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04/04(수) 바퀴벌레 한 마리 I (3626)

 

성인의 엄지손톱만큼 큰 바퀴벌레 한 마리가 오늘 아침 나의 침실로 침략을 감행하였습니다. 나는 그렇게 큰 바퀴벌레를 평생 본 일도 없었고 여기 내 침실까지 들어오는 바퀴벌레도 본 적이 없었습니다. 바닥을 유유히 기어가는 이 바퀴벌레를 잡아야 할 터인데 파리채 같은 것이 가까이 보이지 않았고 나는 무슨 벌레 따위를 보고 크게 놀라지 않는 사람이기 때문에 나 또한 유유히 파리채를 찾으러 나섰습니다. 물론 그 놈은 내가 파리채를 손에 들고 왔을 때는 이미 그 자취를 감추었기 때문에 나는 내 침상에 파리채를 들고 걸터앉아 장기전에 응할 마음의 준비를 하고 느긋하게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그 바퀴벌레는 금방 나타나지 않았습니다. 딴 곳으로 아주 숨어버렸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어서 내가 허탕을 치는 것 아닐까 하는 생각도 없지는 않았지만 누가 이기나 보자 하는 뱃장으로 계속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이 놈이 드디어 그 모습을 나타냈을 때 나는 매우 감동스러웠고 사나운 치타가 어린 사슴 한 마리를 덮치는 광경을 상상하면서 그다지 자유롭지도 못한 나의 오른 팔을 들어 일격을 가했습니다. 한번 맞고 꼼짝도 하지 않는 그 바퀴벌레를 보고 나는 내 사명이 다 끝났다고 생각했는데 이놈이 또 다시 움직이기 시작했기 때문에 결정타를 2번, 3번 더 내리쳤습니다. 내 눈앞에서 바들바들 떨고 있는 벌레를 유심이 바라보면서 나는 일본 작가 아쿠타가와 류노스케의 단편 <거미줄>을 생각했습니다.

천하의 악당이던 칸다다라는 사나이는 물론 죽어서 지옥에 갔지만 뜨거워서 고생하는 이 악한의 모습을 천상극락에서 부처님이 연꽃사이를 거닐다가 굽어보시며 ‘이놈이 그래도 생전에 잘한 일이 한 가지라도 있겠지’ 라는 생각을 해보셨읍니다. 그리고 그가 언젠가 기어가는 거미 한 마리를 밟아 죽이려고 하다가 불쌍한 생각이 들어 그대로 살려준 사실을 기억하셨답니다. 그래서 극락에서 지옥으로 거미줄 하나를 내려 보내셨고 칸다라는 그 거미줄을 붙잡고 조금씩, 조금씩 극락을 향해 올라가고 있었답니다. 이 이야기의 진실을 내일 하도록 하겠습니다.

김동길
Kimdonggil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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