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06/25(금)이 한 권의 책(1090)

 

이 한 권의 책

    지구 상에 출판된 그 많은 책들 중에서 오로지 한 권만을 건질 수 있다면 당신은 어떤 책을 선택하겠는가. 가상의 질문일 뿐 그런 질문을 하는 사람은 없겠지만 그런 질문을 던져 봄으로써 인류가 오늘 간직하고 있는 책 중에 가장 소중한 책은 무엇인가 하는 생각을 해 볼 수 있겠다.

    죽기 5분 전에 무슨 책을 읽어보고 싶은가 물으면 <성서>라고 대답하는 사람이 많다. 대학에 다닐 때 나의 친구 한 사람은 자기는 죽기 전에 예수께서 남기신 <산상수훈>을 읽다가 마지막 숨을 몰아쉬겠다고 한 적이 있다. 대학생 시절에 그 친구로부터 그런 말을 들은 뒤에는 만나볼 일이 없었지만 아직도 살아 있는지 이미 세상을 떠났는지, 세상을 떠날 때 그는 과연 <산상수훈>을 읽고 갔는 지 알 길은 없다. 그렇지만 그 친구로부터 그 얘기를 들은 후로는 나도 그런 생각을 많이 하게 되었다.

    마지막 5분이 주어진다면 무엇을 하고 싶은가. 건강 상태가 말이 아니어서 성경을 읽거나 기도를 할 처지가 못 될 수도 있다. 그러나 제 정신을 가지고 한 인간이 자기 자신의 최후를 맞이할 때 죽기 전에 성서를 읽고 싶다는 자신의 소망을 털어놓을 수는 있는 것이다. 그런 시간적 여유가 없이 졸지에 떠나는 사람들도 있겠지만 5분 내지 10분의 여유가 있어서 무엇을 하고 싶은가 남이 물을 때 확실한 대답을 갖고 있는 것은 매우 좋은 일이라 여겨진다.

    월터 스콧(Sir Walter Scott)은 영국의 유명한 문인으로 이미 발표한 시와 글이 엄청나게 많았다. 죽음이 임박하였을 때 그 시인은 책 한 권을 가져오라고 하인에게 당부하니 하인은 어리둥절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하인이 주인에게 물었다. “어떤 책을 말씀하십니까?” 그의 서재에는 몇 천 권의 책이 꽂혀 있었기 때문에 주인이 어느 책을 원하는 지 알 수가 없었던 것이다. 월터 스콧은 하인에게 일러 주었다. “ 이 사람아, 책이란 한 권 뿐이야. 성서를 가져와자기가 썼건 다른 누가 썼건 월터 스콧에게는 수천 권의 책 중에 책은 한 권 뿐이었던 것이다. 그런 소중한 책이 성서이다.

    독일의 구텐베르크가 새로운 인쇄술을 발명하고 신 구약 성서를 몇 질 찍어냈다. 그때 찍은 성서 중에 스무 여권이 아직 남아있는데 아마 경매에 나가면 백만 달러가 넘는 금액을 받아낼 수 있을 것이다. 지금은 한 권으로 만들어진 신구약 성서를 무상으로는 나눠주지도 않겠지만 보급판인 경우 십 달러도 채 안될 수도 있다.

    중국의 소중한 책 <경전들>도 많은 시련을 겪은 것은 사실이다. 중국의 폭군 진시황은 말 안듣는 유생들을 구덩이에 파서 산 채로 묻었고 소중한 고전들을 모아 불태우는 일을 감히 벌였다. 그러나 그 경서들의 소중함을 아는 사람들이 돌에다 그 내용을 새기고 담벼락을 만들고 도배를 했다. 독재자나 폭군은 앞으로도 나올 수 있다. 그러나 감히 전통적인 경서들을 불태우지는 못할 것이다기독교를 유산으로 물려받은 사람들 중에 하나인 나도 지구상에 있는 모든 책을 다 불태운다 하더라도 신구약 성서 한 권은 살려두어야 한다고 주장하고 싶다.

 

김동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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