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12/03(화) 왕방연을 생각하며 (582)

 

왕방연을 생각하며

그는 세조 때의 문신이었다. 의금부도사이던 왕방연은 폐위된 단종이 영월로 유배될 때 어린 단종을 청룡포까지 호송하는 책임을 맡았다. 임금으로 모시던 단종을 그곳에 남겨두고 떠나는 심정을 그는 이렇게 읊었다.

 

           천만 리 머나먼 길에 고운 님 여의옵고

           그 마음 둘 데 없어 냇가에 앉아 있네

           저 물도 내 안과 같아여 울며 가기만 하는 듯

 

단지 의금부의 벼슬을 한다는 이유로 차마 거역할 수 없는 그 사명을 다하고 그는 집으로 돌아가는 길이었을 것이다. 격한 마음을 가눌 길 없어 냇가에 앉아 눈물을 흘리고 있는 이 가엾은 선비를 한번 생각해보라.

 

세조가 왕위를 찬탈하는 모습을 보면서 그것을 잘하는 일이라고 생각하는 선비는 없었을 것이다. 이 시조에서는 대세가 그렇게 기울어지는 것을 막을 길이 없어 왕명을 따라 단종을 그 적막한 곳에 가두고 돌아오는 그의 심정을 헤아릴 수 있다. 

    

오늘 같은 민주사회가 되어도 관에서 국록을 먹고 사는 관리들 가운데는 대통령이 하는 일이 마음에 들지 않아도 반대할 용기가 없는 자들도 많이 있을 것이다. 공자께서 "옳은 일을 보고도 하지 않는 것은 용기가 없기 때문이다"라고 책망하셨는데 그것이 어찌 쉬운 일이었겠는가. 왕방연의 그 신세를 생각하며 우리는 동정의 눈물을 흘린다.

 

김동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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