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년의 사람들 -김동길의 인물에세이- (64) 김복동

 

 

김복동의 육사 동기생들 중에 삼총사라고 불리우던 각별히 친한 친구가 세 사람 있었다. 그 중에 두 사람은 이 나라의 대통령이 되어 영광의 한때를 누렸지만 곤욕의 계절도 뒤따랐다. 그런데 본디 김복동에게는 대통령이 되어보려는 꿈은 없었다. 그와 내가 가깝게 된 것은 그가 하나회의 회장이 되어 그들의 모임에 나를 한번 연사로 초대하여 주었기 때문이다. 그때는 전두환과 노태우가 최규하의 뒤를 이어 이 나라의 대통령이 되리라고는 누구도 짐작하지 못 하였던 때였다. 그런데 공교롭게도 학생시절부터 나를 따르던 강흥구가 김복동의 딸 미희(이름뿐 아니라 실물도 미희다)와 결혼하여 김복동의 사위가 된 사실도 관련이 있다고 나는 생각한다.

 

김영삼이 여당으로 들어가 대통령이 되던 바로 그 해에 14대 국회의원 선거가 있었는데 그는 중장으로 퇴역한 뒤 대구 수성에서 출마하여 당당하게 당선이 되었고 나는 강남 갑에 출마하여 이럭저럭 당선이 되어 14대 국회에서 같은 당 출신의 국회의원으로 있었던 것이 사실이다. 김영삼이 집권하여 민정당 출신의 대통령 두 사람을 못 살게 만드는 바람의 삼총사 중 한사람이던 김복동도 매우 안 좋은 분위기에서 장성 출신의 정치인으로서 색다른 삶을 시작하게 된 것이고 나는 정주영이 새로 당을 창당 하면서 나와 의형제를 맺고 나를 통일국민당에 대통령 후보로 추대하겠다는 바람에 얼떨결에 정치판에 뛰어들었는데 학생들 앞에서 강의나 하던 백면서생이 정계에 들어간다는 것이 매우 위험천만한 일이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지만 이미 엎질러진 물을 어떻게 할 줄을 몰라서 서성거리면서 4년의 임기를 채우고 그 자리를 물러나고 말았다. 정주영이 김영삼 앞에서 당신이 민정당의 대통령 후보 공천을 받으면 지원하겠다는 약속을 내동댕이치면서 스스로 만든 당의 대통령 후보가 된 사실에 분개한 김영삼은 정주영이 목을 졸라 현대의 목숨이 끊어질 것 같은 험악한 분위기가 감돌기도 하였다. 정주영은 살 길을 찾아 일본으로 망명하려다 잡히는 그런 상황에서 김복동과 나는 정치판에 남아 악전고투 할 수밖에 없었다. 나는 내가 대표로 있는 동안에 당의 간부들 중에서 가장 유능하고 믿을 만한 동지 김복동에게 전당대회에서 당권을 물려주었다. 그 당은 얼마 뒤에 김종필이 이끌던 자민련과 협력하여 김복동으로 하여금 정치판에서 할 수 있는 일이 별로 많지 않다는 것을 뼈저리게 느끼게 하였을 것이다.

 

그는 한 인간의 한 사람으로 장점이 많은 인물이었다. 내가 보기에 그는 물질적인 욕심은 없었고 한자리 해야겠다는 생각도 전혀 없이 언제나 말이 없는 조용한 사람이었다. 그에게 큰 결함이 하나 있었다면 그가 술을 끔찍이 좋아해 호주가였던 사실이었다. 간에 나도는 폭탄주라는 말도 김복동과 관련하여 생각하게 된다. 그는 암만 마셔도 취하지 않는다는 소문도 있었다. 그가 술을 더 마실 수 없어서 어쩔 수 없이 금주를 단행 했을 때 그의 육신은 녹을 대로 녹아 있어서 그의 투철했던 군인 정신과 조상이 물려준 뜨거운 애국심을 가지고도 건강을 유지할 수가 없었다.

 

그는 경상북도 청송에서 1933년 매우 유복한 가정에서 태어났다. 그는 경북고등학교에 입학하여 성적도 좋은 편이었지만 뜻하는 바가 있어 일반 대학 입학 하지 않고 육군사관학교로 진학했던 것이다. 군인으로서의 진급은 매우 순조로워 전두환, 노태우와 같은 때 별을 달았고 그가 신군부가 집권하는 일에 반대하여 결국은 육사 교장으로 예편 되고 말았다. 만일 그가 매부인 노태우의 뒤를 이어 이 나라의 대통령이 되었다면 전두환과 그의 여동생의 남편은 감옥에 가지 않을 수 있었겠지만 김복동 자신은 더 큰 수난에 직면하여 그만큼도 오래 살지 못했을지도 모른다. 청렴결백한 그런 그가 비리에 연루되어 감옥에 가진 않았을 것이고 정계의 소용돌이 속에서 노년의 정치적 불명예가 겹쳐 신음 속에 나날을 보내는 그 두 사람처럼 되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이 모두가 부질없는 상상인 것을 내가 안다. 그는 2000년에 세상을 떠났는데 그의 부인 임금주가 가까이 있었음에도 금주하지 못한 책임을 김복동 자신이 질 수밖에는 없다. 장군 김복동은 대전에 있는 현충원에 안장되었는데 그의 묘비는 가족들의 요청에 따라 내가 적었다.

 

나라를 지키고자 군인 되었네 나라 건지고자 정치에 뛰어들었네 돈 앞에 고개 숙이는 일은 없었고 권력 앞에 무릎 꿇는 일 없었네 그 당당하던 사나이 벚꽃과 함께 홀연히 떠났네 티 없던 그 맑은 웃음 그리워 가슴 조이며 새봄을 기다리네 벚꽃 필 무렵 다시 오소서 화창스러운 봄바람에 환생키를 바라면서 친구 김동길

 

한 인간에 대한 정당한 평가는 그의 관 뚜껑에 못을 박은 뒤에야 가능하다는 말이 있는데 그는 이미 20년 전에 세상을 떠났지만 김복동을 좋지 않게 말하는 사람은 한 사람도 없다. 아마 앞으로도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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