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03/03(토) 나는 옛것이 좋아 (3594)

 

오래 오래 익은 술 맛이 좋다는 말은 들었지만 나는 술을 멀리하고 살아온 사람이라 술 맛은 모릅니다. 옛날에는 파거 만년필 한 자루를 구하면 한평생 쓴다고 하였는데 우리가 젊었을 때에는 귀신처럼 스치고 지나가는 만년필 도둑이 있어서 눈 깜짝할 사이에 파커 만년필 한 자루가 어디로 갔는지도 모르게 사라졌는데 그런 것들을 모아서 파는 놈들도 있었습니다. 그 도둑맞은 만년필을 그 주인이 아무 말도 못하고 사오는 경우도 있었습니다. 나도 김활란 박사의 친구인 이정애 선생이 내게 물려준 구식 파커를 아직도 가지고 있지만 볼펜이 난무하는 세상에 지금은 별로 쓸 일도 없습니다. 그러나 그 누구에게도 양도하지는 않습니다.

눈을 씻는 간단한 기구가 달린 안약 병이 있어서 50년 이상 사용해 왔는데 내가 통풍 때문에 병원에 입원했던 십여 일 사이에 대 청소를 하러왔던 친구들이 버린 것이 확실해서 쓰레기통도 뒤져 봤지만 찾지 못했습니다. 그것을 버려버린 친구는 탓하지 않았지만 나의 화장실에서 그 물건이 없어진 사실이 나로서는 유감천만 입니다 내가 월남하여 1946년 서울 역 근처에서 구입한 손바닥만한 영어 신약성서는 그동안 줄곧 가지고 있다가 최근에 아주 가까운 제자에게 물려주었습니다.

내 주변에 많은 젊은이들은 낡은 것들은 다 버려야 한다고 성화를 하지만 내 생각은 그렇지 않습니다. 나는 오래된 책들을 비용이 많이 들더라도 책 수선하는 집에 보내서 다시 제본을 하게 합니다. 내 서재에는 책이 상당히 많습니다. 나는 지난 70년 동안 한 번도 이사를 해 본적이 없이 이 집에서 살고 있습니다. 이 많은 책들을 가지고 어디를 가겠습니까? 그러나 한권도 버리지 않습니다. 내가 간 뒤에 누가 이 책들을 가져가더라도 나에게는 아무 유감이 없을 겁니다. 그러나 내가 살아있는 동안에는 그 누구도 내 책에 손을 대지 못합니다.

옷과 소지품도 오래 된 것만을 선호하는 것이 나의 취미입니다. 향수의 향기는 곧 사라지지만 책은 언제나 그 자리에 있습니다. 책을 사랑하는 마음과 향수를 사랑하는 마음은 전혀 다릅니다. 그러나 장미꽃의 향기에도 추억이 있겠지만 오랜 세월 동안 나와 함께 해 온 이 많은 책들도 나름대로의 향기와 추억이 있습니다.

김동길
Kimdonggill.com

 

 No.

Title

Name

Date

Hit

3209

2018/04/30(월) 10년의 세월이 가고 (3652)

김동길

2018.04.30

20621

3208

2018/04/29(일) 남북은 어데로 가나? (3651)

김동길

2018.04.29

2512

3207

2018/04/28(토) 같은 낱말이지만 (3650)

김동길

2018.04.28

2281

3206

2018/04/27(금) 사과가 바나나가 될 수 없다 (3649)

김동길

2018.04.27

2518

3205

2018/04/26(목) 어쩔 수 없는 일을 (3648)

김동길

2018.04.26

1959

3204

2018/04/25(수) 감상주의로는 안 된다 (3647)

김동길

2018.04.25

1938

3203

2018/04/24(화) 꽃보다 아름다운 것도 있다 (3646)

김동길

2018.04.24

1755

3202

2018/04/23(월) 급격하게 변하는 세상 (3645)

김동길

2018.04.23

1949

3201

2018/04/22(일) 세상이 냉랭한 까닭 (3644)

김동길

2018.04.22

1868

3200

2018/04/21(토) 그런 날들도 있었는데 (3643)

김동길

2018.04.21

1734

3199

2018/04/20(금) 낙환들 꽃이 아니랴 (3642)

김동길

2018.04.20

1894

3198

2018/04/19(목) 4.19가 어제만 같은데 (3641)

김동길

2018.04.19

2153

[이전] 1[2][3][4][5]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