 꽃이었다. 그때 통영처럼 잠시 인공치하에 들었던 곳도 포함해서 남해안 도시들이 밀수경제의 온상이었다. 국가사회의 민생은 파국이었을지언정 개인적 욕망의 흐름은 멈추지 않았다. 이를테면 남자는 마카오양복, 여자는 교토비단에 대한 군침이 유별났다.

    밀수품을 사들일 자금은 전장에서 쏟아지는 탄피(彈皮)로 때운다는 소문도 나돌았지만 통영은 맛좋은 생선이 자금줄이었다. 통영생선은 일제 때 그들이 익혔던 입맛이었기 때문에 그 수산물을 실어 나르던 통통배(발동기를 장치하여 통통 소리가 나는 작은 배)가 많았다. 그런 배치고 밀수하지 않았던 배가 없었다. 밀수품을 실어 날랐던 밀무역선이기도 했고, 거기에 사람도 몰래 실어 나르던 밀항선이기도 했다. 그렇게 일본 유학을 갔던 이도 있었고, 의료체계가 붕괴된 판국에서 화급한 처치가 필요했던 화류병환자도 있었다. 밀항 실패자는 규슈의 오무라(大村) 수용소 직행이었다고, 그 시절 우리 신문의 사회면이 적어놓았다.

    그 밀선(密船)들의 활약상(?)은 해안도시엔 듣기 거북한 일화도 남겼다. 밀수품이 폭리를 안겨주었던가 여수 가서 돈 자랑 하지마라했고, 마산은 일본 상륙에 실패한 밀선이 밀항자를 인근 섬에 내려놓고는 항도(港都) 마산의 한자를 일본어 발음으로 훈독하고 일본지방자제 겐()을 붙여서 여기가 우마야마겐(馬山縣)!”이라 말했던가 하면, 통영으로 말하면 전쟁 중에도 먹성 다음으로 입성이었다는 말대로 툭 하면 터지거나 고장 나던 다른 지퍼와는 달리 예나 지금이나 세계 지퍼 시장의 50%를 차지한다는 일제 YKK(요시다공업회사의 영어 표기 머리글자 조합)를 당할 게 없었던 그 YKK의 국내 공급은 통영의 밀수선이 감당했다(강제윤,통영은 맛있다, 2013, 281-3). 오죽했으면 통영시 해역의 끝자락이자 한반도에서 일본으로 날아가는 철새들의 중간 기착지 소매물도의 그 망태봉 꼭대기(152미터)에다 관세청이 밀수감시초소를 1970년대에 이르러서도 만들어야 했겠는가.

혼사는 대사인데도

    처자 도둑질의 한편에서 부부는 만복의 근원이란 인간 도리에 충실하려는 잰 걸음도 있었다. 조만섭의 딸 명화에겐 남자 친구 응주가 있었다, 응주 아버지는 통영에서 유지 행세를 하는 병원장 박 의사. 그즈음 병원을 부산으로 옮겨왔다. 그도 아들을 번듯한 집안의 처자와 연을 맺게 하려는 여느 부모의 마음과 다를 바 없었다. 다만 아들의 사랑이 명화이긴 해도 이 처자의 생모였던 만섭의 초취(初娶)가 정신병으로 죽었음을 이유 하나로 둘 사이를 갈라놓으려 한다.

    그러니 딸 명화를 응주와 맺어주고 싶었던 조만섭의 노력이 헛수고가 되고 말았다. 기실, 그럴 수밖에 없었음이 소설 끝부분에서야 돌출했다. 홀아비 박 의사가 며느리 후보 명화에게 눈독을 들였음이었으니, 며느리 양옥환(楊玉環)을 귀비(貴妃)로 들여앉혔던 당 현종(玄宗)의 열애인지 패륜이었던 지를 한반도 사나이도 배웠다는 말이었나.

    두 사람의 결합이 어렵게 꼬여간 속사정은 차마 연인 응주에게 옮기지 못하는 속앓이 끝에 명화는 일본 밀항을 결심한다. 그 결행 직전, 응주의 하숙집으로 통금직전 명화가 찾아온다. 곧잘 대중소설을 특징짓는 중요 대목이라 치부되는 ‘19()’ 서사를 아주 어쩌다 박경리 작품에서 만나는 순간이었다(파시, 나남, 535).

오늘 밤은 감추지 말고...그래요, 정직하게 저를 대해 주세요.“

여전히 나무둥치처럼 앉아서 명화는 뇐다. 조정할 수 없었던 감정에 허덕이며 마음과는 거리가 있는 말을 지껄이고 있던 응주는 술이 핏속에 퍼져감으로써 모든 것을 두들겨 부수고 싶은 난폭한 충동을 느끼는지 표정이 동물적으로 변하여 진다. 그런 얼굴로 명화를 노려보고 있다가 후닥닥 일어서서 등불을 끈다.

