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05/04(금) 평양으로 돌아와서 (4)

 

어머니가 무슨 뜻이 있어서 서울에 가셨는지는 모르지만 내 짐작에는 가능하면 서울에 정착할 마음을 가지고 계셨던 것 같다. 그럴 수 있는 환경이 아닌 것을 깨닫고 어머니는 내 누나와 형이 기다리고 있는 평양으로 돌아와 크지도 않은 셋방을 얻어 불안한 도시 생활을 시작하게 되었다. 광산을 시작한 나의 아버지는 광산에서 돌아오지 않았고 어머니는 혼자서 살림을 꾸려나가야만 했다.

어머니는 어린 우리들을 먹여 살리기 위하여 안 하신 고생이 없었다. 남의 집 빨래도 하시고 삯바느질도 하셨다. 그러나 어머니는 단 한 번도 우리들 앞에서는 장차 살아갈 일을 걱정하신 적이 없었다.

나의 어머니는 내가 그 뱃속에 있을 때 맹산에서 어느 선교사로부터 세례를 받으셨다고 한다. 삼복더위에 재봉틀 앞에 앉아 바느질을 하시면서도 언제나 어머니는 찬송가를 부르고 계셨다. "내 영혼이 은총 입어 중한 죄 짐 벗고 보니 슬픔 많은 이 세상도 천국으로 화하도다.” 지금도 이 찬송은 나로 하여금 그 시절을 회고하며 눈물짓게 한다.

새벽 일찍 일어나셔서 기도로 하루를 시작하시고, 누구를 만나도 웃으시던 그 미소 띤 얼굴로 늘 우리의 손목을 잡고 교회를 가셨다. 어머니가 정하고 다니시던 교회는 장댓재 언덕에 있는 평양에서 가장 오랜 장로교회 장대현 교회였다.

김동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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