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04/17(화) 오늘은 찬비 맞았으니 (3639)

 

조선조의 선비 중에 백호 임제라는 이가 있었습니다. 매우 호탕한 성격을 타고난 사람으로 나이 40을 넘기지도 못하고 요절하였다고 전해집니다. 그가 황진이의 무덤을 찾아가서 “잔 잡고 권할 이 없으니 그를 서러워하노라” 라고 읊은 시가 유명하지만 이런 시를 또 하나 읊었다고 합니다.

북창이 맑다커늘 우장없이 길을 나니
산에는 눈이 오고 들에는 찬비로다
오늘은 찬비 맞았으니 얼어 잘 가 하노라

이 시조가 그가 살던 시대를 못마땅하게 여겨서 읊은 것 같기도 하고 일설에는 한우(찬비)라는 이름의 기생이 있었다는데 그 기생을 찾아간 자기변명 같기도 하여 알쏭달쏭합니다. 임제는 세상을 떠나려 할 때 식구들이 모여 앉아 통곡하는 소리를 듣다못해 벌떡 일어나 이렇게 한마디 하고 숨을 거두었다고 합니다. “이 작은 나라에서 태어나 황제 소리 한번 못해보고 살다 가는 이 몸을 보내면서 울기는 왜 우느냐?” 라고 소리를 질러 임제의 후손들은 집안의 어른이 세상을 떠나도 절대로 곡을 하지 못한다는 말을 그의 후손에게서 들은 적이 있습니다.

오늘 세상이 매우 어지럽다고 한탄하는 사람들이 상당히 많습니다. 산에는 눈이 오고 들에는 찬비가 내리는 기막힌 현실이라고도 생각이 듭니다. 풍류객 임제는 기생의 품을 찾아가 한 밤을 지새웠는지는 모르겠으나, 오늘을 사는 우리들에게는 위로를 받을 길이 전혀 없는 것 같습니다. 돌변하는 남북 관계는 이대로 안심할 수 있는 것인지 아니면 뜻하지 않은 재앙이 우리들을 기다리고 있는 것인지 분간하기 어렵습니다.

이 계례가 다 우러러 볼 수 있는 큰 스승이라도 살아 계시다면 그 어른의 얼굴이라도 바라볼 수 있으련만 오늘 우리에게는 그런 ‘큰 얼굴’ 조차 보이지 않습니다.

김동길
Kimdonggil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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