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년의 사람들 -김동길의 인물에세이- (87) 김종영

 

 

    

조선일보에 주말 연재칼럼 100년의 사람들을 쓰다가 신문사의 사정으로 도중에 끝낼 수밖에 없었으나 나의 홈페이지에 연재를 계속하여 이번에 87번째 인물을 선정함에 있어 조각가 우성 김종영을 선택한 것은 나로서도 놀라운 일이라고 여겨진다. 여태껏 내가 만난 적이 없는 인물을 선정했었던 적은 한 번도 없었다. 이 칼럼이 처음이다.

 

그에 관하여 쓰게 된 것은 그가 우리 시대에 가장 저명한 조각가였고 그의 철학이나 인생관이 나로 하여금 큰 감동을 느끼게 했기 때문이지만 나는 한 번도 그를 만나 악수를 해 본 적이 없다. 다만 그의 가족 중에 한 사람이 자기 아버지의 서재에 내가 쓴 책이 한 권 있었다고 하는 말에 그에 관해 쓰고 싶은 생각이 문득 생긴 것은 사실이다.

 

나는 노인이 되어서는 파고다 공원에 한 번도 간 일이 없지만 여러 번 그 공원을 찾아가 노인들과 같이 앉아 당시 서울대학의 교수였던 김종영의 조각을 보며 여러 번 감탄한 적이 있다. 그 조각은 무슨 일로 파고다 공원에서 철거되어 어디에 갔는지를 몰라 궁금했는데 그 조각이 뜻밖에도 독립문 공원 안에 모습을 나타내어 매우 감격스러웠다. 그 조각에는 삼일 독립운동을 기념하는 천재적 예술가인 김종영의 애국심이 박력있게 그려져 있기 때문이다. 그의 작품을 파고다 공원에서 철거하고 나서 그 자리에 엉뚱한 작품이 하나 나타났지만 나는 거들떠보기도 싫어서 한번 가보고는 다시는 파고다 공원으로 발걸음을 옮긴 적이 없다.

 

김종영은 경상남도 창원의 매우 부유한 집안의 태어났고 그의 생가는 동요작가 이원수가 노래 한 <나의 살던 고향> 으로 전해지는데 그 집이 바로 김종영에 생가라고 한다. “나의 살던 고향은 꽃 피는 산골, 복숭아꽃 살구꽃 아기 진달래, 울긋불긋 꽃 대궐 차리인 동네, 그 속에서 놀던 때가 그립습니다

 

그는 휘문고보에 입학하여 그림을 그리기 시작하였다. 학생 때 그가 그린 그림들도 빠짐없이 다 수집되어 지금은 김종영 미술관에 소장되어 있는데 나는 그 그림을 보고 어린 나이에 그런 그림을 그릴 수 있었던 소년 김종영이 천재라고 느껴졌다. 그는 일제 때  우에노에 있는 동경 미술학교에 들어갔다. 그러나 그의 휘문고보 때 은사이던 장발의 권면에 따라 미술학교에서는 조각과에 들어갔다고 한다.

 

그는 이 나라 조각계에 추상으로 선풍을 일으켰다 해도 과언은 아니다. 우성은 이렇게 말한 적이 있다. “예술의 미명을 팔아서 예술가의 흉내를 내는 사람은 말할 나위도 없거니와 제법 비장한 결의와 노력을 쌓아가며 예술에 정진하는 사람일지라도 견식이 얕거나 평범한 고집으로 지향하는 바가 무엇인지, 이념이나 사회적 지각 없이 단지 속된 기술이나 형식에 얽매여 진전을 보지 못하는 것도 딱 한 일이다.”

 

그 말을 뒤집어보면 천재가 아니라면 예술을 전공하지 말라라는 뜻이라고 해석하고 싶다. 우성이 동경 미술학교에 다니던 때 상지대학에서 공부하던 철학자 박갑성은 가장 가까운 친구였는데, 그 시절에 자주 만나서 주고받던 대화 중에 이런 대목이 있다. “어느 날 김종영이 찾아와서 진선미가 피라미드처럼 하늘을 향해 서 있으려면 밑바닥에 실용이라는 저변이 받치고 있어야 한다는 것이 우성이 내세운 논리였다라고 하면서 박갑성은 김종영의 머릿속에는 문과 학생들이 싫어하는 수학에 대한 관심 있기 때문에 나는 한 마디도 못 했다고 그의 글에서 밝히고 있다.

 

철학자 박갑성 말대로 하자면 김종영은 예술 공부를 하면서 그 무의미하고 무가치한 학문과 다시 만나게 될 것이다. 실용은 기술의 영역이고 기술과 예술의 새로운 요구를 하는 것이다.박갑성은 자신의 절친한 친구인 우성을 조각하는 화백이라는 뜻을 담아 각백이라고 부르게 되었다.

 

그가 개척한 조각에 세계는 무궁무진하였다고 해도 지나친 말이 아니다. 나는 우성이 화가인 동시에 조각가이며, 동시에 뛰어난 서예가라고 늘 생각한다. 그의 붓글씨만을 모아서 전시회를 한 적이 있었다. 그의 글씨 앞에 서서 나는 숙연한 마음에 사로잡혔다. 그는 서예가로서도 당대의 일인자라고 가히 말할 수 있다. 그래서 서예는 또한 그의 성격을 뚜렷하게 나타내고 있었는데 그의 글씨를 보면서 그가 이 시대의 선비였다고 절실하게 깨달았다. 그의 서예는 기교보다는 기백이 넘쳐 흐른다고 나는 느꼈다.

 

이 모든 일들을 되새기면서 한 시대의 예술적인 천재이던 우성 김종영을 생각해 보자. 그는 한 평생 서울대학교 조각과 교수였다. 그는 미대의 학장을 지낸 적도 있지만 그런 자리에 연연한 사람은 아니었다. 예술가에게 주어지는 모든 명예로운 상을 다 받았지만 항상 자기 자신에게 우성은 엄격한 사람이었다.

 

그가 만일 반 고호와 함께 있었으면 그에 버금가는 고갱은 되었을 것이고, 그가 로댕과 함께 파리의 있었으면 로댕과 맞먹는 조각가가 되었을 것이다. 그가 만일 완당 김정희를 모시고 있었다면 그에 버금가는 서예가가 되었을 것이다. 우성의 모든 작품을 김종영미술관에 다 모아 놓을 수 있었던 것은 그의 사위 홍호정의 수고의 덕분이었다. 우성을 흠모하는 모든 후진들은 사위 홍호정에게 경의를 표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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