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년의 사람들 -김동길의 인물에세이- (77)백남준

 

백남준

백남준이 설치미술 또는 행위미술이라는 특이한 예술 분야에 뛰어들어 세계적인 명성을 얻게 된 것이 아마도 조지 오웰의 1984계기가 되었을 것이다. 조지 오웰은 19세기에 살면서 20세기가 되어 인류 전체가 경험하게 될 독재와 통제와 감시의 세계적 추세를 예언한 바 있는데 그런 우울한 미래상에 반발하고 나선 예술가가 백남준이었다.

 

그는 1932년 서울에서 출생하여 수송학교를 거쳐 경기 중,고등학교를 졸업하였고 이어 홍콩으로 건너가 로이드고등학교에 다니면서 영어와 중국어를 익혔다. 그의 아버지는 부유한 사업가여서 당시 서울 시내에 두대밖에 없었다는 캐딜락 한 대를 백남준의 아버지가 소유하고 있었고, 집에 피아노가 있어서 백남준은 신재덕에게 사사하여 어려서부터 피아노를 연주하기 시작했다.

 

6.25 사변이 터지자 미리 여권을 발급 받았던 그는 일본에 유학하여 동경대학에서 미술사학과를 졸업하였다. 그 후 그의 음악적 재능을 키우기 위해 독일 뮌헨에 유학하였고 대학에서 음악사학 박사학위를 취득하였다.

 

내가 1980년도에 독일 함부르크에 강연을 갔을 때 거기서 만난 유명한 여류화가 노은임은 간호사로 독일병원에서 일하고 있었는데, 그는 이미 독일 화단에 저명한 작가가 되어 독일의 미술관치고 그의 작품을 한 점도 소유하지 않은 미술관은 없다는 말도 나돌고 있었다. 나는 노은임을 통하여 백남준만큼 조국을 빛낸 예술가는 없다고 하는 말을 들었고 노은임을 통하여 백남준은 특이하고도 경이로운 작품 활동이 독일 땅에서 먼저 시작되었다는 말을 들었다.

 

그러나 백남준의 대해 더 자세히 알게 된 것은 그를 한 평생 스승으로 모신 강익중을 만나게 되면서부터였다. 백남준과 강익중이 전위 미술의 선봉장들이 되어 국립 현대 미술관에서 2009년 그들의 작품 전시회를 공동으로 개최하면서 부터였다. 나는 그때 그 전시회를 통해 미술의 세계가 그토록 화려하고 다채로운면서 엄숙하다는 것을 깨달을 수 있었다.

 

내가 백남준과 자리를 같이 하여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던 것은 백남준의 경기동창인 염보현이 강원도에 한 지역구에서 국회의원 후보로 출마하여 우리 두 사람은 유세장에 초대하였기 때문이었다. 그는 옷차림이 우선 톡특하였고 표정이 천진난만 하여 얼핏 보면 좀 모자라는 사람 같기도 하였다. 특히 그의 두 앞니가 약간 벌어져 있어서 균형을 잃은 것 같아 내가 그런 생각을 하였는지도 모른다. 나는 그가 조선조의 김시습이나 김삿갓과 같은 기인의 모습이라고 느꼈던 것이다.

 

누군가가 다음과 같은 놀라운 얘기를 전하여 주었지만 믿을 수는 없었다. 그런데 한 가지 사실만은 뚜렷하였다. 그가 클린턴이 대통령이던 때 백악관에 초대를 받은 적이 있는데, 그때 그가 한 짓이 하도 기상천외이어서 그 말이 사실이라고 믿는 사람은 몇 되지 않는다. 대통령 클린턴은 르윈스키와의 성추문이 시달리며 그의 탄핵이 불가피하다는 소문이 떠돌고 있었던 때였는데, 그는 백악관에 다른 손님들도 있는데 자기 아랫도리를 노출시켰다는 것이다. “그런 물건을 클린턴 당신만 가진 게 아니고 나도 가지고 있어라는 뜻이 숨겨져 있었다고 하는데, 그 현장을 보았다는 사람은 아직 한 사람도 만나지 못 했으니 또한 그가 연출한 일순간의 설치미술에 한 장면으로만 여기고 그 사실을 더 추궁하지는 않아 주기를 바란다.

 

그런 엉뚱한 에피소드에 뒤따르는 얘기도 한 마디 들었다. “백남준 같은 손님은 절대 백악관에 초청해서는 안된다는 그 말도 잊혀지지 않는다.

 

누가 뭐라고 해도 백남준이 그의 조국인 대한민국을 전 세계 보여준 천재적인 미술가였다는 사실만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 그는 40넘어 뇌졸증으로 쓰러지기도 했지만 불굴의 투지로 다시 일어나 작품 활동에 전념하였다. 1974년에는 일본의 저명한 행위예술가 구보타시게코와 결혼하였고 끝까지 그 여성 한 사람을 극진이 사랑하다가  2006년 미국 마이애미에서 조용히 세상을 떠났다.

 

어떤 기자가 비판적인 어조로 이런 질문을 하였다. “선생님께서는 조국인 대한민국을 무대로 활동하지 아니하시고 왜 떠돌아 다니십니까?” 백남준이 태연한 표정으로 이렇게 대답하였다. “나는 한국의 예술을 전 세계에 수출하는 일을 도맡은 한국 미술의 세일즈맨입니다.그는 자신의 신분을 문화상인으로 규정하고 전 세계를 무대로 삼고 70평생을 그 한 가지 일에 바쳤던 것이다. 그가 괴테상의 수상자가 된 것도 결코 우연한 일은 아니었다.

 

내가 백남준을 가까이 느끼게 된 것은 강익중 때문인데 강익중은 대학 시절에 나를 따르던 후배인 동시에 강익중의 장인이 된 이은현 때문이다. 그러고 보면 사람과 사람의 인연이란 것은 헤아릴 수 없이 복잡하고 신기한 것이다.

 

대한민국의 대통령들의 이름은 인류의 역사에서 자취를 감출지 모르지만 행위 미술의 천재 백남준의 이름은 앞으로도 인류의 예술사에 길이길이 남을 것이다.


 

 No.

Title

Name

Date

Hit

539

2019/09/15(일) 지구 최후의 날이 (503)

김동길

2019.09.15

605

538

100년의 사람들 -김동길의 인물에세이- (91) 김장환

김동길

2019.09.14

464

537

2019/09/14(토) 술독에 빠졌는가?(502)

김동길

2019.09.14

652

536

2019/09/13(금) 유전이냐, 환경이냐 (501)

김동길

2019.09.13

1321

535

2019/09/12(목) 연휴가 많은 나라 (500)

김동길

2019.09.12

1072

534

2019/09/11(수) 강남의 프롤레타리아들 (499)

김동길

2019.09.11

949

533

2019/09/10(화) 나도 할 말이 있다(498)

김동길

2019.09.10

965

532

2019/09/09(월) 어제와 오늘, 그리고 내일 (497)

김동길

2019.09.09

1154

531

2019/09/08(일) 추기경, 추기경, 우리 추기경 (496)

김동길

2019.09.08

958

530

2019/09/07(토) 나이가 문제로다 (495)

김동길

2019.09.07

1339

529

100년의 사람들 -김동길의 인물에세이- (90) 박태준

김동길

2019.09.07

494

528

2019/09/06(금) 끝까지 웃으면서 (494)

김동길

2019.09.06

928

[이전] 1[2][3][4][5]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