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12/11(월) -이 작은 신약 성서 한 권- (3512)

 

나는 어려서부터 평양에 있는 장대현 교회에 다녔습니다. 거기 부설돼 있는 ‘유치원’도 졸업했고 주일 학교에도 유년부부터 다녔고, 서울 와서는 주일학교 교사도 하였습니다.

내가 38선을 넘어 서울에 온 것은 1946년 6월이었는데 그 해 7월 어느 날, 서울역 길 건너 있던 작은 책방에서 처음 책을 한 권 샀는데 그 책이 손바닥만 한 매우 작은 영어로 된 신약 성서였습니다. 지금은 대우 빌딩이 우뚝 서 있는 그 자리에 조그마한 가게들이 여럿 있었습니다.

그 옛날 일을 어떻게 기억하고 있느냐고 묻고 싶은 사람도 있겠지만 이 조그마한 낡은 책이 지금도 내 옆에 있고 이 책의 뚜껑을 열면 ‘July 1946, Seoul, Korea’라고 적힌 것을 볼 수가 있습니다. 71년하고도 5개월 전의 일입니다.

6.25 사변 당시 내가 학생 신분으로는 비교적 많은 양서를 갖고 있었는데 당시 연희대학교에 주둔하던 인민군이 딱딱한 책뚜껑은 군복의 견장을 만들기 위해 다 뜯고 알맹이는 버렸다고 들었습니다. 그런데 요 작은 책자는 그대로 남아 있었습니다.

9.28 수복으로 집에 돌아와 얼마 있다가 중공군의 남침과 때를 같이하여 제2국민병으로 징집되어 창경원에 집결했던 때 나는 이 성서를 가슴에 품고 있었고 곧 부산을 향해 강행군이 시작됐던 것입니다. 휴전이 합의되어 서울에 돌아오던 때에도 이 책은 나와 함께 있었고 내 나이 90이 된 지금도 나와 함께 있습니다.

내가 처음 영어로 암송한 성경 구절이 이 책에 있는데 요한복음 3장 16절입니다. “For God so loved the world, that he gave his only begotten Son, that whosoever believes in him should not perish, but have eternal life”

이 작은 책 한 권이 나의 평생의 길잡이였다고 해도 지나친 말은 아닙니다. 그리고 앞서 적은 이 한 마디 말씀 때문에 나는 이 날까지 떳떳하게 살아왔고 앞으로도 떳떳하게 살다가 떳떳하게 죽을 수 있습니다.

김동길
www.kimdonggil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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