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년의 사람들 -김동길의 인물에세이- (59) 신익희

 

 

 

 해공 신익희는 1894(고종 31) 경기도 광주에서 판서를 지낸 신단의 막내아들로 태어났다. 그는 고향에서 사서삼경을 비롯하여 한학을 폭넓게 습득하고 상경하여 관립 한성외국어학교를 졸업하였다. 그 뒤에 일본으로 건너가 와세다대학 정경학부에서 수학하였다. 일본에서 대학을 마치고 돌아온 해공은 중동학교에서 가르치기도 하였고 1917년부터는 보성전문의 전신인 보성 법률고등학교에서 교편을 잡기도 하였다. 비교적 순탄한 인생길을 더듬던 신익희가 조국의 앞날을 대하여 남다른 관심을 갖게 된 것은 1918년 미국 대통령 윌슨이 제1차 세계 대전의 뒤처리를 함에 있어 세계의 항구적 평화를 위하여 ‘14개조를 발표한 사실 때문이다. 그 중에서도 특히 민족 자결의 원칙이 국권을 상실한 약소국의 청년의 가슴에 큰 감동을 주었고 일본에 의 하여 강제로 합방당한 대한 제국의 독립을 되찾을 희망이 있다고 믿게 된 것이었다. 그는 서슴지 않고 독립운동에 투신하게 되었고 삼일운동의 불길이 솟아오르기 전에 만주, 북경, 상해 등지에 드나들면서 해외에서 이미 벌어진 독립운동과 국내의 민족 지도자들을 연결시키는 일에 적지 않은 공을 세운 바 있었다. 독립만세를 부르짖는 민중의 함성이 하늘을 찌르던 바로 그때 그는 상해로 떠나 그로부터 26년 동안 망명 생활을 이어갈 수밖에 없었다. 상해에 체류하면서 그는 대한민국 임시헌법을 기초하기도 하였고 임시 정부의 내무총장, 법무총장, 문교부장, 외무부장등을 두루 맡아 맹활약 한 것이 사실이지만 평화적 방법만으로는 국권의 회복이 어렵다고 판단하고 독립을 위한 군대 조직에 열을 올리기도 하였다.

 

  상해 임시정부의 요인들이 갈망하던 8.15 해방이 되었을 때 그는 이미 나이가 50이 넘어섰다. 20여 년 동안 상해 임시정부의 요인들과 생활을 같이 하면서 그들의 성격과 수준을 익히 알고 있던 해공으로써는 그들과 손잡고 신생 공화국을 만들고 꾸려나가기는 어렵다고 판단하였을 것이다. 해공은 한국독립당에 몸을 맡기지 않고 독립촉성국민회의의 결성에 크게 이바지하여 자기의 정치적 노선을 분명하게 한 것이었다. 그는 남북 협상이 한반도의 앞날을 더욱 암담하게 만들 것을 우려하여 우선 자유 민주주의를 표방하는 대한 민국의 수립이 시급하다고 판단한 것이었다. 그것이 해공의 정치적 혜안이었다고 나는 생각한다. 그렇기 때문에 그는 김구보다는 이승만과 손을 잡고 대한민국 수립에 전력투구를 한 것이었다. 그는 제헌 국회에 진출하였고 국회의장 이승만의 뒤를 이어 국회의장의 자리에 오르기로 하였다. 신익희는 이승만의 독주를 막을 길이 없다고 판단하고 장면, 조병옥 등과 합심하여 민주당을 창당하기에 이르렀고 드디어 1956년에는 야당의 대통령 후보가 되어 전 국민 앞에 우뚝 서게 된 것이었다. 그 시대를 함께 살아 보지 않은 사람들은 그에 대한 국민적 지지가 얼마나 큰 것이었는지 짐작도 못 할 것이다. 그해 52일 한강 모래사장에서 벌어졌던 대통령 후보 신익희의 유세 장면은 거기에 모여든 민중과 그 열기로 보아 새로운 시대가 올 것은 너무나도 명약관화 한 일이었다. 1956년 대한민국 대통령 선거가 시작 될 때 이승만의 뒤를 이을 사람은 이미 정해진 것이나 다름이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나도 그런 사람들 중에 한 사람이었다. 그러나 뜻밖의 불상사가 벌어졌다 55일 호남지방에 유세 때문에 전주로 가는 기차 안에서 해공은 심장마비로 급사하였다. 공자에게 있어 가장 슬픈 때는 제자 안회가 세상을 떠났을 때라고 한다. 공자는 하늘이 나를 망하게 하였다라고 한마디 하였다는데 해공의 급사라는 비보는 민주주의를 갈망하던 모든 유권자들이 땅을 치며 통곡할 만한 슬픈 일이었다. 하도 슬퍼서 학교에 출근할 마음이 없다던 교사도 있었다. 어쩌면 국운이 이다지도 막힌 나라인가 내가 알던 사람들은 다 통탄하였다. 해공 없이 선거는 치뤄졌고 그가 세상에 없는 줄 알면서도 185만의 유권자들이 그에게 투표하였다. 해공이 살아있어서 그의 당선 확정 되었더라면 그래도 윌슨에게서 민주주의를 교육 받았다는 이승만이 틀림없이 그의 대통령 당선을 반기면서 그 자리에서 물러났을 것이고 4·19같은 비극은 벌어지지 않았을 것이다. 그뿐인가 군사 구테타가 터질 상황에 다다르지도 않았을 것이다. 나라의 운명을 국운이라고 하는데 대한민국의 국운은 왜 이렇게 험난하기만 한가! 국민의 존경과 지지를 받던 잘 준비된 인물이 민주 대한을 이끌고 나가는 그런 대한민국이 되지 못하였는가. 무엇이 잘못 되어 우리는 오늘도 이 꼴을 하고 살아야 하나. 한탄만 한다고 바로 잡혀 질 수 없는 이 나라의 운명, 그러나 국민이여! 분발하자! 정몽주를 생각하며, 성삼문을 생각하며, 이순신을 생각하며, 안중근을 생각하며, 윤봉길을 생각하며, 동포여! 다시 한 번 분발하자! 대한민국의 후손들을 위하여 뭉쳐 하나가 되어 위대한 대한민국을 이 땅에 세워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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