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년의 사람들 -김동길의 인물에세이- (98) 노신영

 

 

   ‘텔레파시라는 말이 있는데 나는 그 말의 정확한 뜻이 무엇인지 잘 모른다. 좀처럼 상상하거나 연상하기 어렵던 어떤 일이 돌발적으로 나타났을 때 사람들이 뜻도 잘 모르면서 이 낱말을 쓰게 되는 것 같다.

  

   조선일보의 부탁을 받고 백년의 사람들을 쓰기 시작한지도 오래 되었다. 토요일마다 한 사람씩 썼으니 이럭저럭 2년의 세월이 흐른 것 같다. 내가 아는 사람들 중에 다른 사람들도 알만한 사람 100명을 고르는 일이 그리 쉬운 일은 아니다. 내가 가까이 아는 사람들 중에 이 나라의 국무총리까지 오른 사람은 세 사람 밖에 없다. 모두가 평양고보 출신인데 노신영도 그 중 한 사람이다.

   

   그의 소식을 들은 지 하도 오래돼서 잘 있는지 알고 싶은 마음도 있었지만 차일피일 세월만 흘러갔다. 오늘은 꼭 시작하리라고 마음먹고 있던 차에 노신영 서거라는 슬픈 소식을 며칠 전 전해 들었다. 그래서 내가 텔레파시라는 생소한 낱말을 되씹어 보게 된 것이다. 내가 좀 더 부지런한 선배였다면 이미 그의 근황을 알아 본지 오래 되었을 텐데 내가 살아있는 동안은 저도 살아 있겠지라는 안이한 생각으로 허송세월 하던 나 자신이 부끄럽게 느껴진 것이 사실이다.

  

   자주 만나지는 못했지만 어쩌다 만나면 매우 기뻐하던 노신영이었다. 그가 공부를 잘해 시험을 하도 잘 보는 사람이라는 소문이 있어서 이런 말을 하는 사람도 있었다. “대통령도 시험을 보고 되는 것이라면 노신영이 벌써 대통령을 했을 것이라고"그는 1953, 나이 23세에 고등고시에 합격하였다. 서울법대를 졸업하였을까 말까 하는 그런 나이였고 6.25동란이 전국을 휩쓸던 매우 어지러운 세월이었다.

  

   노신영은 본디 평안남도 강서 사람이다. 나는 맹산에서 태어났지만 나의 아버님과 조상들은 다 강서에 살았고 족보를 캐보지 않아서 모르지만 조상들은 강서에서 서로 이웃이었을지도 모른다. 그는 이미 부산 피난 시절에 제4회 고시(외무)에 합격하였지만 군 복무 중이어서 외무부로 직행할 수 없었다. 그러다가 미국 유학을 핑계로 제대가 허락되었는데 그는 미국 켄터키주립대학에서 정치학 석사 학위를 받고 1955년부터 외무부에 파송되어 과장국장실장 자리를 다 거치고 드디어 1968년에 주로스앤젤레스 총영사가 되었다.

  

   그가 LA에 총영사로 있을 때 있었던 웃지 못 할 이야기를 나에게 들려 준 적이 있다. 한국에서 매우 유력한 국회의원이 LA를 방문 하게 되었다고 한다. 그래서 총영사인 노신영이 마중을 나가 총영사라고 자기소개를 하자 이 유명인사가 정색을 하고 대뜸 하는 말이 대사는 좀 못 나오나라고 하더라는 것이다.

  

   대사는 워싱턴에 근무하고, LA 총영사는 LA에 있는데 아무리 귀한 손님이 온다고 하여도 그건 무리한 부탁이 아닌가. 노신영이 나보고 얘기했다. 한국의 이 유명인사는 각국에서 파견된 대사들이 어디서 근무 하는지도 모르는 완전히 무식쟁이더라는 것이다.

  

   그는 인도대사를 거쳐 외무부 차관이 되었고 1980년에는 외무부장관에 취임하였다. 신군부의 전두환이 노신영의 역량을 알아보고 그를 안기부장으로 기용하였고 ,마침내 국무총리의 자리에 앉게 된 것이었다. 그가 총리가 되어 나는 총리공관에 저녁초대를 받은 적도 있다.

  

   공관에서 저녁을 먹으면서 그는 이런 말을 하였다. 사형선고를 받았다가 겨우 목숨을 건진 김대중이 수중에 가지고 있던 한화를 미화로 바꾸어 달라고 부탁하는데, 그가 원하는 액수가 일백만달라나 되더라란 것이다. 노신영은 그 말을 듣고 야당지도자가 어떻게 이런 큰돈을 가지고 있을까 라는 생각에 적잖이 놀랐다고 한다. 정말 100만 달러를 만들어 가지고 떠났는지는 확인하지는 않았지만 미국에 자의반 타의반 망명할 수 있는 길을 열어준 것은 노신영이었다고 들었다. 그의 정치적 수완도 만만치 않았던 것이다.

  

   내가 듣기에 전두환은 노신영을 차기 대통령 후보로 옹립하고 싶었다는 것이다. 만일 그때 군부가 강력하게 노신영을 반대하지 않았다면 그는 아마도 민정당의 대통령 후보가 되어 당선되었을 것이라고 나는 믿는다. 어쩔 수 없이 전두환은 입후보할 마음이 없다는 노태우를 후보로 내세우고 밀어서 이 나라의 대통령이 되게 하였으나 물태우라는 비난 속에 우유부단한 5년의 세월이 흘렀다. 그리고 나서는 3당 통합으로 야당의 골수이던 김영삼이 등장하게 된 것이 아닌가.

  

   노태우는 착한 군인이었을 뿐 모진 데가 하나도 없어 김영삼을 업어치지 못하고 그에게 그 자리를 내주었다. 그 일 때문에 전두환, 노태우 둘 다 감옥신세를 지게 된 것 아닐까. 그 뿐 아니라 한반도의 유일무이한 합법정부라고 인정했던 대한민국이 두 동강이가 났고 북의 인민공화국도 유엔에 가입 할 수 있는 비극의 날이 다가온 것이었다.

  

   내가 아는 노신영이 이 나라의 대통령이 되었다면 그의 머리와 그의 능력을 총동원하여 대한민국은 한강변에 기적을 이룬 위대한 민주국가로 오늘도 전진하고 있었을 것이라는 망상 때문에 내 마음은 괴롭다. 정계를 깨끗이 떠나 노신영은 롯데장학재단의 이사장으로 조용한 생을 살다가 평온하게 눈을 감았다. 그러나 노신영을 잘하는 나는 왜 그런지 아쉬운 마음이 너무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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