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02/23(금) 꿈에 뵈는 님이 (3586)

 

기생 명옥이 읊었다고도 하고 일설에는 매화가 지었다고도 하는 다음과 같은 시조 한 수가 있습니다.

꿈에 뵈는 님이 신의 없다 하건 만은
탐탐이 그리울 제 꿈 아니면 어이 뵈리
저 님아 꿈이라 말고 자조 자조 뵈시소

사랑하는 님을 그리워하는 한 여인의 간절한 마음이 듬뿍 담겨있는 사랑의 노래라고 여겨집니다. 따지고 보면 꿈처럼 허무한 것이 없지요. 좋은 꿈을 꾸다가 무슨 일로 그 꿈에서 깨어난 사람은 그 아쉬움이 더할 나위 없을 겁니다. 내가 알기로는, 춘원 이광수가 해방 후에 복잡다단했던 자기의 삶을 돌이켜 보면서 <조신의 꿈>이라는 작품을 하나 썼다고 합니다. 읽은 지 오래되어 기억이 다소 희미하지만, 어떤 스님이 꿈속에서 엄청난 유혹에 직면 하였다가 깨어나 정신을 차리게 되는 줄거리의 소설이었다고 기억이 됩니다. 그런 흉악한 꿈에서는 되도록 빨리 깨어나는 일이 바람직 하지만, 그 상대가 사랑하는 사람이라면 헤어지고 싶지 않을 것은 당연한 일이라고 생각됩니다.

신의가 있다고 ‘믿을 만한 님’이 많지도 않은 속된 세상이지만, 그렇게만 생각한다면 인생이 너무도 허무하여 무엇을 믿고 살아가겠습니까? 훌륭한 님은 평상시에도 신의가 있고 꿈속에서도 신의가 있다고 나는 믿습니다. 기생들의 삶 속에 만난 남성들이 극소수를 제외 하고는 모두 신의가 없을 것 같습니다. 그런 중에도 매우 신의가 두터운 남녀의 사랑이 있을 수 있겠지요.

나는 이 시조를 읊은 기생의 매우 신실한 사랑에 경의를 표합니다. 그래서 사랑은 언제나, 어디서나, 누구에게 있어서나 괴롭지만 아름다운 것이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김동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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