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년의 사람들 -김동길의 인물에세이- (57) 오재경

 


 죽포 오재경은 이 시대를 함께 살아온 많은 한국인들의 눈에 가장 핸섬한 사나이였다고 나는 믿는다
. 나보다 9년이나 선배이었기 때문에 그와 가까이 지내온 반세기의 기나 긴 세월 동안 그는 변함없이 나의 형님이었고 나는 변함없는 그의 동생이었다. 그의 사람됨이 풍기는 매력은 가까이 사귀어 보지 않고는 잘 알기가 어렵다. 우선 오재경은 이목구비가 어느 누구보다도 수려한 얼굴을 가지고 있었고 항상 깨끗하게 면도한 그의 얼굴에서는 면도 뒤에 당시의 멋쟁이들이 흔히 쓰던 잉글리시레더의 향기가 풍기고 있었다. 그가 단골로 다니던 양복점이 어디에 있었는지는 모르지만 항상 말쑥한 옷차림으로 흠 잡을데 없는 단아한 선비의 모습이었다. 사람을 대하는 매너 또한 탁월하여 그의 첫 인상을 안 좋게 말하는 사람은 한사람도 없었다. 죽포를 내가 이렇게 묘사하면 아마도 그 사람은 따르는 여자들이 무척 많았겠다라고 말할 사람들이 많겠지만 그는 한번 상처하고 또 한번 장가를 들어서 그의 90 평생에는 오직 그 두 사람의 여자 밖에는 없었다. 따르는 미모의 젊은 여성들이 많이 있었겠지만 그는 어떤 여성의 유혹도 다 물리칠 수 있는 수준 높은 기독교적 도덕 관념을 지니고 깨끗하게 살고 갔다.

 

  죽포는 그의 목사 아버지가 부임한 일본 땅에서 성장하였고 거기서 릿쿄대학 경제학과를 졸업하였다. 그는 삼일독립운동이 불길처럼 일어난지 3개월 만에 태어난 탓인지 겨레를 사랑하는 남다른 열정을 이미 지니고 태어난 것 같다. 이 나라의 인구가 3천만 밖에 안되던 때에도, 5천만을 넘어 선 그의 만년에도 오재경만큼 나라를 위해 부지런히 뛰어다니던 사나이는 찾아보기 어려웠을 것이다. 그의 머리에서는 하고 싶은 일, 해야 할 일들이 샘솟듯 솟아나는 것 같았다. 그래서 그는 잠시도 가만 있을 수가 없었던 것 같다. 이 땅에서 가장 바쁜 사나이로 그는 한평생을 마쳤다. 그가 아끼고 사랑하던 선후배가 많았던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그가 미워한 인간들도 적지 아니하였다. 아무리 유명 인사라고해도 거짓말을 하거나 자기의 잇속만 챙기는 인간이라고 판단될 때에는 그와 원수가 되는 것을 조금도 꺼려하지 않았다. 그는 초대 대통령 이승만을 비롯하여 군사쿠데타로 집권한 박정희를 위해서도 최선을 다하였지만 이건 안된다라고 판단될 때는 서슴치 않고 그 자리를 떠났다. 그는 대한여행사 이사장, 구황실재산사무총국장을 거쳐 문화공보부장관 자리에도 올랐다. 그러나 자기 자신이 물러날 때가 되었다고 느꼈을 때에는 미련 없이 그 자리를 떠나는 청풍명월이기도 했다.

 

  세계적으로 각광을 받게 되는 대한민국의 관광사업이 매우 중요하다는 사실을 깨닫고 한국관광공사 총재에 취임 했을 뿐 아니라 국제로타리와의 인연은 매우 오래된 것이어서 분단국가에 지나지 않는 대한민국에서 전세계 로타리의 회장이 탄생한 기적적인 사실도 그가 쌓아올린 로타리안으로서의 공적과 무관치 않을 것이다. 우리의 전통 문화를 살리기 위한 노력의 일환으로 마련되었던 원각사는 지각 없는 사람들의 부주의로 불타버리고 그가 아니었다면 탄생할 수 없었던 한국의 집’(KOREA HOUSE)은 오늘 그의 꿈을 과연 이어가고 있는지 의심스럽다. 그는 기독교방송의 사장으로 군사정권에 대한 비판도 서슴치 않았고 동아일보 사장으로 추대되어 언론계에서 그가 민완을 휘두른 사실도 잊혀질 수 없는 언론역사의 한 토막이었다. 그의 오랜 공직 생활이 그에게 축재의 기회를 마련해 주기도 하였겠지만 돈에 대하여는 큰 관심이 없는 깨끗한 선비로 한평생을 끝냈다. 뉘집의 정원에서라도 잡초 한 포기를 발견하면 반드시 뽑아 버리지 않고는 그 자리를 떠나지 못했던 그의 까다롭던 성미, 미운 사람과는 타협이 불가능하던 꼬장꼬장한 성격, 백세를 향해 달리면서도 계속 건강하던 그가 휠체어를 타지 않고서는 어디에도 못 가는 신세가 되었을 때에도 어떤 모임에나 필요하면 꼭 참석하였다.

 

  대한 독립 만세를 외치는 국민의 함성이 하늘을 찌르던 그 해에 태어난 오재경, 그 오재경이 이 세상을 떠나 하나님의 품으로 돌아가고 어언 7년의 세월이 흘렀으니 세월의 무심함을 느끼게 된다. 그를 그리면서 영국 시인 월터 새비지 랜더의 시 한수를 읊조려 본다.

 

나 아무와도 다투지 않았네

나 아무와도 다투지 않았네

다툴 만한 상대를 만나지 못했기에

 

나 자연을 사랑했고

자연 다음으로는 예술을 사랑했어

 

인생의 불길에 두 손을 녹였건만

그 불은 이제 꺼져 가는구나

 

떠날 준비는 다 되어있어

 

  인간 오재경의 아름답던 모습을 때때로 회상하게 된다. 그는 능력을 크게 타고난 인물이었다. 화가도 아니었고 음악가도 아니었고 시인도 아니었지만 오재경이야 말로 진정한 삶의 예술가였다. 그의 예술의 장르는 무엇이었는가? 한마디로 하자면 그는 이웃과 나라를 사랑하는 그 예술에다 그의 삶을 다 바쳤다고 해도 지나친 말은 아니다. 그가 이룩한 그 많은 업적이 모두 그의 사랑의 열매인 것이다.

 

  동지를 지난지도 한 달이 가까워오니 이젠 봄이 멀지는 않았다고 느끼게 된다. 그래서 더욱 봄이 기다려지는 오늘, 오재경의 그 미소가 유난히 그리워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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