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생각 저 생각 (32) 무애 양주동 8

 

    지난 회에서 우리는 고월에 대한 무애의 슬픈 추억을 보았다. 그러나 재미있는 이야기도 있다. 무애는 와세다대학 영문학과 재학시절에 여름방학이 되어 귀국하면, 으레 춘해 방인근(春海方仁根, 1899-1975)의 용두리 집을 방문하곤 했다. 당시 춘해는 거기서 조선문단이란 종합월간문예지를 발간했다. 여러 문우들이 드나들었다. 자연 술들을 많이 마셨다.

    춘해의 부인 전춘강은 소설가 전영택(田榮澤, 1894-1968)의 누이다. 쾌활한 여장부로서 부군에게는 대단한 내조자였으나, 잔소리로도 크게 내조를 했던 모양이다. 그래 무애의 표현을 빌리면, 춘해는 노상 오금을 못 펴고 꼬리를 샅으로 끼고야 마는 눈치의 엄처시하였다. 그런데도 여러 친구들, 특히 염상섭(廉想涉, 1897-1963), 현진건(玄鎭健, 1900-1943), 나도향(羅稻香, 1902-1926) 등이 주책없이 수시로 찾아와서 실컷 먹고 마시고 떠들어대다가 끝내는 부군을 끌고 나가 또 어디서 술을 먹고 밤을 새우고 하는일이 자주 있었다. 참다못한 전 여사는 남편에게 잔소리하는 것은 말할 것도 없지만, 여장부답게 남편의 친구들을 쫓아낸 일도 한두 번이 아니었다고 한다.

    19269월이다. 무애가 하루는 장사동에 칩거하던 고월을 부추겨 춘해의 집을 방문했다. 전 여사가 반갑게 맞아주었다. 그 이유는 이렇다. “고월은 워낙 술꾼이 아닌, 글자대로 얌전한 시인이라 여사의 경계의 대상이 아니었고, 약부(若夫) 나는 비록 두주(斗酒)를 마시나 별로 떠들거나 실수함이 없는 군자형의 온자[蘊藉: 마음이 온화함]한 주도(酒徒)이기 때문이었다. 자신에게 관대한 것도 무애는 국보급이다. 아무튼 국보는 국보다. 

    그러나 그 날 희대의 사건이 발생했다발단은 술이다. 하기야 술이 아니면 무애에 대한 나의 이 글도 없겠지만, 술 때문에 춘사(椿事: 뜻밖에 일어난 불행한 일)가 발생한 것이다. 춘해 집에서 거나하게 취한 세 사람이 바깥으로 발전하여 더 마시게 됐다. 요정에서 얼마나 마셨는지 기억이 없다고 하면서 무애는 다음과 같이 썼다.

    “고월은 열 잔에 한 잔씩 쯤, 그것도 양에 다소 넘치게 마셨으나, 나는 원래 심사가 울적하던 차 대견한 좋은 주붕(酒朋)을 오랜만에 만나 그가 모처럼 한턱내는 술이니 방회[放懷: 마음 놓고 편안함]코 통음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래 아마 셋이서 일본술 한 말쯤은 마신 모양이다.”

    거기서 헤어졌으면 좋으련만, 사람 사는 곳에서는 좋은 일만 생기지는 않는다. 셋은 다시 밤늦게 춘해의 집 문을 요란하게 두드렸다. 에이 모르겠다. 취한 김이다. 취객들은 다시 전 여사에게 술을 청하여, 청요리와 배갈과 양주를 사오라 야단하여 새벽 두세 시까지 마시고, 모두 완전히 정신을 잃고 말았다. 아무리 취해도 죽지 않으면 깬다. 무애도 깼다. 아침 일곱 시경이라고 했다. 무애는 늦게 일어나는 것이 버릇이나, “비교적 일찍 잠을 깬 것은---자다가 불현 듯 내 궁둥이 일대가 몹시 차거운[차가운], 써늘한 감각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둘러보니 춘해의 집 사랑별실인데, “차차 정신을 차려 만져본즉, 어렵슈, 내 몸이 대단히 축축한 커다란 스폰지위에, 아니 괸 물이 철벅철벅한 진퍼리’[질퍽한 진창]위에 누워있지 않은가! 내 옆의 고월 군은 그 진퍼리 한 구석에서 태연히 코를 골며 감안(甘眼)하고 있다. 그의 시는 그리도 섬세하고 예민한데, 그의 등과 둔부 등 육체의 감각은 어찌 그리도 보다 둔감인지.”[甘眼: 사전에는 보이지 않는데, ‘단 잠이다.] 긴 말이 필요 없다.

자네가 한 일이지, 뭐야.”

에끼, 이 사람! 뻔히 제 실순 줄 알면서 남에게 미루는가?”

나는 아무리 취해도 그런 일이 없거든!”

나는 술도 그리 안 먹었는데.......”

    무애와 고월의 말다툼이다. 그건 그렇고, “홍수의 화를 입어 홈빢젖은 새 포단이불을 뒤로 하고, 둘은 뺑소니를 쳤다. 전 여사를 볼 면목이 없었던 것이다. 갑자기 두 가지 생각이 떠오른다.

    하나, 언젠가 읽은 일본의 아쿠타가와 류노스케(芥川龍之介)의 말. “귀족들이 좀체 뽐내지 못하는 것은 그들도 하루에 한번 측간(厠間)에 드나들기 때문이다.” 하루에 한번만 드나드는지 어쩐지는 모르나 사람은 같다는 말이다. 무애도 생리작용으로 그랬을 터이나, 이립(而立: 삼십)에 가까운 나이에 그것도 서서일을 보지 않고 누워서 오줌을 쌌던 것이다. 도망 갈만한 사건이었다.

    둘, 이것도 오래 전에 읽은 시인 조병화(趙炳華, 1921-2003)의 이야기. 8.15해방 후 그는 서울중학교의 수학교사였다. 그는 일본 동경고등사범학교에서 물리화학을 전공하다 귀국했기 때문에 수학을 가르쳤다. 그는 인천에서 기차로 통근했다. 당시 서울 발 인천 행 막차는 오후 여덟시다. 일과가 끝나면 동료들과 술을 마시고는 기차를 탄다. 매우 붐벼서 서서 가는 수밖에 없다. 차가 부평쯤을 지나노라면 소변이 마려운데, 옴치고 뛸 여지가 없다. 그러면 그냥 바지에 지렸다. 지리다가 그냥 누기도 했다. 처음엔 발등이 뜨듯해오지만, 점차 차가워졌고 나중엔 감각조차 없어졌을 것이다. 수필집 이름도, 수필 제목도 기억이 나지 않는다. 그래도 남의 집 금침(衾枕)에 싼 것은 아니니, 무애보다는 양반이라고 할까?

 

최명(서울대학교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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