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년의 사람들 -김동길의 인물에세이- (95) 이용만

 

 

19458.15 해방을 맞이하기 전에 나는 평안남도 평원군 영유읍에 있던 한 국민학교에 교사로 부임했다. 대학을 졸업하고도 계속 학생들을 가르쳤기 때문에 지금도 내 호칭은 선생이다. 호칭이 선생이니 지난 70여년 얼마나 많은 사람을 만났겠는가.

부지기수라 해도 지나친 말은 아니다. 나는 좋은 사람들을 무척 많이 만났다. 그러므로 형도 많고 동생도 많은 사람이다. 그런 가운데서 저 사람이 내 동생으로 한 집에 태어났으면 좋았겠다.”라고 내가 생각하는 사람이 한 사람이 있다. 그 이름이 이용만이다.

본디 아버지가 주신 이름은 용만이 아니라 승만이었다. 그러나 이승만 대통령을 타도하자는 구호를 내세운 북의 사회적 분위기와 대통령과 같은 이름이 부담스러워 용만으로 개명하였다니 이승만 초대 대통령을 이용만 만큼 존경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그는 1933년 강원도 평강에서 출생하였다. 태평양전쟁이 끝나갈 무렵에 삼팔선이 그어졌기 때문에 용만과 그의 가족은 어쩔 수 없이 북한 사람이 되었고, 그의 아버지는 입버릇처럼 한탄하였다. “사람이 못 살 데야, 못 살 데야아버지는 가족을 거느리고 월남 하고 싶었지만 기회는 오지 않았다. 이용만은 평강에서 중고등학교에 입학했는데 하도 성적이 우수해고 또 남한에 가까운 곳으로 가기 위하여 김화로 전학을 하게 되었고 밤늦게 까지 가사를 도와지만 전 과목 만점을 받아 줄곧 전교 1등을 했다고 한다.

전국적으로 최우등생들은 평양에 가서 우등생 대회를 하는 관례가 있었는데 오로지 성분이 안 좋다는 이유하나 때문에 그 대회에 참석이 불가능 하였다고 한다. 어린 마음에 얼마나 분통이 터졌겠는가! 6.25가 일어났다. 고등학교 2학년 이용만은 인민군에 입대해야 할 처지여서 신체검사까지 받았다.

그러나 그는 또 다시 성분이 안 좋다는 이유로 영광스러운 인민군에 입대도 거절당했다. 이용만의 친척이 남조선에 많다는 소문이 있었기 때문이다. 얼마나 다행스러운 일인가. 장차 대한민국의 재무부장관이 되어 이 나라의 경제를 바로잡아야할 뛰어난 일꾼을 인민군에 보내 총알받이가 되지 않게 한 하늘의 섭리가 고맙기만 하다.

서울을 탈환한 국군이 맹렬한 기세로 북진하던 때 인민군에 끌려가지 않은 학생들이 30여 명 모여 학도의용대를 조직하였다. 이들은 군복을 입고 총을 메고 공비토벌을 위해 북진하기로 결심하였다. 인민군 패잔병들이 고향마을을 점령하였다는 소식을 듣고 더 이상 북진할 수가 없어 남쪽으로 향하였다. 그 일행은 포천을 거쳐 서울에 도착하여 남쪽으로 행렬을 지어 행군하는 제2 국민병 대열에 끼어들었다. 나도 그 대열에 끼어 소년병 이용만이 남하한 꼭 같은 길을 따라 걸어서 내려갔던 그 기억이 새롭다.

소년병 이용만은 제 나이를 속여 가며 정식으로 국군에 편입되어 대구훈련소에 입대하였다. 군번은 0180826, 내가 소속됐던 방위군은 걸어서 밀양, 삼랑진 까지 갔으나 그 뒤 방위군은 차차 흩어져 부산까지 간 제2 국민병은 몇 되지 않는다고 들었다. 용맹스러운 국군의 일원이 된 이용만은 미 제 2사단 38연대, 직속유격부대에 편입되었다. 때는 1951511, 강원도 춘천 지구 가리산에서 첩보 활동을 벌이던 중 인민군을 뒤 쫓아 가다 쌍방에 총격전이 벌어졌다. 그 전투가 두 시간이나 이어졌다고 한다. 이용만은 어깨와 척추에 두발의 탄환을 맞아 쓰러졌다. 그는 미군 위생병의 도움을 받아 구사일생으로 목숨을 건졌고 어깨에 박힌 총알은 빼냈지만 척추의 한 발은 아직도 제거하지 못하여 이용만 장관과 더불어 늘 함께 있다.

그는 죽을래야 죽을 수가 없어서 살아난 사나이라고 할 수 있다. 이용만은 전쟁 중에 사랑하는 어머니와 네 살 어린 동생을 잃었다. 척추가 부러진 형도 방공호 속에서 시체로 발견되었다. 그 소식을 듣고 그는 통곡하였을 것이다. 자기를 기다리던 식구들이 그렇게 비참하게 희생의 제물이 되었으니 이용만의 척추에 박힌 그 총알은 그의 마음의 고통을 상징하는 것이 아닐까?

이용만은 언제나 어디서나 만나면 반가운 사람이다. 노년에 접어드는 몇 명 인사들이 장수클럽을 만들게 되었다. 80세는 넘어야 회원 자격이 있는데 최연장자는 올해 104세이다. 화가, 실업가, 대학총장, 의사, 언론인, 방송인, 교수, 대사, 시장, 오페라가수등 다양한 멤버들인데 그 회장은 당연히 이용만이다. 우리는 그가 장기집권하기를 바라고 있다. 이용만 밖에는 이 노인들을 섬기는 일에 적합한 인물을 찾기는 힘들다.

고려대학을 마치고 고시를 거쳐 재무장관 자리에 올랐을 뿐 아니라 그는 교회 장로이기도 하다. 내가 왜 이용만 같은 사람이 같은 지붕 밑에 내 동생으로 태어나지 않았나그런 생각을 하는 까닭은 그의 뜨거운 애국심에 늘 감동하기 때문이다. 이용만이 결혼한 여자가 부산 피난시절에 진명여고에서 내가 가르친 주경순인데, 아내의 스승을 소홀이 여길 수는 없는 게 아닌가. 그렇게 말하자니 웃음이 나온다. 이용만을 우리나라에 태어나게 하신 하나님께 나는 늘 감사하는 마음으로 살아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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