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09/13(목) 영국의 헨리 8세 (136)

 

영국의 Henry VIII세에게 여자가 많았다는 통설이 있다. 그에게 여자가 여덟 명이나 있었다고 잘못 알고 있는 사람들이 많지만 사실은 여섯 밖에 없었고, 왕비는 언제나 한 사람 뿐이었다. 헨리 8세의 결혼 생활은 처음부터 불행하였다. 왕위에 올랐던 형 Arthur가 세상을 떠났기 때문에 그 당시 영국 왕실의 관례를 따라 동생이 왕위를 계승하고 미망인이 된 형수와 결혼 할 수밖에 없었다.

헨리 8세는 스페인 출신의 그 형수인 왕비 캐서린을 좋아 하지 않았지만, 그 사이에서 Mary Tudor 라는 딸이 태어났다. 잠시 왕위를 계승한 메리 1세는 6년이라는 길지 않은 세월에 로마 가톨릭 복고 정책으로 개신교와 성공회를 탄압하여 너무나 많은 사람들을 죽였기 때문에 “Bloody Mary”라는 별명까지 얻게 되었다. “피의 메리”라는 칵테일도 있는데, 그 술의 빛갈이 핏빛인 것이 사실이다. 아들이 없던 헨리 왕은 형수였던 캐서린과 이혼하고 앤 불린Ann Bolyn 이라는 재색을 겸비한 여성과 결혼하려고 했으나 교황청이 이를 허락하지 않아 오래도록 교황청과 갈등을 겪었다.

헨리는 8세는 교황청과 단절하고, 6세기 이래 로마 가톨릭교회 소속이었던 영국의 교회를 로마 가톨릭교회로부터 독립시켜 왕 자신이 교회의 우두머리가 되는 “수장령(Act of Supremacy)을 선포하였다. 그리고 교황청이 가졌던 토지를 모두 몰수하여 자기를 따르는 신진 세력들에게 분배해 줌으로서 왕의 자리를 더욱 곤고하게 하였다.

이 법에 따라 기독교 역사에서 성공회의 시초가 마련되는 계기가 되었던 것이다. 헨리 왕이 죽고 ‘Bloody Mary’ 가 등장하여서 까딱 잘못했으면 앤 불린의 딸인 엘리자베스 1세 여왕도 목숨을 잃을 뻔하였다.

김동길
Kimdonggill.com

 

 No.

Title

Name

Date

Hit

265

2019/01/18(금) 고통의 의미 (263)

김동길

2019.01.18

89

264

2019.01/17(목) 질서를 위하여 (262)

김동길

2019.01.17

781

263

2019/01/16(수) 포퓰리즘이란 (261)

김동길

2019.01.16

886

262

2019/01/15(화) 트럼프의 얼굴만 보나? (260)

김동길

2019.01.15

1004

261

2019/01/14(월) 진주만을 기억하라 (259)

김동길

2019.01.14

1070

260

2019/01/13(일) 야스쿠니 신사의 미래 (258)

김동길

2019.01.13

1472

259

2019/01/12(토) 문신이 웬 말이냐? (257)

김동길

2019.01.12

1516

258

100년의 인물 -김동길의 인물에세이- (56) 조순

김동길

2019.01.12

533

257

2019/01/11(금) 노년을 사는 지혜 (256)

김동길

2019.01.11

1556

256

2019/01/10(목) 속도에 미쳤나 봐 (255)

김동길

2019.01.10

1507

255

2019/01/09(수) Brexit 와 Bedlam (254)

김동길

2019.01.09

1749

254

2019/01/08(화) 자본주의는 필요악인가? (253)

김동길

2019.01.08

378

[이전] 1[2][3][4][5]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