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05/25(화)목소리 하나로 여기까지(1063)

 

목소리 하나로 여기까지

    해방이 되고 내가 대학에 입학했을 때 우리에게 음성학(phonetics)을 가르친 교수가 런던대학에서 Daniel Jones(대니얼 존스)의 가르침을 받은 김선기 교수였다. 강의실에서 학생들이 각기 문장을 낭독해야 했을 때 내가 낭독하는 것을 듣고 김 교수는 김 군의 목소리는 Golden Voice라고 한 말씀 하셨고 그 한 마디가 나의 일생을 지배하였다고 볼 수도 있다.

    김선기 교수의 추천을 받아 나는 당시 연희대학의 중요한 모임에서 학생을 대표하여 연설할 수 있는 기회를 갖게 되었다. 내 연설의 내용이야 어찌되었건 목소리가 좋은 사람이라는 소문이 나서 기독학생회 회장도 되었고 선거를 통하여 총학생회장에 당선되기도 하였다.

    평안도 사투리를 완전 탈피하지 못하였음에도 불구하고 각종 학생단체의 우두머리가 되었다. 매우 젊은 나이에 연희대학교의 전임강사가 되고 나서는 나의 타고난 그 목소리 때문에 나의 강의는 학생들 사이에 인기가 있는 그런 강의 중에 하나가 되었다. 내가 한 강의가 학생들의 지탄을 받은 적은 한 번도 없었다. 나의 강의나 담화에는 약간의 음악이 깃들어 있기 때문에 듣는 사람이 상쾌하게 느낀다는 말도 들었다. 아직 그런 비난은 들어본 적은 없지만, 설사 내 강의 내용이 부족하다고 비난해도 나의 타고난 목소리 덕분에 사람들이 그 시간만큼은 즐거움을 느꼈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나는 내가 한 말의 내용에 대하여 송구스럽게 느끼지 않아도 되었을 것 같다.

    대화나 강의를 막론하고 사람의 입에서 흘러나오는 말에는 반드시 리듬이 있어야 한다는 게 나의 지론이다. 우선 목소리가 좋아야 강의나 강연을 듣는 사람들이 피곤을 느끼지 않는 것이고 특히 말로 메시지를 전하기는 하지만 거기에 음악이 있으면 전달효과가 더욱 엄청난 것이다.

    구십 언덕을 한참 넘은 한 시대의 노인이 되어 내가 제일 애석하게 생각하는 것은 내가 옛날에 자랑하던 그 목소리를 이제 잃어버린 것이 아닌가 하는 것이다. 사람이 발성을 함에 있어 크나 적으나 역할을 담당하는 모든 기구에 일종의 장애가 생긴 것 아닌가 하는 우려를 떨쳐 버릴 수가 없다. 사람이 늙는다는 사실이 자연스러운 것이라 생각하며 단념할 수밖에 없지만 어쨌든 나에게는 가장 슬픈 사실 중의 하나라고 할 수 밖에 없다. 그렇다고 하여도 아무런 불평도 하지 않고 끝까지 웃으면서 살기로 나는 결심하였다.

 

김동길

Kimdonggil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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