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년의 사람들 -김동길의 인물에세이- (90) 박태준

 

울밑에 귀뚜라미 우는 달밤에

길 잃은 기러기 날아갑니다

가도 가도 끝없는 넓은 하늘로

엄마, 엄마 부르며 날아갑니다

1920년대에 윤복진의 동요 기러기>에 작곡가 박태준이 곡을 붙였다. 나도 이 노래를 부르면서 자랐다. 이 노래 가사가 지닌 심오한 뜻과 아름다운 멜로디는 오늘도 나에게 큰 감동을 준다. 울밑에 귀뚜라미 우는 달밤에 생각하면 길을 잃은 기러기를 지금도 불쌍하게 여긴다. 그 기러기가 엄마를 찾아 울며 날아가는 광경이 나의 가슴을 적신다. 차차 나이가 들어 가도가도 끝없는 넓은 하늘로를 읊을 때면 무한한 우주를 생각하며 두려운 생각과 잔잔한 감동을 경험하게 된다. 오늘도 내 마음은 그렇다. 그리고 박태준의 구슬픈 멜로디를 되새기며 혼자 경건한 마음에 사로잡히기도 한다.


그가 백낙준 총장의 뜻을 받들어 연세대학교 신학대학 안에 처음 종교음악과를 개설했는데 그 일에 큰 공을 세우고 마침내 연세대학교에 음악대학이 발족했을 때 누구를 초대학장으로 모실 것인가 하는 문제가 심각하게 논의되었다. 많은 사람들이 명성이 자자했던 테너 이인범을 추천하였고 그 인선이 마땅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았지만 졸업생 중에 유명하던 독고 선이 반대하는 자기 입장을 교무처장이던 나에게 일러주었다. “그가 유명한 가수인 건 사실이지만 뜻하지 않은 화상 때문에 남들 앞에 나서기도 꺼려하는 이인범을 학장으로 내세우는 것은 무리한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오랜 토론 끝에 박태준이 연세대학교 음악대학 초대 학장에 취임하게 된 것이었다.

 

내가 박태준을 처음 만난 것은 그가 60의 고개를 넘은지 얼마 안 되던 때였다. 대구에서 태어난 그는 계성학교를 마치고 평양에 있는 숭실전문학교에 입학하여 선교사들로부터 배워 서양음악에 대한 모든 소양을 다 갖추고 있었다. 그는 그 뒤에 도미하여 웨스트민스터대학에서 작곡과 지휘법을 공부하여 그 학교 대학원에서 한국인으로서는 처음 석사학위를 받고 돌아왔다. 내가 평생에 만나본 선배들 중에 박태준만큼 단정하고 겸손하고 정다운 사람은 없었다. 그는 누구를 만나도 웃는 낯으로 대하였고 누구도 비난하거나 폄하하는 그런 일이 한 번도 없었다. 정말 모두가 본받아야할 기독교적인 신사였고 선비였다.

 

우리 시대의 박태준은 합창 지휘에 선구자였는데 그의 지휘법은 너무 단순하다는 비판을 받을 만큼 꾸밈이 없고 과장이 없었다. 그러나 그는 많은 청취자들을 감동케 하였다. 오늘도 모든 국민이 다 아는 오빠 생각을 한번 되새겨 보라.

듬뿍 듬뿍 듬뿍새 논에서 울고

뻐꾹 뻐꾹 뻐꾹새 숲에서 울 제

우리 오빠 말 타고 서울 가시며

비단구두 사 가지고 오신다더니

 

기럭기럭 기러기 북에서 오고

귀뚤귀뚤 귀뚜라미 슬피 울건만

서울가신 오빠는 소식도 없고

나무잎만 우수수 떨어집니다

말 타고 서울 간 오빠가 없는 여자아이들도 그 노래를 부르며 비단구두를 기다리지 않았을까? 동심의 세계는 그토록 아름답고 박태준이 작곡한 그 멜로디를 읊조리는 사람들이 지금도 많이 있을 것이다. 박태준이 곡을 붙인 기러기의 멜로디는 살아있으나 가사는 다 바뀌어 내가 오늘도 읊조리는 가사는 1절만 살아있고 윤복진은 월북했기 때문에 1950년대 이후에는 다른 사람들의 이름으로 가사가 만들어졌다고 들었다.

 

박태준은 150곡이 넘는 많은 노래가락을 창작하여 학교에서 교회에서 어린이들의 정서를 고상하게 아름답게 어루만져 준 것은 사실이다. 그가 작곡한 노래들 중에 한 곡도 부를 줄 모르는 한국인이 있다면 그는 한국인이라고 하기가 어렵다.

 

그런 그가 친일파로 몰리게 되었다는 말만 듣고도 나는 분개한다. 일제시대 학병 나가라는 또는 징병에 응하라는 그런 가사에 곡을 붙여 준 일이 있다. 그래서 그런 사실이 드러났기 때문에 애국애족의 대표적 작곡가이던 박태준이 아직 판정은 나지 않았지만 논란의 대상이 되고 있다니 이 시대는 한마디로 하자면 망령난 것이 아닌가? 그 친일파 색출 운동은 김대중이 대통령이던 1999년부터 시작되어 오늘까지 친일파로 낙인이 찍힌 사람들이 (친일인명사전 수록자 2009년 발간) 4389명이나 된다고 하는데 어쩌다 우리들은 이렇게 너절한 국민으로 전락 했는가!

 

그들이 친일파로 낙인을 찍은 사람들은 다 하늘나라로 갔다. 고등계 형사를 하던 고약한 몇 사람은 지옥으로 갔는지 천국으로 갔는지 나는 모른다. 선량한 한국인들은 모두 민족 반역자로 만드는 사람들 중에 어느 한 사람도 천국에 들어갈 기회는 없다고 나는 생각한다. 천국 문을 지키는 베드로가 멀쩡한 사람을 모두 친일파로 낙인을 찍은 이 나쁜사람들이 그의 앞에 다가오면 천국 열쇠를 든 그 손으로, 손을 흔들면서 큰소리로 너는 안돼라고 한마디 할 것만 같다.

 

내가 아는 박태준은 한국과 한국 국민을 가장 사랑하는 사람들 중에 한 사람이였다. 이미 저 세상으로 가 있는 이들을 제멋대로 매도하고 정죄하는 것은 선량한 인간이 할 짓은 아니다. 1986년에 조용히 세상을 떠난 박태준이 몹시 그리워지는 처량한 이 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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