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년의 사람들 -김동길의 인물에세이- (73) 차범석

 

차범석은 1946년 여름 해방과 더불어 대학으로 승격한 연희대학의 전문부 문과 1학년에 함께 입학하여 그가 세상을 떠난 2006년까지 장장 60년 동안 나와는 매우 가까운 친구였다. 그는 1924년 목포의 한 명문가의 아들로 태어나 그 곳에서 교육을 받았고 본디 문학청년이어서 상급학교에 진학할 생각도 안하고 있었지만 해방이라는 조국 역사의 큰 전환점이 그로 하여금 진학을 결심하게 하였고 그는 상경하여 연희대학에 입학한 것이었다.

 

그때 이미 그는 결혼한 몸이었을 것이다. 그는 부인을 동반하고 나다니는 일이 없어 그 집의 안주인을 본적이 없었는데 어느 해 11월 그의 생일날 자기 집에 친구 몇 사람을 초대하여 저녁을 같이 하였을 때 처음 그의 부인을 만나 볼 수 있었다. 젊은 여성은 아니었고 잘 모르긴 하지만 남편과 나이가 비슷하거나 한두 살 위가 아닌가 생각되었다. 가구도 음식도 살림도 매우 깨끗하고 단정하다는 느낌을 받았고 음식에 안주인의 정성이 담겨있었다. 내외가 다 한복차림으로 깔끔하게 차려입고 모든 것이 일류여서 그가 한 번도 자기 집안을 자랑한 적은 없지만 소문대로 대대로 잘사는 집안에 태어난 사실은 짐작 할 수 있었다.

 

대학 1학년에 들어갔을 때 어느 날 자기 작품을 준비해 가지고 온 학생 몇이 각자의 작품을 낭독 했는데 나는 차범석의 작품을 들으면서 그가 뛰어난 문학청년임을 알아차릴 수 있었다. 얼마 뒤에 그의 작품과 이름은 신문에도 게재되어 그는 한국 문단에서 자기자리를 일찌감치 마련한 셈이었다. 1955년 조선일보가 주최한 신춘문예에 가작으로 그의 밀주가 당선되었고 그 이듬해에는 그의 희곡 귀향이 당선되어 우리나라 극작가로 연극계의 큰 별이 되었다. 나도 한번 보러간 적이 있었지만 그의 작품 산불은 장기공연을 할 만큼 유명한 작품이 되어 우리시대에는 그 산불을 안본 사람이 없다고 해도 과언은 아니다.

 

그의 성격이 하도 꼬장꼬장해서 중년에 접어들어서도 몸에 군살이 붙은 적이 없었고 언제나 깡마른 몸집이었고 누구에게도 굽히지 않는 당당한 기질을 가지고 그는 한평생을 살았다. 이런 일이 있었다. 언젠가 KBS에서 어떤 프로그램에 출연해 달라고 하여 시간에 맞추어 그 곳을 찾아갔는데 출입구를 지키는 직원이 신분증을 제시하라는 등 매우 까다롭게 굴면서 태도가 그의 눈에는 교만하게 보였던 것 같다. 차범석이 그 직원에게 이렇게 말했다는 것이다. “내가 오라고 해서 여기에 왔는데 마치 와선 안 될 사람이 온 것처럼 나를 다루니 출연할 생각이 없다.”라고 한마디 던지고 돌아서서 집으로 가버렸으니 아마도 그 프로그램의 PD는 낭패를 보았을 것이다.

 

그에겐 그런 선비정신이 투철하였다. 자존심 하나로 살아온 차범석, 어떤 인간도 그의 앞에서 교만한 태도를 취했다가는 큰 코를 다치게 마련이었다. 그의 그 카랑카랑한 목소리로 따지고 들 때에는 어느 누구도 그를 감당할 수 없을 만큼 매서운 사람이었지만 친구들과의 의리를 지키는 일에는 언제나 최선을 다하는 사람이었다.

 

같은 해 대학에 입학하여 우리는 본 교사에서 강의를 받지 못하고 연희 동산의 한 구석에 서있는 치원관이라는 2층 목조건물에서 배울 수밖에 없었다. 우리 삶의 어느 때 그 시절이 그리워서 치원회라는 모임을 하나 마련하여 한 달에 한 번씩 주로 시내의 호텔 식당에 모여 점심을 함께 하고 담소를 나누었다. 그 모임에는 극작가인 차범석과 롯데의 민속박물관장 일을 여러 해 맡아 보았던 권태선, 농구선수 황재구, 스웨덴 대사를 지낸 임명진 그리고 양녕대군의 후손이며 그 묘소의 넓은 땅과 큰 집을 물려받아 살던 이황, 이화여대의 교수이던 이근섭과 내가 그 모임의 지켜나갔다. 그러나 워낙 나이가 많이 들어서 시작한 모임이라 대부분 세상을 떠나고 나와 임명진이 살아남았지만 이젠 이럭저럭 사라지고만 모임이 되었다. 일전에 임명진이 나에게 전화를 하고는 우리 둘이서라도 만나야 되겠다라고 말했지만 막상 둘이만 만난 것을 생각하니 기가 막혀서 마음이 내키지가 않았다. 살아남은 임명진도 늙고 나도 늙어서 시내 호텔 식당에 가기도 어렵고 뷔페에 가면 음식을 떠다 먹어야 하는데 그런 기력도 이젠 없어서 아마도 처량한 느낌이 더 강하게 오는 것 같다.

 

차범석은 82세에 세상을 떠났고 임명진과 나는 92세인데 아직도 살아있다. 우리 시대에 극작가로 손꼽히는 몇 사람 가운데 차범석이 있다. 그는 어떤 의미에서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연극인이었고 극작가였다. 아마도 작품의 수를 따지더라도 그를 따를 사람이 없을 것이다. 껍질이 깨지는 아픔, 환상여행,하기여 사랑일레라, 거부하는 몸짓으로 사랑했노라, 목포행완행열차의 추억등의 작품이 있다.

 

그는 상도 많이 받았지만 내가 그 많은 상의 이름을 열거하기 시작하면 차범석은 일어나 나더러 이렇게 말 할 것만 같다. “김형, 그 상들이 무슨 가치가 있는 것이라고 그걸 다 되새기고 있어요라고. 친구로서 자랑스럽게 생각하긴 하지만 그가 1991년에 수상한 대한민국 문학상 본상이 있다는 말만 한마디 하고 친구 차범석에 대한 추억을 여기서 접을까 한다. 오늘도 간절히 보고 싶은 친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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