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12/08(금) -잊을 수 없는 날 12월 8일- (3509)

 

지금으로부터 76년 전인 1941년 12월 8일, 나는 평양에 있는 한 중학교의 1학년 학생이었습니다. 오전 중 카지와라라는 일본어 교사의 수업시간이었습니다. 돌연 교실의 문이 열리고 큐지(給仕)라고 불리던 젊은 남자가 들어와 그 일본인 교사에게 쪽지를 한 장 전해 주었습니다.

그 쪽지를 읽던 그 선생의 하얀 얼굴에 갑작스레 홍조가 띠고 그는 떨리는 목소리로 이런 사실을 우리에게 알려주었습니다. “일본은 미국에 대해 선전을 포고했고 전쟁은 이미 시작이 됐는데 우리 일본군이 벌써 상당한 승리를 거두었다” 이미 ‘만주사변’으로 중국 본토를 상당 부분 점령한 일본이 미국의 영토이던 하와이의 해군기지 진주만(Pearl Harbor)을 급습하여 마침내 태평양 전쟁이 시작된 것입니다.

일본군국주의의 강압에 못 이겨 일본인으로 ‘편입’된 조선인들은 일본인으로서의 혜택은 전혀 받지 못하면서도 일본인보다 더 고생스러운 하루하루를 보낼 수밖에 없는 신세가 된 것입니다. 그런 억울한 시대적 상황에서 식민지의 청소년은 살아야만 했습니다. 징병·징용 뿐 아니라 그 전쟁을 돕기 위해 폐물도 수집하여 매달 있는 8일을 ‘대소봉대일’이라 명명하고 학생마다 쇠붙이를 구하여 교정에 가져다 쌓아 두면 당국에서 수거하였습니다. 총알을 만들 때 필요하다며 동회의 사무원들이 집집마다 다니며 조상 때부터 쓰던 놋그릇을 빼앗아 갔습니다.

그 뿐입니까. 학교에 가서 수업을 하는 일은 거의 없고 날마다 ‘근로봉사’가 일과였습니다. 3학년 때 한여름 평남 용강(龍岡)의 군용 비행장 공사에 동원되어, 천막 치고 살면서 흙 파서 나르는 일만 하였는데, 흙을 나르던 ‘도로꼬’가 탈선하여 뒤집혀 내 손목에서 피가 많이 났는데 그 상처가 지금도 희미하게 그 손목에 남아있습니다.

오늘의 젊은이들이여, 오늘의 노인들이 젊어서 그렇게 고생을 하면서도 살아남아 6.25도 겪으면서 오늘의 대한민국을 이만큼 세우고 키웠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주세요.

김동길
www.kimdonggil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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