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05/30(수) 당시의 연희대학교 (30)

 

나의 어머니는 연희대학교 가까운 곳에 이사를 가기로 결심하고 평양에서 소문난 부자였던 황갑영 씨와 그의 부인만이 단출하게 살던 큰 집에 방을 두 개 얻어서 새 살림을 꾸려나가게 되었다.

그 좁은 집에도 월남한 친지들이 많이 찾아와서, 우리 집은 언제나 북적북적 하였고 식객이 없던 날이 별로 없었던 것 같다. 그러나 나의 어머니는 그 어려운 살림을 잘도 꾸려 나가셨다. 내가 살던 집에서 연대까지는 고개를 넘어 이화여대 교정을 거쳐서 가면 25분밖에 걸리지 않았다.

새로 짜여진 연희대학의 교수진은 김선기, 홍순혁, 김윤경, 이호근, 그리고 서두수 교수등을 비롯하여 모두 그 시대의 쟁쟁한 학자들로 이루어 졌다. 일제 강점기 말에는 문과의 학생 모집을 중단했기 때문에 전문대학에 진학하지 못하고 있던 인재들이 많이 몰려들었다. 학생 중에는 뒤에 극작가로서 명성이 자자했던 차범석 같이 이미 여러 작품들을 발표했던 인물도 끼어 있었다.

그 당시의 학제는 3년에 전문부의 졸업장을 받을 수 있었고, 계속 학부에 다니려면 또 다시 시험을 치러야했다. 나는 학부 영문과에 지원하였는데 아마도 간신히 입학이 허락되었을 것이다. 학부 1학년 때 만난 동기생들 중에는 학생 시절에 고시에 합격하여 뒤에 유명한 검사가 된 이병용과 외무부 차관을 지낸 전상진 등이 있었다.

김동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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