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년의 사람들 -김동길의 인물에세이- (79)박두진

 

박두진

혜산 박두진은 충청도 안성 출신이다. 그는 자기의 학벌을 내세우거나 자랑하는 일이 없었지만 여러 곳에서 가르쳤고 우여곡절은 많았지만 연세대학교 국문과 교수로서 그는 역사에 남을 것이다. 특히 시인들 중에서도 청록파로 알려져 있는데, 일제 말기와 해방 직후의 매우 혼란한 문단에서 순수하게 겨레의 얼을 끝내 지켜냈다고 자부하는 박목월, 조지훈과 함께 청록집을 펴냈다는 사실 때문에 그들의 성함을 우리는 오래오래 흠모하게 될 것이다.

 

박목월은 그 얼굴 자체가 서정적이었고 매우 부드러운 인상이었다. 조지훈은 선비다운 풍모와 의연한 자세를 가진 시인이었고, 박두진은 매우 의지가 강한 무사다운 표정을 지닌 시인이었다. 해방이 되자 공산주의에 호응하는 좌익 계열의 조선 문학가동맹이 출범하였는데 박두진은 김동리, 조연현, 서정주등과 함께 조선 청년문학가 협회를 결성하였고 이에 참여하였다. 이어 1949년에는 한국 문학가협회도 가입하여 시분과 위원장을 지내기도 하였다.

 

그는 정력이 왕성하여 (1949), 오도(대낮의 기도 1954), 그리고 1955년에는 박두진 시선, 거미의 성좌(1961), 인간 밀림(1963) 1967년에는 청록집 기타〉, 4년 뒤에는 청록집 이후, Sea of Tomorrow영역 시선이1971년에 출판되었는데, 그 영역은 유명한 감리교 선교사 박대인의 작품이다. 고산 식물사도행전1973년에, 수석 열전도 같은 해에 출간이 되었다. 박두진은 다재다능한 문인이어서 서예에도 일가를 이루었다고 할 수 있을 만큼 두각을 나타냈고, 그 밑에서 글씨공부를 하는 제자들도 많이 있었다. 그의 글씨에는 그의 얼굴을 연상케 하는 기백이 넘치고 있어 그의 제자들의 글씨도 그들의 스승을 닮았다.

 

그는 수석 수집에도 대가였다. 나의 친구 이근섭은 박두진과 함께 수석 수집에 열을 올리며 전국을 누비던 일도 새삼스럽게 생각난다. 물론 내 친구에게서 전해들은 이야기이긴 하지만 어떤 일본인 수석수집가가 소식을 듣고 그를 방문하였는데 ,그중에 한 점을 (나는 본 적이 없고 친구의 말만 들었으므로 그 수석을 묘사할 능력은 없지만) 하여튼 어떤 한 작품을 보고 일본돈 1억엔을 주면 양도하겠냐고 물었을 때 박두진은 나는 절대로 팔 수 없습니다라고 한마디로 거절했다고 전해진다. 그래서 소문이 나기를 한때 박두진에게는 보물 수석이 있다는 말도 나돌았지만 그런 말을 믿는 사람도 별로 없었다. 일본돈 1억엔짜리 수석이 있었다면 박두진이 세상을 떠나고 그 보물은 누구의 손에 갔을까 생각해 보기도 하였다.

 

3.1운동이 일어나기 3년 전에 태어난 박두진은 1998년까지 83년이라는 기나긴 세월을 살면서 시작에 몰두한 가장 순수한 시인들 중에 한 사람이었다. 그의 삶의 원동력은 과연 무엇이었을까? 그는 누구를 만나도 유별나게 말이 없는 사람이었다. 오랜 세월 그를 지켜보았지만 어느 누구와도 그가 만나서 큰소리로 얘기하는 것을 들어본 적이 없다 강의는 썩 잘하였기 때문에 그 밑에 학생들이 많이 모였다. 하지만 하도 말이 없어서 친구가 되기에는 어려운 사람이었다.

 

6.25를 겪으면서 그가 읊은 ‘6.25의 노래는 해마다 6.25사변 기념일이 되면 기념식에서 학교에 다니는 학생들과 국민 모두가 반드시 부르던 노래였다.

 

아아 잊으랴 어찌 우리 이 날을

조국을 원수들이 짓밟아 오던 날을

맨 주먹 붉은 피로 원수를 막아내어

발을 굴러 땅을 치며 의분에 떤 날을

이제야 갚으리 그 날의 원수를

쫓기는 적의 무리 쫓고 또 쫓아

원수의 하나까지 쳐서 무찔러

이제야 빛내리 이 나라 이 겨레

 

아 아 잊으랴 어찌 우리 이 날을

불의의 역도들을 멧도적 오랑캐를

하늘의 힘을 빌어 모조리 쳐부수어

흘려온 갚진 피의 원한을 풀으리

이제야 갚으리 그 날의 원수를

쫓기는 적의 무리 쫓고 또 쫓아

원수의 하나까지 쳐서 무찔러

이제야 빛내리 이 나라 이 겨레

 

아 아 잊으랴 어찌 우리 이 날을

정의는 이기는 것 이기고야 마는 것

자유를 위하여서 싸우고 또 싸워

다시는 이런 날이 오지 않게 하리

이제야 갚으리 그 날의 원수를

쫓기는 적의 무리 쫓고 또 쫓아

원수의 하나까지 쳐서 무찔러

이제야 빛내리 이 나라 이 겨레

 

6.25의 노래를 작사한 박두진의 성격은 이 노래에서도 분명하게 표출되고 있다. 그는 붓을 든 무인이었다. 이 노래에서 그는 의분을 참지 못하여 몸을 떨고 있다. 그에게는 자기가 있고 남이 있었다. 누가 남인가? 불의한 사람들이다. 그는 그 원수들을 추격하기 위하여 큰 칼을 들고 앞으로 달리는 듯한 용사의 모습을 지니고 한평생을 살았다.

 

같은 학교에 있으면서 가까운 친구는 아니었지만 그를 가끔 만나게 되었는데 일본의 사무라이를 연상케 하는 그런 준엄한 얼굴을 가진 사나이가 미인 중에 미인인 현숙한 여성을 만나 단란한 삶을 누리고 있는 것이 대견스럽게 느껴졌다. 학교 근처에서 그들의 다정한 모습을 본 적이 있기 때문에 한 마디 남긴다.

 

그는 기독교적 신앙으로 무장한 선비였고 마틴 루터나 존 칼빈을 닮은 신앙의 용사이기도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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