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년의 사람들 -김동길의 인물에세이- (99) 조영남

 

 

 

내가 조영남을 처음 본 것은 그가 자기 친구들과 함께 TV에 등장하여 돌아가며 웃기는 소리를 하는 그런 상황에서 였다. 그는 자기소개를 하면서 시청자인 우리들을 한껏 웃겼다. 나라고 조영남을 잘생긴 사나이로 잘못 봤겠는가. 얼굴도 그렇고 몸집도 왜소하고 어느 모로 보나 잘난 사나이는 아니었는데 그때 이런 한심한 소리를 한 것을 지금도 기억한다.

 

제가 왜 이렇게 못생겼냐 하면 제 어머니가 저를 낳아 깔고 앉았기 때문에 제 얼굴이 이 꼴이 되었습니다 이 한 마디가 우리들로 하여금 그를 미워할 수 없게 만든 것이었다. 못생겼으면서 잘 생긴 것처럼 꾸미는 자는 누구의 동정도 받기 어렵다. 그러나 조영남처럼 그런 저자세로 시청자들 앞에 나타나면 누구나 동정어린 사랑을 받기 마련이다.

 

그의 친구들이 여러 사람 같이 나왔지만 그 한 마디로 조영남은 두드러진 인물이 된 것이었다. 그리고 그가 딜라일라를 영어로 부르는데 그걸 듣고는 저 사람 목소리를 당할만한 가수는 없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영남이라는 이름은 평범한 한국 부모들이 평범한 아이들을 낳았을 때 일제 때 흔히 붙여 주는 이름이어서 그의 이름이 주는 감동이랄 것은 아무 것도 없지만 그가 타고난 독특한 목소리는 군사정권에 시달리던 많은 한국인들에게 위로의 목소리가 된 것도 사실이다. 대한민국의 국민 치고 조영남의 이름 석자를 모르는 사람은 없다.

 

그는 조국이 해방되던 1945 5월에 황해도 평산에서 태어났다고 들었지만 월남하여 충청남도 예산에서 자랐다. 그가 한양대학교 음대 성악과에 입학하게 된 것은 당시 김연준 총장이 그의 노래를 들어 보고 전액 장학금을 줄 테니 우리 학교로 오라는 말을 듣고 입학을 하긴 했지만 자기는 본디 서울대학교 음대에 가고 싶어 했다고 한다.

 

그러던 차에 같은 학교에 다니던 여학생 가운데 조영남과 매우 친하다고 소문이 자자한 여자가 한 사람 있었다. 그 여자는 이미 약혼한 남자가 있었는데 그런 소문이 파다하여 조영남의 신세가 매우 난처하게 되었다고 한다. 그 사실을 핑계로 그는 한양대학을 중퇴하고 서울 음대에 다시 입학하였지만 졸업장을 받기 전에 미군부대의 오디션을 보고 아르바이트를 하게 됐는데, 하도 그 수입이 좋아 대학을 다녀야 할 이유를 찾지 못하여 중퇴 했다고 한다.

 

그러나 서울대학교에서는 명예졸업장을 주었다는 말도 있다. 무슨 음대를 나왔는지 문제가 되지 않을 만큼 대단한 가수가 되었지만 그는 자기에게 서울 음대 성악과 졸업장이 있다고 자랑 하기도 하였다. 그는 가난에 쪼들리며 하루 세끼 밥을 먹기도 어렵던 시절을 겪으면서 가난이 얼마나 무서운 것인가를 잘 알고 있었다.

 

그는 돈을 쓰는 재미 보다는 돈을 모으는 재미에 살아왔다. “연예인 중에 내가 사는 아파트 보다 더 좋은 아파트에 사는 사람은 없을 겁니다라고 자랑할 만큼 그는 순진하기 짝이 없는 사람이기도 하다. 노래만 잘 하는게 아니라 그림도 잘 그려서 그가 그린 화투장 한 장이 몇 백만 원을 벌어오는 수도 있었고, 그런 사실 때문에 야기된 밑그림을 그려주는 어느 화가와의 불화 때문에 재판을 받아야 하는 신세가 되기도 하였지만 용서받지 못할 만큼 흉칙한 죄를 지은 것은 아니므로 머지않아 연예계로 다시 복귀하게 되리라고 믿는다.

 

그가 그렇게 되기를 간절히 바라는 사람이 있다. 그는 보이지 않는 곳에서 조영남이 다시 활약할 때가 오기를 바라고 있는데 그의 이름은 당대의 가장 유명한 아나운서 김동건이다. 우리 셋이 2년 동안 매주 한 번씩 TV조선의 1시간짜리 프로 낭만논객을 만들기 위해 꾸준히 만났다.

 

내가 어느 날 김동건에게 이런 의견을 내 놓은 적이 있다. “우리가 조영남이 윤여정과 재혼할 수 있도록 한번 노력을 해 보자. 그 결혼식을 이 프로에서 진행하는데 김동건이 사회를 맡고 내가 주례를 맡아 조영남의 노후에 보탬이 되는 한 가지 봉사를 해보자.” 김동건이 그 사명을 띠고 윤여정을 만났지만 윤여정이 완강히 거절하면서 자기가 살아있는 동안은 그럴 일이 절대로 생기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고 한다. 우리 시대의 명배우와 우리 시대의 명가수의 이혼을 원상으로 복귀 하는 일에 매우 냉담하더라는 것이다.

 

그러나 누가 뭐라고 하더라도 조영남은 충청도 시골에서 그를 키우던 교회 권사이신 어머님의 영향을 많이 받은 아들인 것만은 사실이다. 누가 뭐래도 그는 매우 선량한 사람이고 다정다감한 사나이다. 만사에 예의가 바르기로 소문난 김동건은 스무 살 가까이 차이가 나는 나를 큰 형님이라고 부르는 조영남을 매번 꾸짖으면서 너는 왜 이렇게 버릇이 없냐라고 야단치지만 들은 척 만 척. 그리고 나서도 계속 아들 뻘 되는 자의 형님으로 불리는데 나는 아무렇지도 않지만 김동건은 절대 용납하지 않는다.

 

그가 부르는 찬송가를 듣고 크게 감동한 극동방송의 목사 김장환이 조영남을 한국에서 제일 가는 복음가수로 만들 뜻을 지금도 굽히지 않고 있지만 돈이 잘 벌리지 않는 일을 조영남은 하고 싶지 않아 한다. 그를 짜다고 욕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금전에 대한 그의 철학은 따로 있는 것 같다.

 

조영남은 비록 윤여정에게는 용서받기 힘든 첫 남편이었고, 목사 김장환의 뜻을 받들지 않은 탕아라고 욕을 먹어도 할 말이 없겠지만 하늘이 특히 그를 사랑하여 내려주신 그 목소리는 누구도 따를 수 없고 그의 노래를 들으면 그의 잘못이 무엇이든 다 용서될 수 있을 것 같다. 권사이던 그의 어머니의 기도가 지금도 있는 한 조영남은 결코 잘못된 인생을 살기는 어려울 것이라고 나는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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