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05/29(화) 내가 대학생이 되다 (29)

 

때는 1946년 6월 19일, 평양역을 떠나서 며칠이나 되었는지 가마득하였다. 철원 근처에서 트럭을 얻어 타고 의정부를 거쳐 경학원이 있는 명륜동까지 왔을 때는 무더운 여름날 오후였다. 나의 삼촌은 진남포 상고를 졸업하고 서울 화신상회에서 근무하고 있었다. 삼촌 댁은 예전의 작은 집에서 경성여의전 가까이 위치한 일본인 소유였던 적산가옥을 구입하여 비교적 큰 집으로 이사를 하였기 때문에 우리는 영성 권사와 그 딸 정확실과 함께 그 집에서 며칠 동안 기거할 수밖에 없었다.

우리는 아현동 마루턱에 있는 낡은 집의 방 한 칸을 얻어 피난민 생활을 시작하였다. 그 시절에는, 해방이 된 후 모든 전문학교들이 대학으로 승격하면서, 여름에 입학시험도 보고 학생을 모집하였다. 미국 선교사가 세운 학교이기 때문인지, 연희대학을 지원하는 젊은이들이 교문이 터질 만큼 많이 모여들었다. 평양에서 중학교를 마쳤다는 내 자신의 증언만을 믿고 백낙준 총장은 나를 전문부 문과에 받아 주셨다. 내가 짐작하건대, 김활란 총장이 백총장에게 나의 입학을 부탁하였을 것이다.

그때에는 그런 일이 다 가능한 시절이었다. 그렇지 않고서야 내가 어찌 그 무서운 경쟁을 뚫고 그 대학에 합격이 되었겠는가? 농담이 아니라, 진담이다. 그러나 연희대학이 나를 학생으로 받아준 사실이 그때나 지금이나 후회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김동길
Kimdonggil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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