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년의 사람들 -김동길의 인물에세이- (93) 법정

 

 

어느 해인가 강연 초청을 받고 전라남도 해남에 갔던 적이 있다. 강연이 끝나고 지방 유지들과 함께 저녁 식사를 하게 되었다. 그 지역에서 병원에 차리고 의사 노릇을 하는 어떤 사람이 제가 법정과 국민학교 동창입니다라고 하여 나는 깜짝 놀랐다.

 

그의 출생지도 모르고 학력도 모르던 내가 놀란 것은 마땅한 일이었다. 부처님에게 몸을 바친 사람에게 생년월일이나 고향이나 학력을 묻는 것은 실례가 된다고 나는 믿고 있었기 때문이다.

 

글 쓰는 재주가 뛰어나 그가샘터사에서 연재하던 글들을 모아영혼의 모음이라는 책이 발간되었으나 처음에는 판매가 저조하였다. 그러나 얼마 뒤부터 그 책이 잘 팔리기 시작하여 법정은 일약 유명한 수필가가 되었고 그 뒤에 발간된 책들이 여러 권 베스트셀러가 되어 그가 전국적 명사가 되었을 그 무렵에 내가 해남을 방문한 것이었다.

 

이 글을 쓰게 된 최근에 이르기까지 나는 그의 고향을 몰랐을 뿐 아니라 그가 목포상고 출신이고 그 뒤에 전남대 상과대학을 다녔다는 말을 들어본 적이 없었다. 오늘 그에 관한 글을 한편 쓰고자 붓을 들었기 때문에 그의 학력도 자세하게 알게 된 것이었다.

 

내가 법정과 가까이 지내게 된 것은 스승 함석헌을 모시고씨알의 소리라는 독특한 잡지의 편집위원이 된 것이 계기였다. 장준하, 이태영, 천관우 등이 그 시절 그 잡지 편집위원이었는데, 나는 새도 떨어뜨릴 수 있던 군사정권의 중앙정보부가 가장 싫어하고 가장 미워하던 잡지 중에 하나였다.

 

그 모임에서 한 달에 한 번씩 나는 법정을 만나게 되었다. 우리는 만나서 정보부에 혹독한 검열에 따를 것이냐 말 것이냐 격론을 벌이기도 하였다. 그 편집위원들이 다 가고 오늘은 나 혼자 남아서 이 글을 쓰고 있다.

 

지금도 기억한다. 검열을 받을 때면 당국에서 집필자들에게 정보부라는 한마디는 좀 빼 줬으면 좋겠다고 한 적이 있었다. “정 안되면 정보부라는 세 글자 중에서 그 가운데 글자 라는 한자라도 빼 달라고 애원했고 그럽시다라고 대답하여 그달에 발간된 씨알의 소리에는 정보부가 정부로 둔갑하여 정보부를 겨냥했던 필자의 필봉은 드디어 정부의 가슴에 화살을 꽂은 것이나 다름없었다.

 

생각커늘 이 얼마나 한심하다 못 해 처량한 시절이었던가! 정세가 매우 긴박하던 어느 해 겨울 장준하가 주동하여 개헌 100만인 서명운동이 시작되었고 우리는 다 그 운동에 참여하여 서명을 받기 시작했는데, 장준하는 서둘러 빨리 받읍시다"라고 하였지만 나는 되도록 천천히 받으면서 왜 우리 운동에 잘 응하지 않으냐며 탄식을 합시다라고 하였다. 그 서명은 여러 사람들이 나누어서 받았는데 예상보다도 빨리 서명 운동이 끝이 날 것 같았다. 그러나 서명인이 일 백만이 다 되기 전에 당국은 새벽에 집집마다 뛰어들어 이미 서명 받은 것을 모두 압수하여 흔적도 없게 만들었다.

 

법정은 이런 일에 회의를 느꼈던 것 같다. 정치와 관련된 일은 아예 하지 말자는 뜻이었을까. 그런 일이 있은 뒤에 여러 해 나는 법정을 보지 못했다. 그가 어느 큰 절 한 구석에 방을 하나 마련하고 불경 번역에 전념하면서 생활하던 때도 있었다. 그 무렵에 그를 한번 찾아 봤더니 깨끗하고 해양한 작은방에 거처 하고 있었다. 그 방에는 책도 몇 권 있었지만 베토벤 음악도 있었다.

 

따르는 여자들도 많았지만 그는 파계하지 않고 불자의 길을 끝까지 갔다. 내가 군사정권 때문에 교수직을 박탈당하고 문경새재 금란정에 누님을 모시고 칩거하고 있던 때였다. 내가 금란정 앞에서 서성거리다 지나가는 법정을 만났다. 나를 문경새재에서 만난 그의 다정한 얼굴에 웃음 가득하게 달려와 내 손을 잡던 그 아름다운 모습과 그 아름다운 얼굴을 지금도 기억하고 있다. 그 모습은 문자 그대로 한 폭의 그림이었고 어떤 인간의 표정도 그렇게 아름다울 수는 없었다.

 

그가 거처하던 불일암에 한번 와 달라는 부탁은 들었지만 그의 뜻을 이루어주지는 못했다. 1932년에 태어난 그는 2010년에 입적하여 순천 송광사에서 다비식 있어 전국의 명사들이 많이 모여 매우 성대한 장례식이었다지만 나는 그 자리에 가지 않았다. 불에 타는 법정을 보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내가 듣기에는 젊었을 적에는 기독교 신자이던 그가 대학 시절에 깨달은 바가 있어 삭발하고 스님이 되었다는데 사실여부를 모르기도 하지만 거짓말 잘 하고 욕심 많은 자칭 기독교신자 보다는 한 평생 부처님을 닮아보려고 험난한 수도의 길을 끝까지 간 불교신자 법정을 나는 사랑한다. 사후의 세계를 제대로 알지 못하는 나는 어찌되었건 나의 하나님은 천국에서 법정을, 그때 그 미소를 지은 법정을, 다시 만나게 해 주시리라고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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