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04/21(토) 그런 날들도 있었는데 (3643)

 

늙어진 이 나이가 되고 보니 대개가 괴로운 일들을 많이 보고 듣게 되는 것 같습니다. 며칠 전에는 한때 최고의 영화배우로 명성을 떨쳤던 최은희 씨가 세상을 떠났다는 소식을 듣고 한참동안 눈을 감고 그를 생각하였습니다. 내가 살아온 시대에는 최은희 보다 더 아름다운 여성이 없다고들 하였는데 지난 여러 해 동안 신병으로 고생을 많이 하더니만 그도 어쩔 수 없이 이 세상을 하직하고 하늘나라로 갔습니다.

그가 홍콩에서 납치되어 북으로 끌려가기 직전인 그 해, 12월 19일엔가 최은희 씨는 우리 집에 온 적이 있습니다. 그때 모였던 분들--경방의 김용환 씨, 천우사의 전택보 씨, 전남방직의 김용주 씨, 백낙준 총장 내외, 김옥길 총장--과 그리고 나 이렇게들 모여서 노래 잘하는 최은희 씨의 가요도 듣고, 나도 몇가지 노래를 부르며 즐거운 저녁을 함께한 기억이 새삼 아름다운 추억으로 되살아났습니다. 최은희 씨의 노래 솜씨는 뛰어났다고 느꼈습니다. 그날 저녁에 헤어지고 나서 나에게 연하장도 한 장 보냈던 그가 납치되었다는 소식에 더욱 안타까워하였습니다.

1978년의 그 일이 어언 40년 전 이었다는 사실을 알고 놀라움을 금할 수 없습니다. 그 뿐만 아니라 그날 저녁 즐거운 한때를 함께 보냈던 그 모든 분들이 이제는 전부 이 세상을 떠나버리고 91세가 된 나만 홀로 남게 되었습니다.

인생이란 그런 것임을 알면서도 최은희 씨의 부음에 접하여 인생이 무상하다는 생각이 더욱 간절하게 들었습니다. 40년 전 만해도 나에게는 약간의 젊음이 남아있었는데 지금은 어쩔 수 없는 노인으로 시들어 당대의 미인이 서거했다는 슬픈 소식에 접하게 되니 감개가 무량합니다. 그런 날들도 있었는데!

김동길
Kimdonggil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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