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07/11(수) 원두우 동상에 얽힌 이야기 (72)

 

설립자 원두우의 동상이 1928년 연희대학교 교정에 세워진 일은 일제가 기승을 부리던 때였다. 그러나 군국주의 일본이 태평양 전쟁이 차차 불리하게 전개되자 탄피를 만들기 위해 전국적으로 쇠붙이를 거두어들이기 시작하였고, 구리를 모두 회수해가는 과정에서 놋그릇, 놋수저는 물론 동상마저 거두어 갔다.

그런 사연으로 설립자 원두우의 동상은 동상대만 남아있었는데, 해방이 되고 5.10 선거가 끝났던 무렵인 1948년 10월의 어느 날, 2차 원두우 동상 제막식이 교정에서 열렸다. 그 자리에는 대통령으로 당선된 이승만, 독립투사 김구, 그리고 김규식 등 건국의 세 영수가 나란히 앉아 있었다. 원두우는 이승만이 독립협회 운동으로 투옥 되었을 때 많은 서적들을 감옥에 차입해주어 <옥중문고>를 만들게 하였다고 한다.

학생들로 구성된 교향악단의 반주에 맞추어 애국가를 봉창하고, 총장 백낙준의 소개에 따라 세 사람이 등단하여 축사를 하였다. 이승만은 평범한 축사를 하였으나, 김구는 등단하여 원두우 동상을 가리키며 저 동상은 다시 쓰러져도 원두우의 정신이 살아 있기 때문에 다시 세워질 것이라고 하며 이 동상의 수난이 곧 나라의 고난이 될 것이라고 하여 2년 뒤의 6. 25를 예견한 듯한 한마디를 남겼다.

김규식은 Nathaniel Hawthorne의 “Great Stone Face(큰 돌의 얼굴)”를 언급하면서 그 얼굴을 바라보던 이승만이 이 나라의 초대 대통령이 되었으니 저 얼굴이야 말로 큰 돌의 얼굴이 아니냐?”라고 하던 그 말 한마디가 70년이 지난 오늘도 생생하게 기억이 된다.

김동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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