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년의 사람들 -김동길의 인물에세이- (86) 김형석

 

  철학자 김형석은 남다른 DNA를 타고난 사람이다. 내가 1955년 연희대학의 전임강사로 취직했을 때 그는 이미 전국적으로 널리 알려진 교수였다. 해를 거듭할수록 그의 명성은 더욱 자자하였다. 그가 1959년에 펴낸 철학적 수필집 고독이라는 병 2년 뒤에 출간된 영원과 사랑의 대화 두 책이 전국적으로 베스트셀러가 되었고 고려대 학생들도 연세대학에 가서 김형석의 철학 강의를 도강이라도 하고 싶어 한다는 말이 나돌았다.

 

  그는 평안남도 대동군 출신이다. 대동군은 평양에서 멀지 않고 대동강의 물줄기가 가까이 흐르고 있었을 것이다. 그는 평양의 미션스쿨이던 숭실학교를 졸업하고 일본의 상지대학 철학과에 입학하여 학병 문제로 나라가 소란하던 한 때 그 대학을 졸업한 했는데 숨어 있었을망정 학병에는 나가지 않았다. 김형석은 이마가 넓고 이목구비가 수려한 사람이라 나면서부터 선비로 한평생을 마치게 되어 있다.

 

  나는 그가 누구와 다투는 것을 본 적이 없다. 내가 이 글을 쓰고 있는 오늘 김형석은 우리 나이로 100세가 되었다. 내가 재정경제부에 장관을 지낸 이용만 장관과 장수클럽을 하나 만들어 보려고 그 일을 시작했을 때 먼저 교수 김형석을 생각한 것이 사실이고 육군대장 백선엽과 함께 회원으로 모셨지만 그 두 분은 자주 참석하지 못 한다. 백장군은 부인이 참석하지 말라 말려서 못 나오고, 김 교수는 아직도 강연 약속이 많아서 참석하지 못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

 

  그의 표정은 언제나 밝고 그의 목소리는 언제나 듣기 좋고 그는 평안도 사람이면서도 평안도 사투리는 한 마디도 하지 않는다. 지독하다고 할 만큼 대단한 우리 시대의 연설가이다. 나도 그의 강의나 설교를 여러 번 들었다. 그의 말은 알아듣기 쉽지만 때로는 괴테가 한 말을 몇 마디 독일어로 전해주면 청중이 더욱 감동 하게 마련이다.

 

  내가 전에 듣기에는 그가 어렸을 적에는 별로 건강이 좋지 않았다고 하는데 한 평생 그는 꾸준히 수영을 하여 몸을 단련시켰다고 들었다. 그는 가정도 잘 꾸려 나가 아들과 딸이 남들의 모범이 되는 훌륭한 삶을 살고 있다고 들었다. 특히 내가 잘 아는 그의 딸 성혜는 세브란스 출신의 훌륭한 의사 최병렬과 결혼하였다. 최 의사는 미국의 유수한 의과대학의 교수인데 그 의사와 진료예약을 하기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라고 들었다.

 

  내가 김형석을 존경하는 것은 비교적 젊은 나이에 중풍으로 쓰러진 그 부인을 지극 정성으로 돌보아 주는 그의 사람됨이 정말 놀랍기 때문이다. 오늘 김형석은 한국 사회에 우뚝 서있다. 사업을 한 사람도 정치를 한 사람도 한 인간으로 성공하지 못한 경우가 많다. 그러나 김형석은 다르다. 깨끗한 한평생을 살아 100살을 넘었다. 우리 장수클럽에 연세 많은 어른이 104세 김병기화백이다. 김화백도 계속 그림을 그린다. 교수 김형석도 계속 강의를 한다. 그 힘이 다 어디서 솟아나는지 나는 모른다. 짐작컨대 그것이 모두 신앙의 힘일 것이라고 믿고 있다.


  나는 그가 자기 자신을 위해 살고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는 오로지 그가 섬기는 예수 그리스도를 섬기는 사람으로 하루하루를 살고 있다고 나에게는 느껴진다. 23년이나 병든 부인을 돌보는 그의 정성도 그의 신앙의 힘이었지 인간으로서는 하기 힘든 일이다. 그에겐들 왜 유혹이 없었겠는가.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산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신 것이라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몸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다” (갈라디아서 2 20)

 

  몇 해 전에 그가 펴낸 에세이의 제목이 나는 아직도 누군가를 사랑하고 싶다였다. 그런 제목으로 책을 쓸 수 있는 사람은 천진난만한 사람이다. 그 책만 아니고 예수, 어떻게 믿을 것인가라는 책도 상상할 수 없을 만큼 짧은 시일 내에 많이 팔렸다고 들었다. ‘노병은 죽지 않는다라는 속담은 교수 김형석을 두고 하는 말이 아니겠는가.

 

  그는 그 나이에도 제가 번 돈으로 제 삶을 꾸려 나가고 있고 아들, 손자를 데리고 식당에 가도 음식값은 아버지인 동시에 할아버지가 지불한다고 들었다. 그는 야한 농담 한 번도 한 적이 없는 사람이지만 그의 주변은 언제나 화기애애하다. 그의 철학적인 언어에 매료되어 예수를 믿게 된 사람들도 적지 않을 것이다. 대형교회를 운영하는 유명한 목사들보다도 그가 전도하여 예수를 믿게 된 사람의 수가 더 많을지도 모른다.

 

  예전에 연희동에 있는 어떤 은행에 갈 일이 있어 가긴 했지만 발에 화상을 입어 잘 걷지 못하던 때었다. 나는 차 안에 앉아 있는데 김형석 교수가 창 밖에 서서 웃고 있었다. 아마도 내가 차 안에 있다는 것은 누군가가 전해주어 선배가 후배를 찾아준 것이었을 것이다. 나는 그의 밝은 미소를 보며 인생은 비록 괴롭기는 하지만 아름다운 것이라고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 나는 김형석의 아름다운 삶이 하나님이 우리에게 베풀어 주시는 사랑을 상징하는 것이라고 믿고 많은 위로를 받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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