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년의 사람들 -김동길의 인물에세이- (82)서정주

 

시인 서정주가 세상을 떠난 지도 어언 20년이 되었다. 우리 집에도 한번 왔던 적이 있고 오래전에 내가 MBC마음에 고향이란 프로그램의 MC를 맡았을 적에 서정주를 초대하여 서로 대화를 나눈 적도 있었다. 생방송은 아니었지만 그는 대화 도중에 슬쩍 일어나서 어디론가 사라져 한참 만에 돌아왔다. “어디를 다녀오세요라고 물었더니 화장실에 다녀왔다고 하였다. 그런 면에서는 서정주도 기인 중에 한 사람이라고 할 수 있다.

술고래여서 만취하여 그가 벌린 추태를 아직도 기억하는 사람들이 많을 것 같다. 나는 그가 시인 중에 시인이라고 생각하고 교제하였는데, 새파랗게 젊은 사람들이 일제시대를 살아 본 경험도 없으면서 시인 서정주를 친일파, 민족반역자로 낙인을 찍어 매장하려는 노력을 한 것도 사실이었다. 그리하여 아마도 그의 이름이친일인명사전에도 올라 있을 것이다. 이 사전에는 이광수, 최남선을 비롯하여 모윤숙, 노천명 등 우리가 잘 알만한 문인들의 이름이 많이 실려 있다.

 

서정주는 2000년 크리스마스 전날에 세상을 떠났으니 그 사전이 만들어지던 때는 이미 저세상 사람인데 왜들 그렇게 들어붙어 그를 매장하려 하는지 나는 이해하지 못한다. 그의 아들, 딸 중에 저명인사가 있다면 그들에게 창피를 주려는 것인가 하고 풀이라도 할 수 있겠는데 일제시대가 끝난 지도 어언 75년이 지난 오늘,반일감정을 부치기는 속셈이 무엇인지 헤아리기 어렵다. 나도 친일파로 몰린 사람들의 행적을 친일파 소탕전을 나선 그 젊은이들보다도 더 많이 알고 있다. 일제시대에 밥도 제대로 벌어먹을 것이 없어 헤매던 그들이 무슨 두드러진 친일행각을 벌일 수 있었겠는가! 서정주는 태평양전쟁이 터질 무렵, 만주 간도에서 양곡주식회사 경리사원으로 호구지책을 강구 한 적이 있었다.

 

그것도 친일행각으로 볼 수 있을까? 동포들을 향해 학병 나가라’, ‘징병에 응하라는 등의 원치 않을 강요를 한 적이 있었을 것이다. 그 짓이 친일파로 몰린 많은 문인들에게 얼마나 괴로운 일이었을까 하는 생각을 한번은 해봐야 옳지 않을까.

 

문인들 가운데서 친일파, 민족반역자를 색출하겠다고 혈안이 돼 동분서주하는 자들의 의도는 과연 무엇인가. 오늘 한일국교정상화가 점점 어렵게 되는 것은 대한민국이 일본을 원수로 여기게 돼야 달성할 수 있는 어떤 음모가 감춰져 있는 것은 아닐까? 일제시대를 살아 본 경험이 있는 사람이면 누구나 그들에게 돌을 던지며 민족반역자들이라 매도하지 못할 것이다.

 

서정주는 1915년 전북 고창에서 출생하였다. 거기서 보통학교를 졸업한 그는 중앙고등보통학교 입학하였다. 서정주는 1930년에 벌어진 광주학생사건에 연루되어 구속되기도 하였지만 기소유예로 풀려났다. 이 사건 때문에 그는 중앙고보에서 퇴학당하고 고향으로 돌아와 고창고보에 편입했지만 곧 자퇴하고 말았다. 그에게는 방랑벽이 있어 산을 찾아 헤매다가 석전 박한영 스님을 만나 입산수도를 시작하였다. 그러나 석전은 서정주에게 일러 주기를 자네는 중이 될 생각을 버리고 타고난 시제를 키워 시인이 되라고 당부하면서 불교를 가르치던 혜화전문에 입학토록 하였고 학비도 스님 박한영이 대주었다는 말도 있다.

 

그는 나이 21살에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이라는 시로 당선되었고 같은 해에 김광균, 오장환과 더불어 동인지 시인부락을 창간하고 그 동인지의 주간이 되었다. 그의 첫 시집 화사집이 출간되었다. 서울에 유학하던 내 누님이 방학에 돌아올 때 그 시집을 사와서 나도 읽어보았지만 무슨 뜻인지 잘 몰랐기 때문에 더 읽으려 하지 않았다.

 

그 뒤 서정주는 동대문에 있던 어떤 여학교에서도 가르쳤고 뒤에는 동아대, 조선대에서 강의하다가 1960년에는 동국대 교수가 되었다. 근년에 와서 서정주를 민족 반역자로 매도하는 가운데 그가 창씨개명하고 다츠시로 시즈오라는 이름으로 친일 문학자의 선두에 섰던 것처럼 막말을 하고 있지만, 그런 사실이 우리 눈에는 전혀 문제가 되지 않았다. 서정주와 함께 영문학자 최재서는 일본군의 종군기자로 취재를 다녔다고 하는데 나는 최재서 밑에서 영문학사, 영시, 문학평론 등의 강의를 들었지만 일제시대를 살아 본 경험의 당시 학생들은 영문학계의 태두이던 그를 다만 우러러 보았을 뿐이었다.

 

서정주는 조지훈, 모윤숙, 노천명 등과 함께 이 나라의 시단의 대표하는 위대한 시인으로 추앙되었다. 1954, 약관 39세에 대한민국예술원 종신회원으로 추대되었고 1977년에는 한국문인협회 이사장 자리에도 올랐다. 누가 뭐라고 비난을 하더라도 미당 서정주는 한국적 정서와 호흡을 잘 조절할 줄 아는 불교신자로서 한국의 서민 대중과는 무척 가깝던 시인이었다. 서정주의 그 많던 작품 중에서 내가 가장 사랑하는 시는 국화 옆에서이다.

 

한 송이의 국화꽃을 피우기 위해

봄부터 소쩍새는

그렇게 울었나 보다.

 

한 송이의 국화꽃을 피우기 위해

천둥은 먹구름 속에서

또 그렇게 울었나 보다.

 

그립고 아쉬움에 가슴 조이던

머언 먼 젊음의 뒤안길에서

인제는 돌아와 거울 앞에 선

내 누님같이 생긴 꽃이여.

 

노오란 네 꽃잎이 피려고

간밤엔 무서리가 저리 내리고

내게는 잠도 오지 않았나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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