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01/05(토) 설의식이라는 언론인 (250)

 

설의식이라는 언론인

 지금은 그를 아는 한국인이 많지 않을 것이다. 그는 1900년에 태어나 6.25 사변이 막 끝나고 폐허가 된 조국의 재건이 시작되던 1954년에 세상을 떠났으니 그를 기억하는 사람들이 많지 않은 것도 당연하다. 그러나 해방 직후에 여러 부류의 신문들이 속출했지만 1947년에 새한 일보를 창설한 설의식의 필봉은 매우 날카롭기도 하고 통쾌하기도 했다. 오랜 세월이 흘렀지만 설의식이 새한 일보에 발표했던 글 한편은 오늘도 잊을 수가 없다.

 

 해방이 되고 좌익과 우익이 첨예하게 대립하던 때여서 3.1절 같은 국경일이 되면 좌익 단체들은 애국자는 남산으로라는 구호를 외치며 반드시 따로 행사를 하였다. 정부가 수립되기 전에도 자유 민주주의를 표방하던 우익 단체들은 애국자는 서울 운동장으로라는 구호를 외치며 두 파가 완전히 갈라져서 집회를 가졌다.

 

 그 당시 좌익과 우익 간의 격렬한 논쟁 중에 하나가 한반도의 임시정부 수립을 지원하기 위해 미국과 소련이 개최한 회의를 .소 공동 위원회라고 불러야 하느냐, 아니면 .미 공동 위원회라고불러야 옳으냐 하는 문제였다. 그때 설의식은 남한의 언론인 중 한사람으로 그 위원회의 호칭은 마땅히 미.소가 되어야 한다고 피력하였다.

 

 지금도 뚜렷하게 기억되는 것은 설의식의 주장은 이 어느 것이 먼저인가 라는 논리에 근거하였던 것이다. 그 시절에는 소련이라고 하지 않고 쏘련이라고 부르던 사실도 생각난다. 그래서 이 이기고 이 무너졌다.

 

김동길

Kimdonggil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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