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09/14(월)구십이자술 33 (어느 새벽의 변란)

 

어느 새벽의 변란
     나에게 있어 새벽 일찍 일어나는 습관은 나이가  많이 들어서 생긴 버릇이 아니라 아주 어려서부터 있어 왔다. 이주 전 일요일 새벽에 있었던 일이다. 그 날도 새벽 4시 쯤 일어난 나는 책도 보고 TV도 켰다.
    내 자리에 앉아있으려니 발이 여럿 달린 돈벌레가 하나 나타났는데 그 놈을 잡으려고 파리채를 가지고 왔더니 자취를 감추는 바람에 인내심을 가지고 기다려야만 했다. 한참 뒤에 내가 예상했던 대로 그 놈이 다시 나타나 내 앞을 벌벌 기어가는 것이다. 이미 재주를 잃은 지 오랜 오른팔을 들어 일격을 가하였더니 그 놈은 당장 쓰러지는 것 같았지만 다시 살아서 도망가 버렸다. 언젠가도 화장실에 앉아서 매우 큰 바퀴벌레 하나를 발견하고 내가 용맹스럽게 그 놈을 단칼에 해치웠다고 자랑한 적이 있다. 그렇지만 살생의 죄를 범하였다는 가책은 하나도 없었다. 이번에도 점점 더 증오심이 돋구어졌다.
     아무리 벌레지만 노인이 한 대 때리면 그걸로 끝을 내줘야지 계속 살아서 다니는 것은 결례 아닌가. 하는 수 없이 다시 그 놈을 기다리는데 예상했던 대로 다시 내 앞에 나타났다. 그런데 앉은 자리에서 파리채를 휘두르기가 마땅치 않아 약간 궁둥이를 들고 세게 때렸는데 불행하게도 양말 신은 발이 마루에 매끈매끈하였는지 그 자리에 주저앉았다. 그리고는 다시 일어날 수가 없는 거다. 두 팔에 힘이 남아 있을 때는 별 문제가 아니었을 텐데 한 쪽 팔의 힘도 없고 마루도 미끄러워 도저히 일어설 수가 없었다.
     사람의 실수는 뜻하지 않게 저질러지는 것이고 그 고통은 말로 다 할 수 없다. 전화로라도 마포에 사는 홍 처장을 불러야했다. 그 불상사가 내 침실 가까운 복도 마룻바닥에서 벌어졌기때문에 침실에 있는 전화를 찾아 앉은 자세로 전진을 감행 하였는데 워낙 궁둥이에 살이 빠져 그 일도 결코 쉽지는 않았다. 설상가상으로 그 전화가 조금 높은 탁자 위에 올려놓은 것이라 그 다이얼을 눌러보기까지에도 상당한 시간이 흘렀다. 나 스스로의 힘으로 일어서보려고 얼마나 여러 번 노력을 했겠는가. 온몸에서 진땀이 났다.
     삼손이 데릴라의 유혹에 넘어가 자기의 힘의 근원이 머리카락에 있음을 털어놓고 블레셋 놈들에게 붙잡혀 머리가 다 깎인 채로 연자 맷돌을 돌리는 비운의 사나이가 되었던 사실을 기억하는가. 

    나는 그런 죄가 있는 것도 아닌데 단지 그 볼품없이 생긴 벌레 한 마리를 때려잡으려다 이 시련을 겪게 되는가. 삼손은 그런 억울한 일을 당하고 나서 (꼭 억울하지만은 않았겠지만) 다시 머리가 자라기를 기다렸을 것이다. 때마침 원수들인 블레셋 사람들의 전승축제가 있어 구경꾼들이 잔뜩 모인 가운데 삼손에게 그 괴력을 한번 과시하라는 권력자의 명령이 떨어졌다. 

     동자가 머리카락이 조금 자라난 삼손의 손을 잡고 현장으로 나아갔다. 삼손에게는 생각이 있어 그가 경기장에 자리잡은 ‘다곤의 신전’의 기둥 둘을 붙잡게 해달라고 그 동자에게 간구하였다. 동자는 그가 원한대로 신전의 기둥을 붙잡게 하였다. 그 때 삼손이 자기 하나님께 기도하였다.
     “삼손이 여호와께 부르짖어 가로되 주 여호와여 구하옵나니, 나를 생각하옵소서. 하나님이여 구하옵나니, 이번만 나를 강하게 하사 나의 두 눈을 뺀 블레셋 사람에게 원수를 단번에 갚게 하옵소서 하고 삼손이 집을 버틴 두 기둥 가운데 하나는 왼손으로, 하나는 오른손으로 껴 의지하고 가로되 블레셋 사람과 함께 죽기를 원하노라 하고 힘을 다하여 몸을 굽히매 그 집이 곧 무너져 그 안에 있는 모든 방백과 온 백성에게 덮이니 삼손이 죽을 때에 죽인 자가 살았을  때 죽인 자보다 더욱 많았더라” (구약 사사기 16장 28절)
     나는 그 기도를 한 번만 아니고 두 번 세 번 했지만 아무런 기적도 나타나지 않았다. 힘이 빠진 내 두 팔은 내 몸을 벌떡 일으켜 세울만한 능력을 갖추지 못한 것이 확실 하였다. 그런 가운데 홍 처장이 달려와 나를 벌떡 일으켜 앉히고 간단하게나마 조반도 차려주어서 먹고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하루를 멀쩡하게 살고 오늘도 또 살아있다. 인생이란 그런 것인가.


김동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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