그는 덮여 씌우듯하며 으스러지게 명화를 끌어안는다. 서로가 처음, 처음 경험하는 어둠에서, 모든 것을 잊어버리고 싶다는 갈망이 그들 사이의 저항을 쫓아내고 만 듯 했다. 마지막 밤, 영원히 떠난다는 명화의 슬픔과 이 장벽을 무너뜨릴 수 없었던 곳에서 빚어진 불안과 방황이었다고 깨달은 응주의 기쁨이 이상한 화합(和合)을 이루고, 그들은 그 행위 속에 전신을 견딜 수 있었던 것 같다.

격렬한 순간이 지나가고, 응주는 그러나 명화를 꼭 껴안은 채 (중략) “뭔지 원시로 돌아간 것 같다. 눈물이 날 만치 기분이 좋아.” 명화는 느끼듯 숨을 몰아쉰다. “, 난 한평생을 다 살아버린 것 같아요.”

    남녀간 참사랑은 우리 삶에서 쌀 같은 일용의 양식이자, 로미오와 줄리엣이나 이도령과 성춘향을 감히 잣대로 삼으려는 동경의 로망이기도 한 것. 당신의 일상에서 그리고 소설에서 작가는 연애의 참 의미를 상정하곤 그 다반사 일탈(逸脫)을 소설의 이야깃거리로 삼아왔다(박경리, “연애의 의미,”기다리는 불안, 현암사, 1966, 105).

요즘 중년층은 말할 것 없고 젊은 세대에 있어서 플라토닉한 연애는 별로 없는 것 같다. 신비스런 무지개빛으로 연애를 생각하는 것보다 실리적으로, 향락으로 생각하는 경향이 많이 보인다(중략).

남녀관계라면 으레 연애라는 용어를 사용하지만 애인이나 연인이라는 말이 있는 한편 정부(情夫), 정부(情婦)니 하는 말이 있다. 이와 마찬가지로 연애라는 말 이외에 정사(情事)라는 말이 있는 데 정신적인 면을 떠난 육욕의 관계를 정사라는 것일까? 사실 엄밀히 따져 본다면 향락적인 것, 계책적인 것, 우연적인 것, 그러한 남녀의 교제를 사랑이라 할 수는 없을 것이다.

()만의 교류를 위선이라 한다면 육()만의 교류는 표현이 좀 분명치 않으나 위악이다. 내 생각이 편협해서 그런지는 몰라도 육과 영이 완전히 어떤 상태로 승화된 경우는 그리 흔하지 않을 것 같다.

    소설 끝부분에 며느리감을 탐하는 박 의사도 그렇지만, 소설 도입부에 잠시 상황만 적었던 바로, 보호해주겠다며 집에 들인 피난민 수옥을 처음 범했던 이도 바로 조만섭의 손위 동서였다. 수옥을 계속 집에 두면 제 서방이 또 그 짓을 할 거라며 멀리 통영에 사는 동생 집으로 다시 피난, 아니 피신시키는 서울댁 언니의 처신은 남편 사음(邪淫)의 방조자일 뿐이었다. 거기에 작가가 평소 생각해왔지 싶은 남녀 사이의 통상적 연애방식과는 완전히 동떨어진 성 착취만 있을 뿐이었다.

    물론 내가 듣고 아는 바로 연애의 진정한 사례가 없진 않았다. 대학 다닐 때 같은 하숙집 신세였던 법대 쪽 선배들이 줄줄이 고등고시에 합격하고 있었다. 오랜 시련 끝에 모처럼 마음이 느긋해진 틈사이로 사법고시 합격생들이 필독 수험준비 책 하나였던형법총론의 서문을 갖고 우스개로 삼고 있었다.

    책 저자는 유학 가서 만났던 저명 유태계 여교수와 뒤늦게 결혼한 이로도 유명했다. 정확한 인용은 아니나 그 대강을 말하면 우리는 정신적 결합에서 점입가경(漸入佳境)하여 마침내 육체적 결합에 이르렀다는 당신 개인사도 책 서문에 적었다.

    법대생들은 점입가경이란 말이 절묘했다고 찬탄불금이었다. 나는 그때 그 코멘트가 진담이었는지 아니면 농담거리였는지가 좀 헷갈렸다. 엎치락뒤치락 세상 물정을 겪고 나자 그건 분명 진담이었다고 믿고 싶어졌다. 문제의 책 저자는 바로 1960년대 후반에 서울대 총장도 지낸 형법학자 유기천(劉基天, 1915-98)이었다.

 

김형국, 서울대 명예교수(무단전재불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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