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06/11(월) 서양사 조교수가 되어 (42)

 

나는 미국 인디아나주에 에반스빌 대학에서 요구하는 학점을 다 이수하고 역사 전공으로 학사 학위를 다시 받았다. 체류기간이 한 일 년쯤 남아 있었기에 불루밍턴에 있는 인디아나 주립대학 대학원에서 1년 수학을 하고 돌아와 연세대학에 서양사 교수가 되었다.

내가 주로 가르친 것은 서양 문화사인데, 나에게 무슨 해박한 역사에 관한 지식이 있어서가 아니라 그날그날 공부를 해 가면서 학생들을 가르치게 되었다. 지식이야 많든 적든 말 줄거리를 잘 잡고 이런저런 이야기를 덧붙이는 재주 하나는 가지고 태어났기 때문인지 나의 강의실에는 다른 대학에서도 와서 도강하는 학생들도 적지 않았다. 어떤 때는 복도에 학생들이 줄을 서서 내 강의를 듣고 있는 그런 광경도 흔히 볼 수 있었다.

내 누님이신 김옥길 총장이 언젠가 우리 둘이만 앉아 있었을 때 이렇게 말한 적이 있다. “우리 남매는 우리가 가진 실력보다도 훨씬 더 높이 평가되고 있는 것이 사실이니 미안한 일이다”라고 하여 나도 그렇다고 그 말에 찬성하면서 둘이서 한참동안 웃었던 일이 기억된다.

그것은 다 팔자소관이다. 실력은 많지 않다고 하더라도 DNA는 타고난 모양이다. DNA가 한몫을 하는 것이지 변변치 않은 우리들이 무슨 강의를 그리 잘 했겠느냐마는 나는 어느새 연세 대학의 인기 교수가 되고 말았다.

김동길
Kimdonggil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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