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06/24(일) 100키로 나가는 거구를 이끌고 (55)

 

내가 당황 했다기보다도 교도관이 당황한 것은 나의 거구를 감쌀 수 있는 죄수복이 없다는 것이었다. 궁리 끝에 미국 군인이 잡혀 왔을 때 입히는 큰 죄수복이 어디 있는지 아는 자가 있다고 하면서 옷 한 벌을 구해왔다. 내게 미국 군인용 죄수복을 입히더니 교도관은 나를 안내하여 94상이라는 감방으로 데리고 갔다. 그리고 한 평쯤 되는 독방에 나를 들여보내고 덜컥 문을 잠가 버렸다.

나는 이곳에 갇혀서 마음대로 나갈 수 없는 몸이 된 것이다. 시간은 거의 10시가 다된 것 같았는데, 전등불은 꺼지지 않고 밤새도록 감방을 비추고 있었다. 감방 벽을 살펴보니, 먼저 그곳에 머물렀던 ‘죄수’가 <샘터> 라는 잡지에서 뜯어낸 한 장의 종이가 붙어있었다. 그것을 유심히 들여다보니, “진리는 반드시 따르는 자가 있고, 정의는 반드시 이루는 날이 있다”라는 도산 안창호의 한마디였다. 한 장의 종이에 적혀 있는 도산의 그 한마디가 나에게 큰 용기를 주었다.

나보다 먼저 그 감방에 갇혀있던 어느 젊은 친구가 <샘터> 잡지에서 읽은 그 말에 감동하여 벽에 붙여 놓은 것이 분명하였다. 그 젊은이의 간절한 마음이 나에게 그대로 전달이 되어 나도 그 한마디를 생각하며 밤새도록 밝히고 있는 그 전등불 밑에서도 매우 편안하게 잠을 잘 수가 있었다. 인생이란 갈수록 요지경이 아닐까?

김동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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