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02/27(화) 봄을 기다리는 까닭 (3590)

 

나의 팔 다리의 힘이 왕성하던 옛날에 나는 전 세계를 누비며 여행을 많이 하였습니다. 사하라 사막에도 가 보았고 동남아의 오지도 방문하였으며 나이아가라, 빅토리아, 그리고 이구아수 폭포의 힘찬 물줄기도 즐겨 본 적이 있습니다.

우리나라에는 꽁꽁 얼어붙은 겨울이었는데도 미국 L.A의 고속도로변에는 여러 종류의 꽃들이 만발해 있던 사실도 기억 됩니다. 북극이 가까운 나라들에서는 겨울철이 되면 햇볕이 별로 보이지 않아서 생존자체가 고통일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쪽에 사는 사람들은 겨울철에 하도 답답하게 느껴져서 위스키를 많이 마신다는 말도 들었습니다.

나는 사계절이 뚜렷하게 구별되는 한국 땅에 태어난 사실을 매우 다행스럽게 생각합니다. 엄동설한에도 실내 온도가 25도 쯤 되는 방에서 셔쯔 바람으로 지내는 사람에게는 봄을 기다릴 자격이 없습니다. 옛날에, 출근하는 남편의 아침밥을 지어주기 위해 부엌에 있는 얼은 물을 깨서 쌀을 씻어야 했던 아낙네에게는 봄을 기다릴 자격이 있다고 여겨집니다.

요즈음처럼 개명한 시대에는 동지섣달에도 난을 볼 수 있고 장미꽃을 즐길 수 있지만, 봄이 와야 산에나 들에 핀 진달래, 개나리꽃을 볼 수 있었던 그런 세월에 살았던 오늘의 많은 한국 노인들은 옛날을 생각하면 만감이 교차합니다.

가난한 사람들만이 봄을 기다리는 것이 아닙니다. 계절의 여왕이 봄이라고 믿는 사람이 많습니다. 겨울이 제일 좋다는 사람도 없지는 않지만 특이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제 정신이 아닌 것 같습니다. 기후 변화가 심각하다고 하지만 아직 한국의 사계절은 뚜렷하게 다릅니다. 봄을 기다릴 수 있다는 것은 한국인의 특권이라고 하겠습니다. 두고 보세요. 각 방면에 세계적 지도자들이 이 땅에서 많이 나타나리라고 믿는 것은 봄을 기다릴 줄 아는 사람들이 바로 그 사람들이기 때문입니다. 봄을 기다린다는 말은 지도자를 고대한다는 말과 다름없습니다. 나도 봄을 기다립니다.

김동길
Kimdonggil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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