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10/19(월)구십이자술 38

 

     연세대학에서 여러 해 가르치다 다시 나이 많은 학생이 되어 미국 보스턴에 유학을 간 일이 있었다. 얼마 뒤에 알 만한 사람이 내가 있는 곳을 찾아와서 아이들의 교육에 대해서 의논도 하고 보스턴이라는 역사 깊은 도시에서 서로 친한 친구가 되어 한동안 살았다.

     그의 이름은 '석정선', 평양사범학교를 졸업한 수재이고 김종필씨랑 동기로 육사 8기 생이었다. 그는 5.16 군사혁명 주체는 아니였지만 하도 머리가 좋은 사람이라 동기생들이 그를 끌어들여 일을 시킨 것만은 사실이다. 그에게는 딸이 둘, 아들이 하나 있었는데 큰 딸은 무슨 일로 일찍 세상을 떠나 그 내외는 그 사실을 여간 가슴 아프게 생각지 않았다. 아들의 이름은 '영훈'이고 작은 딸의 이름은 '진희'였는데 두 아이가 다 인물이 좋았다. 석정선은 그 아이들의 교육에 큰 관심을 가지고 모든 노력을 아이들  교육에 쏟았다.

     그는 혁명 주체들과 함께 서울서 큰 일을 많이 했고 워커힐 조성에도 큰 몫을 담당하였지만 중상모략꾼들 때문에 한동안 감옥에 갇히기도 하였다. 감옥에서 풀려난 석정선은 아마도 미국에 가서 아이들을 가르치기로 결심한 것 같았다. 그래도 머리가 좋은 사람이라 미국에 건너가 역경 속에서도 사업을 시작해 당시에도 식구들 생활과 교육비를 충분히 마련할 수 있는 그의 능력에 감탄했다.

      한번은 자기 아내를 가리키며, "저 사람이 젊었을 때와는 많이 달라졌어요. 이젠 남편은 저리 가라고, 아들이라면 꼼짝을 못해요. 영훈이가 "엄마, 나 물..."이라고 하면, 당장에 일어나 물의 ㄹ 이 다 발음 되기도 전에 부엌으로 달려가 마실 물을 갖다 주는데, 어쩌다 내가 "여보, 나 물 좀 줘요"라고 한마디 하면 "당신이 가서 좀 떠다 먹어요" 하면서 나를 오히려 핀잔을 주니 점점 살 맛이 없습니다" 라면서 농담조로 나에게 하소연 한 적이 있다.

      또, 그는 혁명주체와 일을 하면서 생겨난 에피소드를  나에게 말해 준 적이 있는데 당시 전세집을 얻을 재력도 없던 장교들이 혁명에 성공 하면서 갑자기 큰돈을 다루게 되니  돈의 가치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채 한동안 일을 했다는 것이다. 갑자기 몇 십억, 몇 백억을 다루게 되니, 천만 원과 백만 원 중 어느 게 더 많은 지도 금방 생각이 안 나더라는 것이다. "돈에 대해서 아무 것도 모르는 사람들이 모여 갑자기 생겨난 큰돈을 쓰며 일했으니 잘못된 일도 많았을 겁니다." 그는 그런 한탄을 나에게 늘어 놓기도 했다. 그 부인이랑 미국 어딘가에 잘 살고 있는 지, 영훈이와 진희도 궁금하다. 석정선도 구십을 한참 넘었을 텐데 가끔 보고 싶지만 연락할 길도 없어 가을 바람이 솔솔 불어오는 초가을에 그가 생각나 몇 마디 적었다.


김동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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