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09/07(월)구십이자술 32 (대동강은 흐른다 )

 

대동강은 흐른다
     내가 평양 살 때 다니던 중고등학교의 이름이 원래는 평양고등보통학교였다. 그러나 내가 입학하던 때는 그런 이름을 가진 학교는 없었다. 당시 일본 통치자들은 “일본과 한국은 하나다”라고 말로는 떠들어댔지만 조선인을 몹시 차별대우하는 가운데 학제를 변경하였다. 일본인들이 다니는 학교를 ‘평양제일중학’이라고 칭하고 조선인들이 다니던 평양고보를 ‘평양제이중’이란 이름으로 격하시켰으니 졸업생들과 재학생들의 분노가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그러나 힘없는 우리가 어쩔 것인가. 새로이 정해진 교명이 싫어서 학교에서 ‘평양제이중’이란 문패를 내다 붙이기만 하면 상급생들은 그걸 져다가 어디엔가 버리는 일이 한두 번이 아니었고 결국 우리는 평고에 다니지 못하고 평이중에 다니게 된 것이다. 그런데 그후 평이중은 신입생을 받지 못하는 학교가 되다보니 졸업생은 계속 늘지 않고 해마다 줄어들기만 했다. 그래서 사실상 평고 출신은 다 옛날의 흘러간 꿈만 안고 살아온 셈이다.
     평고 출신들이 해마다 만들어내는 교지의 이름이 <대동강>이다. 힘에 겨운 일이기는 했지만 조선일보에서 한평생을 보낸 ‘전광헌’ 동문이 맡아서 줄곧 이끌어 왔는데 이젠 그 동생도 기진맥진하여 은퇴하고 수원에 있는 노블카운티에 자리 잡았으니 미국 의회 도서관에서도 매번 받아 소장하던 교지이지만 앞으로 어떻게 될지 근심하는 동문들이 많다.
     내 친구들도 그러하겠지만 나는 대동강변에 산 사실을 자랑스럽게 여긴다. 강 주변에는 명승고적만 많지 사람이 사는 집은 많지 않다. 평양서 자란 아이들은 대개 여름에는 대동강에서 수영하고 겨울에는 그 곳에서 스케이트를 탄다. 겨울이 되면 대동강이 가장 먼저 얼었다. 아이들이 스케이트 치는 것은 일종의 필수적인 것이어서 스케이트를 갖지 않은 아이들은 없었던 것 같다. 나는 어머니가 여름에 강에 가서 수영하는 것을 하도 걱정 하셨기 때문에 수영은 제대로 배우지 못하고 겨우 한강이나 헤엄쳐 갈만한 실력밖에 없었지만 스케이트 타는 일은 자신 만만 하였다.
     나이가 좀 든 사람들이 대동강 얼음에 구멍을 뚫고 조그만 낚시를 드리우고 앉아있던 모습들도 기억이 난다. 그 추위에 무슨 물고기가 잡히겠는가마는 취미가 그런 것이었다고 생각된다. 스케이트를 타다가 집에 갈 때가 되면 어머님이 으레 대동강변까지 나오셔서 붕어 모양이 아닌 붕어빵을 사주셨는데 일본 말로 ‘후니야끼’라는 속칭 붕어빵은 둥근 모양이었는데 뜨끈뜨끈한 그 빵 안에는 단팥이 가득 들어서 뜨겁지만 맛있는 빵이었다.
     아! 그 좋은 세월은 다 어디가고 지금은 대동강변에도 가 보지도 못하는 신세가 됐구나. <왕검성에 달이 뜨면> 그런 제목의 시가 있어 그 석 절을 다 암송한다. 오늘 같은 날은 그 시를 읊조리며 나의 서글픈 마음을 달래본다.

 

김동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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